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은 바둑을 빗대어 학문을 말한 대목이 전한다. 당국자미안득서선(當局者迷安得書善)이 그것인데 당서에 나오는 당국자미방관자심(當局者迷傍觀者審)의 다른 표현이다. 바둑은 당사자보다 곁에서 보는 사람이 더 잘 보인다는 뜻인데 학문도 혼자서 전심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의 조력을 받는 것이 좋다는 말이겠다.

'기효신서'를 지은 척계광은 바둑이 학문에 능한 것하고는 다르듯 병법도 같다고 했다. 이 말은 바둑과 병법의 운용이 학문에 능하다 하여 잘 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유본학은 바둑은 학문의 문리와는 다른 재능을 필요로 한다고 한 바 있다. 유본학은 발해고를 지은 유득공의 손자로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은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다 했다. 특별한 재능이란 기재(碁材)를 말한다.

조선의 지성들은 일찍부터 바둑과 학문의 상관관계를 의심해 왔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대체로 공부도 잘하게 되어있다. 바둑 또한 머리가 좋은 사람이 잘 두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조선의 지성들은 학문에 능한 머리와 바둑에 능한 머리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과연 학문을 잘하는 머리와 바둑을 잘 두는 머리는 따로 있는 것일까.

유본학이 말한 바둑의 특별한 재능을 아주 잘 이해한 사람이 조희룡이다. 조희룡은 문인이자 화가로 김정희의 심복이던 사람이다.

-바둑은 특별하다. 육상산이 바둑판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하도를 깨달았다지만 총명하고 재주 있는 선비가 마음을 다하여 연구한다고 해서 바둑은 되는 것이 아니다. 엄우(嚴羽)가 시에 뛰어난 재주가 있었으나 배운 것과는 다르지 않은가. 나는 바둑이 그런 것이라 생각 한다.

조희룡은 유본학이 말한 바둑의 기재를 잘 설명하고 있다. 바둑에 대한 그의 이해가 엿보인다. 조선의 지성들은 바둑이 학문을 하는 것과 닮아 있으면서 기실은 그렇지 않음에 주목을 하고 호기심을 가졌다. 더구나 당대 바둑이 최고의 인기 있는 예기로 등장하면서 호기심은 더했다.
홍세태는 국기(國碁) 유찬홍이 바둑 한 판을 둘라치면 그의 주변에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했다. 유본학은 고수들의 주변에는 늘상 사람들의 장막이 함께 했다고 했다.

이덕무는 어린이 바둑대회를 구경하고 바둑의 폭발적인 붐에 경악을 하며 자신은 바둑 잘 두는 것이 부럽지 않다고 투덜댄다. 그의 아들 이규경은 당 시대에 바둑을 모르는 사람은 짐승 취급을 당한다고 하고 있다. 인기 절정의 바둑붐을 증거하고도 남는다.

조선의 지성들이 말한 학문과 비슷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바둑의 도(잘 두는 것)는 무엇일까. 그들이 말하는 바둑의 기리(碁理)는 어떤 의미인가.

필자는 이 질문에 괴델의 질문을 생각했다. 괴델은 인간의 지성은 남김없이 증명될 수 없다고 한다. 모순이 없는 인간의 지식은 꿈에 불과할 뿐이란다. 완전한 지식은 전지전능을 말하지만 전지전능이 인간의 환상에 불과한 것에서 괴델은 인간 지식의 상대성을 말했다.

괴델은 인간의 정신과 인간 직관의 승리와 필연성을 확증한 사람이기에 인간의 정신이 모든 수학적인 직관을 형식화(기계화) 할 수 없고 그것들의 한 부분을 형식화 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은 결국 지식이 언제나 결과의 증명이 가능한 수학과는 괴리가 있다는 말이다.

바둑은 지식보다는 수학에 가깝다. 수학자들 중에 바둑의 이점을 주목하고 바둑의 수학적 연구를 하기도 한다. 공주대 수학과 이덕호 교수는 '바둑에서 흑번으로 지지 않는 전략'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보인 바도 있다.

바둑을 대하는 조선의 지성들은 이율배반적이다. 바둑이 도에 가깝다는 찬탄과 긍정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바둑이 사회 발전을 저어하는 원흉으로 지탄을 가하기도 한다. 조선의 지성들 중 바둑을 가장 악질적으로 평한 사람이 성호 이익일 것이다. 이익은 바둑에 빠진 사람은 미친놈이라(殆若狂易) 한 바 있다. 이덕무도 정약용도 비슷하다. 그러나 이들의 독설도 훗날 좋은 바둑사의 연구 자료다.

어쨌든 조선 지성들의 바둑에 대한 고민은 바둑의 깊은 수읽기의 세계가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학문의 공고한 세계로도 해결이 안된다는 것에 있었다. 그들은 그것이 신기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학문이라는 인간의 지식과 수읽기라는 인간의 직관의 세계는 같은 것이면서  다른 것이다. 머리로는 건곤(하늘 땅)에 거칠 것이 없다고 믿었던 조선의 지성들도 온전한 두뇌의 게임인 바둑만은 정복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른다.

수읽기의 직관을, 훗날 절대 고수 조훈현은 '승부 호흡'이라 했고 이세돌은 '수 보기'라는 말로 간단명료하게 정리를 해 냈다. 21세기 초절정기를 구가하는 바둑의 최고수들이 말하기 시작한 승부 호흡과  수 보기는 책을 읽고 교양을 쌓아 지성에 이르는 길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이 점을 조선의 지성들은 바둑판 주변을 방관(傍觀)하며 나름으로 고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