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은 신명의 무당이 읊조린 신어(神語)의 기록이기에 어느 정도 시적 언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주역 '중부괘'에는 한 편의 아름다운 시가 있다.

학이 산그늘에서 울고 그 새끼들이 화답을 하지요.

내게 좋은 술잔이 있으니 그대 한잔 하시려는지요.

(鳴鶴在陰其子和之我有好爵吾與爾靡之.)

명학은 학이 우는 것이다. 주역 학자 '고형'은 명을 꿩이라 교정을 했지만 은허점사에 꿩 봉황 등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명학은 꿩이 우는 것이 아니라 학이 우는 것이 맞다. (갑골문합. 乎鳴兩雉雙丙辰鳳雙五) 
중부괘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믿음과 열정을 말하는 괘다. 동시에 나와 너의 동류애가 끈끈하고 사랑스럽게 표현된다.

조선의 28명의 왕들 중 주역에 가장 관심이 많았던 왕이 선조다. 세조 또한 주역에 빠져 여러 가지 주역 외적 기록을 남기고는 있지만 주역에 대한 일단을 피력한 사람은 선조가 처음이다. 선조의 주역은 당대의 신하들을 압도한다.

-주역으로 말하면 덮는 것이 음이고 펴는 것이 양이다. 사람으로 치면 가만히 있는 것이 음이고 말을 하는 것은 양인 것이다. 이처럼 음양의 이치는 천지간 어디에도 있는 것이다. 영상은 어떤가?

선조는 주자의 '주역본의'를 들어 영의정 이항복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그러나 이항복은 아무런 대꾸를 못하고 쩔쩔 맬 뿐이다. 선조는 1607년(선조40년)에 주역 '해괘'를 말한다.

-지금 남쪽과 북쪽에 다시 적과 대치를 하고 있다. 나라 안은 갖은 노역으로 백성들과 조야가 피곤하다. 북쪽(여진)이 떨치고 일어나면 서북쪽에 요새가 없고 별다른 방비도 없어 경내(한양)는 속수무책이다. 아아 이것이야 말로 우려스럽다.

선조는 '해괘'를 말하다가 이렇게 시국을 논한다. 임진왜란이 끝나자 북쪽에서 거세게 일어서는 여진(청)의 흥기를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해괘'는 해결의 모습, 어떤 문제를 앞에 놓고 벌이는 협상의 모습을 뜻한다. 효사(爻辭)에 군자가 얽혔던 실타래를 푸니 길하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 '해괘'를 '경방'은 아주 재미있게 해석을 한 바 있다.

-해는 음의 기가 쌓여 모이고 흩어지는 것이다. 안이 험하고 밖은 움직이기에 반드시 흩어진다. 역(易)에도 해는 흩어지는 것이라 했다.

경방은 점복 주역가들의 메시아다. 도무지 작자인 경방 자신도 모를 8궁 28숙 72절후 등의 설로 주역을 복잡다기하게 해석을 해 점복 주역가들이 일반인들을 현혹 시키기에 안성맞춤으로 만들어 아직까지도 유용(?)한 사람이다. 이를 '왕부지'는 작은 지혜로 큰 도를 어지럽힌 사람이 경방이라 했다.

'해괘'는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어떤 제후의 이야기다. '해괘'는 고난의 역정을 헤치고 나온, 그래서 새로운 건설과 준비가 필요한 과정을 말한다. 일일신대(一日愼大)를 실천할 시점인 것이다. 일일신대는 커질수록 삼가 한다는 여씨춘추에 나오는 말이다.

선조는 임진왜란이라는 전무후무한 대전란을,  주역 '해괘'를 곱씹으며 동서붕당에 미쳐 날뛰던 신하들을 이끌고 전란의 포연을 벗어 나온다. 선조는 전란이 한창이던 1602년(선조 35) '이괘'를 강의한 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죽음과 삶은 갈릴 때가 중요하다. 내 옛날부터 책을 보아 안다. 소강절은 죽을 때 언어가 착란하고, 왕수인은 앉아서 죽었다고 한다. 육구연은 죽을 날을 알고 목욕을 하고 기다렸고, 유자후는 별로 아는 것도 없이 자신이 죽을 날을 알았지 않나.

'이괘'는 주역 30괘로 살벌함 자체이다. '이괘'는 불효자를 징치하고 적의 목을 베는 등 피가름의 장이다. 주역에서 사(死)자가 처음 나오는 장이기도 하다. 사의 은허문자의 뜻은 사람의 유골을 수습하는 모습이다. 장례를 의미하기도 한다.
선조는 '이괘'에서 점점 다가오는 국가의 명운을 걱정하고 '해괘'에서 새로운 불안의 싹이 움트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선조는 타고난 호학자(好學者)다. 주역을 포함한 발군의 학문으로 동시대의 쟁쟁한  신하들을 이끌 수 있었다. 선조 시대는 재림(材林)의 시대였다. 중종 명종 시대를 거쳐 초석을 다져온 사림(士林)의 학풍 덕으로 수많은 인재들이 쏟아져 나온 시대다.

이황, 이이, 정철, 유성룡, 정인홍, 김성일, 허균, 김장생, 서기, 이지함, 조헌, 이항복, 윤두서, 이덕형, 이산해 등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당대의 인물이다. 무인으로 권율, 이순신, 원균, 승려로 서산, 사명당, 유정. 예인으로 한석봉, 매창, 난설헌 등 옮겨 적기가 저어할 정도다. 선조는 이들 인재들의 힘으로 임진왜란의 파고를 막아 선다.

선조는 무단히 학문을 닦은 왕이다. 선조는 공부를 좋아하는 만큼 바둑도 좋아했다. 아마도 선조에게 바둑이 없었다면 임진왜란의 거친 파고를 넘어서는 스트레스를 이겨 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선조는 유성룡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대저 용병은 바둑을 두는 것 같다. 한번 삐끗하면 망하게 되어 있다. 성룡아 그렇지 않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