임진왜란이 끝나고 혼란에 빠졌던 일본 막부가 도꾸가와 이에야스로 통일이 된 후 조선에 외교 관계의 재개를 요구한 끝에 사신이 온 장면이다. 일본은 조선통신사의 내방을 집요하게 요청한다. 전쟁은 전쟁이고 외교는 외교라는 것이 일본의 편리한 발상이다.

그런데 사신단이 가져온 선물이 문제다. 선물 속에 바둑판과 바둑알 등 기물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단목으로 만든 최상급 물품이다. 승지 홍명형은 바둑의 기물은 놀이 용품에 불과하고 나라 간의 선물로도 품위가 맞지 않다며 돌려보낼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이것은 핑계다.

아직 조선은 일본에 감정이 남아있었고 그 감정의 일단을 선물을 돌려보내는 것으로 풀고 있는 것이다. 인조도 순순히 따른다. 아무것도 아닌 역사의 기록 같지만 이 기록은 한일 고대 문헌사에 전하는 정사 속의 최고 바둑기록이다.

이 무렵 승정원일기는 이미 왜와는 바둑두는 것도 달라졌다는 기록이 있다. 바둑이 조선형과 일본형으로 갈라진 기록이다. 중요한 기록이다. 승정원일기를 확실하게 바둑사를 염두에 두고 연구를 하면 엄청난 어떤 것이 나오리라 본다. 실록과 승정원일기의 통독을 통해 엄정한 바둑사가 나왔으면 한다.

인조 이후 조선통신사가 다시 재개된다. 물론 선조와 광해군 때도 한번씩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인조 때의 그것이 가장 크고 성대했다. 조선통신사는 정사 부사 종사관이 한 팀이 되어 일본에 간다. 일본은 이들을 3사라 하여 극진하게 대우를 한다. 정사라 해봐야 정3품에 불과 하다. 중국에 사신을 보낼 때 정사는 정습급이다. 사신단의 규모는 중국행보다 컷지만 정사의 계급이 낮다. 일본에 대한 소중화주의를 엿볼 수 있다.

바둑이 중국에서 나와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들어간 것은 역사 학자가 아니라도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에서 출발한다. 이 인식하에 불교 한자 의술 등이 중국 한반도 일본 열도로 습합되었고 이 문화와 함께 할 정도로 바둑의 역사 또한 오래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일 간의 정사 속에 보이는 바둑의 기록은 이것이 최고다. 일본이 사신을 보내왔는데 품목 속에 바둑판과 바둑알 등이 들어 있어 조선 조정이 상의를 한 끝에 이 기물을 돌려 보내는 결정을 하고 있다. 일본의 막부의 쇼군은 '도꾸가와 이에미스'다.

당시 한일 간에는 임진왜란 이후 끊어졌던 통신사의 왕래가 재개되어 있었고 일본은 인조에게 1차(인조는 3번 통신사를 보냈다) 통신사를 요구하기 위해 먼저 사신단을 보내온 것이다. 인조는 1624년 8월 정욱을 정사로 강홍준을 부사로 신계영을 종사관으로 한 460명의 대규모 통신사를 구성하여 일본에 보낸다.

통신사는 부산에서 대마도를 거쳐 일본 에도를 다녀오는 데 8개월이 걸린다. 사신단의 주 발행관은 인조였고 발접관은 일본의 쇼군 도꾸가와 이에미스였다. 이때 주고 받은 양국 간의 서계를 한번 보자.

인조 ㅡ 작년에 귀국에서 멀리 바다를 건너 수빙을 하시니 좋은 뜻을 어찌 헤아릴 수 있나이까. 마침 모문룡(명의 장수 조선당에 들어와 있었음)이 우리 국경내에 있어 경황이 없다가 대마도 번주의 보고를 받고 가까운 신하를 보내어 어지신 왕이 일본의 인후를 보중하신다기에 변변치 않은 물목으로 성의를 갖추어 폐백을 하니 혜량하시고 서로 간의 은의를 돈독히 하고 경사가 이어지기를 비옵니다.

이에미쓰 ㅡ 일본국왕 이에미쓰가 조선 국왕전하께 답서를 올립니다. 섣달의 차가운 날씨가 사람을 핍박하는데 한 통의 서신과 세 사람의(통신3사) 따뜻한 방문을 받고 벌써 봄바람이 당도한 줄 알았나이다. 기쁩니다. 과인이 일역(일본)을 통일하게 되어 그걸  귀국이 알고 이리 예절을 세워 진귀한 토산물과 여러 물목을 보내주어 감사합니다. 서로의 선린을 계승하여 경사가 만대에 이를기를 확약합니다. 다 갖추지 못합니다.

통신사는 460명이나 되었다. 정사(정3품) 부사(정4품) 종사관(정5품)에 불과한 통신 3사가 이끌고 가는 수행원이 460명이나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일본 막부는 이들 3사를 조선 국왕의 행차나 되는 듯 열도 전체에서 대대적인 환영과 영접을 한다.

조선이 청에 보내는 사신단에 비하여 두 등급이나 떨어지는 관원을 보내는 데도 일본은 그저 기쁠 뿐이다. 일본이 상대적으로 조선통신사의 방문을 반겼다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바둑의 기물만 돌려보낸 조선의 내막이 궁금하다. 조선은 일본에서 보낸 침향에 관심을 많았다. 적은 침향을 받고 기뻐한 대목도 있다.

그런데 침향은 받고 바둑 기물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하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신라와 당의 바둑 교류가 나타난다. 당의 고수가 신라에 온 내용이다. 고려사에는 고려의 고수들이 원에 가 바둑을 두는 기록이 있다. 일본과의 이 이상한 바둑 교류사는 위의 두 건의 기록과 함께 정사에 포함되는 바둑 교류사가 된다.

다시 우리가 백제의 것으로 믿고 싶어하는 정창원의 목화자단기국 (木畵紫檀碁局)을 살펴보자.

동대사는 756년 일본 성무 천황이 노사나불전을 짓고 신라에서 들여온 화엄종의 종찰로 삼은 황실 사찰이다. 이 근방에서 신라의 승려들이 지은 의상 원효의 저술 경전들이 여러 권 나온 바도 있다.

목화자단기국을 분석한 역사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히고 있다. 한국측 학자들이다.

- 바둑판에 있는 문양.
도주하는 토끼 문양. 기마 수렵인. 도주하는 사슴. 
(경주의 여러 고분에서 발굴된 전돌의 토끼 사슴 기마 수렵인의 문양과 일치.)

- 바둑판 다리.
비상 하는 새의 문양.
(경주 안압지 출토 상아 장식 문양의 병행비상 쌍조(함께 나는 새의 모습)와 일치.

마주보고 있는 쌍 양(羊)
(신라문양의 특징인 쌍금수와 일치)

기타 낙타 사슴 등의 문양 형식이 다른 문양도 신라의 여타 문양과 상통되는 점이 있다.

아직까지 논의중이지만  정창원에 있는 목화자단기국은 백제라기보다는 신라에서 만들어져 어떤 경로로 일본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가 있을 뿐이다. 그것도 통일신라 후대의 이야기다. 그러나 일본측의 이에 대한 답변이 나오지 않고 있다. 정창원에는 수천 점의 유물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의가 당과 신라의 물품들로 추정된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학계는 함구를 하고 있다.

유물 목록 한 장 외에는 어떤 연구도 정리과정도 비밀사항이다. 일본 정부와 학계의 어떤 말못할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나 이런 풍토에서 목화자단기국의 의자왕 선물설 같은 쌩뚱맞은 설이 난무해 안타깝다. 진보장 기록의 진실은 '의자왕이 은제바둑통 바둑알을 선물했다'는 내용이다. 목화자단기국은 의자왕의 기록에서 페이지를 넘겨 한참 뒤에 있는 기록이다. 의자왕 선물설은 그저 한국(?) 측의 바램일 뿐이다. 연구가 없이 침소봉대가 가져온 허접한 결과다.

얼마전 경주에서 분황사 발굴 유물 보고회가 있었다(경주문화재연구소). 이곳에서 나온 15줄 전돌 바둑판이 단연 화제였다. 이 바둑판은 국내 최고의 것임은 물론 15줄 바둑판으로는 세계 최초의 것이어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이 전돌 바둑판 옆에서 검은 오석으로 만든 바둑알이 수습되었다.

이 발굴을 주도한 문상태 연구원은 이 알이 경주 부근 감포 바닷가에서 나오는 것들과 유사 하다는 평을 했다. 실제로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울산에서 좋은 바둑알이 나온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에서는 황남대총에서 다량의 바둑알이 나온 적이 있다. 익산의 미륵사지에서도 바둑알이 수습되었다.

분황사는 선덕여왕이 세운 절이다.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화랑세기에 보면 선덕여왕 애인인 용춘이 천명 호명의 두 궁에서 거문고 소리를 감상하며 바둑을 두는 호사스런 대목이 있다. 분황사에 바둑판과 바둑알이 발굴되므로 신라에는 이미 선덕여왕 때에도 바둑이 주요 도락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당시 일본에서 신라로 사신이 온다. 침향 금은 등을 가져온 일본 사신들은 신라에서 화엄경등 경전과 불구를 받아간다. 정창원 바둑판도 이때 가져간 것일 것이다. 이 시기 신라와 일본의 사신 왕래가 빈번하다. 삼국사기 일본서기에 공통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다.

한일 간에는 이미 이때부터 바둑이 넓게 보급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조선이 일본의 바둑 기물 선물에 화를 내는 일이 일어난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나는 조선통신사, 특히 인조 3행(行)의 기록을 모두 찾아보았다. 바둑에 관계된 모든 궁금점을 확인하고픈 욕심(?)에서다.

인조시대 통신사의 규모는 엄청났다. 통신 3사. 역관 3명. 서기 3명. 화원 3명. 의원 1명. 자제군관 5명.  군관 12명. 마상대 2명. 기함장 2명. 열수(요리사) 1명. 하감장 3명. 노비 49명. 소동(급사)15명. 훈도 3명. 소통사 15명. 예단직 2명. 기수 악대 20명. 포수 6명. 사령 16명. 사공 24명...

통신사는 문 무 예 의 화원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 각종 전문인들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이 속에 전문 바둑인이 끼어들 소지가 충분하다. 나는 이 점을 착안, 백방으로 바둑의 고수를 추적해 보았으나 자료가 없었다. 겨우 인조 때 홍세태(1653ㅡ1725)가 시문과 바둑 등 각종 기예에 능해 일본에서 활약이 컸다는 기록이 전부였다.

홍세태는 종사관의 부장으로 일본에 따라가 시문과 바둑 등의 장기를 발휘하여 한일 간의 인사들을 즐겁게 한 모양이다. 홍세태는 후에 울산 현감을 역임하고 고향에 유하정을 짓고 온갖 놀이에 심취하다 죽었다는 졸기를 남기고 있다. 이 당시 중국에 간 사신단에도 역관 군관 등의 신분으로 바둑의 고수들이 동행하던 것을 염두에 두면 홍세태는 바둑으로 사신단에 발탁된 인물로 보인다.

지금 전하는 홍세태의 유하집에 보면 당대의 고수로 유찬홍, 덕원군, 유홍임 등을 거론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나의 생각은 맞는 듯하다.

그러나 이 당시 일본의 바둑은 보잘 것이 없었던(조선의 입장에서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일본 조정에서 보낸 바둑 기물을 돌려보낸 것이 그 이유다. 예의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조선 조정은 궁핍한 이유를 대어 물리치고 있다. 일본에서 바둑이 일반에게 퍼지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이후다.

일본은 16세기에 이르러 막부에 위기소를 설치하고 바둑을 무사들의 도락으로 인식하고 소수의 기객을 키우고 지원한다. 본인방가의 출현도 이때다. 일본 바둑의 비조들이 이 위기소에서 나온다. 통신사들이 일본을 왕래할 때 위기소는 겨우 자리를 잡아갈 때다. 이때까지도 일본 바둑은 조선 바둑의 상대가 되지 않았었다.

조선은 왕실만이 아니라 평민들까지 왕성하게 바둑이 보급되어 있었다. 바둑판 천지였고 바둑알 천지였다. 기장현에서는 일년 만 벌 이상의 바둑 기물을 만들어 조정에 공납을 하던 때에 바둑 기물을 일본에서 보내왔으니 받아들일 턱이 없다. 일본에서는 이때 바둑 기물을 생산하여 그중 하나를 진상품으로 조선에 보내온 것이다. 푼수를 떤 것이다.

일본의 평민들은 바둑을 배울 수가 없었다. 일본에는 쇼군의 주도로 전국에 주사위 화투류의 도박이 상설화되어 있었다. 바둑은 여타 도박의 속성이 있으나 배우기가 쉽지 않기에 일본 막부는 일반 백성들에게 보급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당시 일본은 조선통신사를 문물의 수입원으로 알고 전적으로 매달렸다. 유학 도자기 의술 등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염치불구하고 요청을 하던 그들이다. 그러나 이 속에 바둑의 고수를 요청하는 기록이 없다. 바둑은 그때까지도 일본에겐 차선일 뿐이었다.

그러나 역대의 통신사들 속에는 홍계희 이경진 등 바둑시 등을 남긴 인물들이 있다. 일본 교토의 적광사 건곤굴에 전하는 바둑의 전설에 등장하는 이사진(士進)이 바로 이경진이 아니냐는 바둑서지학자 안영이 씨의 말이 일리가 있다. 사진이란 말은 진사의 오기인 듯하다. 당시의 조선 관원들은 자신을 낮추어 진사라 했다.

통신사는 숙종조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이때는 일본이 조선에서 받아들이던 문물을 서양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는 때였다. 일본 해안에 나타난 포루투칼 상선의 출몰이 일본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일본은 서양의 문물을 접하고 가차없이 조선과의 모든 교류를 끊는다. 이로부터 150년 간 한일간의 암흑기가 찾아온다.

통신사가 왕래하던 그때까지 일본의 문화 수준은 거의 야만의 수준이었다. 바둑 또한 졸렬 하고 볼 것이 없었다. 인조실록의 바둑 기물의 반환이 그것을 증명한다. 일본 바둑의 흥기는 한일 간의 암흑기였던 이 시기에 일어난다. 그것이 비단 바둑뿐이랴. 이로부터 일본의 오만과 편견이 조선반도를 향해 강성을 부린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 않은가.

(원문1)

左副承旨洪命亨啓曰. 伏見戶、禮曹看品倭物進上單子, 則有金屛畫、碁盤、鏡臺諸具。 國 家與 倭奴爲和, 受其禮物, 已是不得已之擧. 至於碁局, 尤是玩戲, 士大夫勤勵職事者, 亦不宜近, 況於九重香案之前乎? 竝勿許進御, 還付有司, 似爲便當. 臣職在該房, 敢啓. 答曰 依啓. 胡椒、丹木亦爲還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