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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傳 8회/ 朝明연합군 - 그리고 외교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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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傳 8회/ 朝明연합군 - 그리고 외교문서
2007-08-23     프린트스크랩

 

세조와 성종 시대를 거쳐 드디어 전 조선의 예기가 된 바둑은 조명(朝明) 간의 외교문서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조선초기의 외교는 대명(對明) 외교가 전부였던 만큼 외교의 첫걸음인 '서계'나 '주청문'의 작성이 중대한 과제였다. 


대명 외교 문서의 작성에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과 문장가들이 동원되어 삼교 사교를 거쳐 작성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 아국이 갑자기 흉적의 침입을 받아 나를 지키지 못한 한이 크고 흉적에 대한 통절한 마음이 험악하나이다. 아국이 중과부적으로 국토의 태반이 유린되어 황국의 우려를 끼쳤고 걱정하는 마음도 사게 만들었지만 저 흉적이 무도하게도 명을 엿보기까지 하니 사천(무을이 허수아비를 천신이라 하고 허수아비를 대신하는 노비와 바둑을 두어 이길 때마다 하늘을 향해 활을 쏘며 욕을 퍼부었다는 사기 은기에 나오는 고사)의 마음이 아국의 마음입니다.


(小邦憤其兇逆, 痛心疾首, 誓不與此賊共戴天, 據義斥絶。 深觸其怒, 遂有今日之酷禍, 雖其狃於久安, 兵力不振, 終至於喪地失國, 而其一心向上之忠, 皇天后土, 實所鑑臨, 而亦天朝之所明知也。 夫以小邦之藩衛天朝, 而力拒其說, 猶足以挑怨而速禍, 況其本謀, 實在於直搶遼左, 射天之心, 囂然未已.  선조실록)


조선은 명군의 요청과 전투 수행을 사천의 고사를 들어 잘 설명하고 있다. 조선은 전쟁 중에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전쟁 수행의 한 과제로 보고 바둑을 예로 들어 명에 주청문을 다시 올린다. 그러나 명의 대답은 정중하고도 노회하다.


- 여러 해 명의 뜻은 적장자를 세우는 것에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국가를 운영하는 자가 적장자만을 고집한다면 적장자 태어났을 때 모든 사람이 이를 기정사실화 하여 그 사람 밑에 몰려들 것입니다. 그렇다 하여 적장자를 비켜 어진이를 세운다면 임시방편은 되겠으나  이는 사슴을 좇다가 까마귀를 바라보는 격이고 바둑을 두면서 어디에 둘지를 모르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어찌 어지럽지 않을는지요. 이것은 훗날의 어지러운 바둑을 자초하는 것이올시다.


(夫有國家者, 惟嫡長是立, 則生而人皆曰: ‘是爲異日國主矣’。 人心定矣, 若立不以長, 而以賢, 則權將不在上, 而在下, 一世作俑, 後世效尤, 如逐鹿、如瞻烏、如擧棋不定, 非亂道乎? 況子之賢庸, 國所代有; 天之生人, 中下最多。선조실록)



명은 조선 출병에서 과실이 필요했다. 그러나 가난한 조선의 전쟁에서 과실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과도한 전비의 지출로 병부상서 석형이 파직 귀양을 가 처형되는 등 내분이 일어날 정도였다. 실재로 명사(明史) 곳곳에 조선 출병의 지원책과 전비 조달로 고민하는 대목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명이 조선에 취할 수 있는 주도권은 세자 책봉과 같은 정치적인 것이었다. 명은 광해군의 책봉을 쉽게 들어 주지 않고 이런 점잖은 이유로 뒤로 미루고 있다.


이유가 재미있다. 조급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자칫 어지러운 바둑판을 만들 수 있으니 서서히 하자고 한다. 바둑알을 들고 둘 자리를 고민하는 '거기부정(擧棋不定: 바둑을 두는데 포석할 자리를 결정하지 않고 둔다면 이기기 어렵다는 뜻으로, 확고한 주관이 없거나 계획이 수시로 바뀜을 비유한 말)'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한다.


 

임진왜란을 맞은 선조는 세조만큼이나 바둑을 좋아한 왕이다. 선조수정실록에 바둑기록이 30건이 나오는데 선조와 직접 관련한 것이 태반이다. 선조 26년 12월 4일을 한번 보자. 선조를 위시하여 유성룡 윤두서 이덕열이 편전에 앉아 정국을 논하고 있다.


이덕열이 이순신과 원균이 서로 싸우는 통에 전쟁 수행이 차질이 있으니 이순신을 파직하여 군사 작전의 일원성을 확보하자고 한다. 원균이 보내온 보고에 의하면 이순신이 전공을 지나치게 과장한다는 것이다. 듣고 잇던 선조는 다른 경로를 통해 올라온 보고서를 들어 전황을 설명한다.


- 지난번 해전에서 왜장이 전함의 3층 누각에 앉아 바둑을 두며 전쟁을 지휘하는데 우리 수군선이 격돌을 하니 배가 허술하여 즉시 파괴되었다 한다. 순신이 올린 보고는 과장된 듯하다.


선조의 이 말에 유성룡이 그런 면도 있다고 동조를 한다. 선조는 이순신과 원균이 서로 갈등하여 고민이라 한다. 이 말을 듣고 유성룡과 윤두서가 동시에 지금은 두 장수로 전쟁을 치루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 한다. 선조는 일단 이순신을 파직시키라는 이덕열의 주청을 물리친다. 선조는 이 사건 얼마 전에는 유성룡이 한강 이남에 포진한 왜군의 거점을 지도로 그려 보고하자 이렇게 말한다. 선조 26년 10월 22일의 기록이다.


- 왜군의 진지가 별과 바둑판의 포석과 같다. 머리와 꼬리가 서로 잇닿아 있기에 머리를 치면 꼬리가 호응하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호응하니 자못 지형과 병법을 잘 알았다 할 것이다.


선조는 용병은 바둑과 같다는 말을 여러번 한다. 한수를 잘못 두면 바둑이 끝장이듯 전쟁도 그렇다는 것이다. 선조는 의주 행재소에서 바둑 잘두는 후궁과 바둑을 두며 망국의 군주가 될지도 모를 군왕의 시름을 달래기도 한다. 그러나 선조는 사분오열된 신하들과 가난한 국력의 조선을 독려하며 7년 전쟁을 헤쳐 나가는 저력을 보여준다.

임진왜란 속에 등장하는 바둑의 기록 중 단연 압권은 선조 28년 2월 11일의 기록이다. 명장 진유격은 왜군의 퇴각을 놓고 선조와 격론을 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 이 일은 한판의 바둑입니다. 이 정도에서 판을 거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4~5년 후의 일은 저도 모르나 그동안 조선이 힘을 기르고 군량을 마련하여 방수책을 도모할 수는 있지 않을는지요.


진유격은 임진왜란을 한판의 바둑에 비교하고 있다. 승패를 다투기 어려운 지경에 온 전쟁에서 피아 간에 부담만 가중되니 종전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다행이 왜군이 먼저 휴전을 청해 왔으니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선조는 결심을 하지 못하고 거듭 고민을 한다. 선조는 유성룡 윤두서의 의견을 들어 종전에 소극적으로 합의를 한다.


선조에게는 유성룡이 있었다. 순장바둑을 유성룡이 만들었고 선조와 이여송이 바둑을 두는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바로 그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성룡은 선조 시대의 수많은 바둑인 중 한 사람일 일뿐이다. 유성룡은 실록에 바둑 기록을 한편 남긴다. 별다른 내용도 아니다. 전라도를 방어하는 것은 바둑의 포석처럼 중요하다는 의견을 말한 대목이다.
유성룡의 문집에도 바둑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의 행장에 어린아이들이 바둑을 두는 것도 나무라지 않았다는 기록 한 줄이 있을 뿐이다.

바둑은 임진왜란의 혼란 속에서 더욱 극성을 떨쳤다. 명군의 장교들은 숙영지에서 날밤을 새우며 바둑을 두고 조선 고수들과 다툰다며 명장수들은 걱정을 토로하고 엄한 벌을 가하기도 한다.
이순신은 진중에서 부하들과 수시로 바둑을 두며 전쟁의 긴장감을 해소하기도 한다.
선조는 발령을 낸지 며칠 만에 그 관원을 파직하라는 상소에 발령을 낸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바둑도 아닌데 물리란 말이냐며 화를 내기도 한다.

임진왜란이라는 비상 시국 속에서도 실록에 이토록 많은 바둑의 에피소드들이 남아 있다는 것은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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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네 |  2007-08-23 오전 4:47: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역사 속의 바둑이야기가 놀랍군요 일본에는 본인방제 가 잇었지만 그 원류를 찾다보면 삼국시대나 전에 전래된 기원도 찾을수잇을듯 싶습니다.  
당근돼지 |  2007-08-23 오전 6:46: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보고 갑니다...................감사 합니다.  
노을강 |  2007-08-23 오전 10:18: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좋은 글 잘 일고 있습니다.  
노을강 |  2007-08-23 오전 10:21: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일본 장군이 전쟁중에 배위에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니 만용인지 자신인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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