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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傳 7회/ 피의 오메르타 - 위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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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傳 7회/ 피의 오메르타 - 위기회
2007-08-16     프린트스크랩
 

방간의 난이 태종의 정권 획득의 빌미였다면 계유정난은 세조가 태종의 전철을 답습한 것이라 할만하다. 세조가 일단의 정적을 쓸어내고 정권을 쟁취한 것이 계유정난이다. 방간이나 세조의 친위대들이 바둑을 빌미로  동지를 모으고 모의를 진행시킨 것은 이미 알아본 바 있다.


역사는 학습 효과가 있기에 반복된다. 연산군을 실각시키고 왕위에 오른 중종시대에도 여러 건의 반역 사건이 있었다. 거의가 반정 공신들 간의 세력다툼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그중 박영문의 난이 주목된다. 박영문은 중종반정시 박원종 신윤무와 더불어 군사를 동원하여 연산군을 실각시킨 결정적 공으로 반정 1등 공신에 오른 무인이다.


박영문의 휘하에는 미륵, 당래라는 인천 김포의 수적(해적)이 있었는데 그들까지 반정 3등 공신으로 책록시킬 정도로 기세등등했다. 미륵 당래는 실록상에 강도단으로 몰려 처형된 것으로 나오지만 이자(李子)의 음애일기에 박영문의 결사의 동지로 활약상이 나타난다.
필자는 이 미륵과 당래를 주인공으로 한 바둑소설 ‘동천홍’을 얼마 전 출간하기도 했다. 어쨌든 박영문은 미륵과 당래의 처형을 보고 신윤무와 더불어 무인 정변을 다시 도모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일망타진된다. 실록은 박영문의 심문 과정에서부터 처결까지 세밀하다.



-영문이 미륵 당래의 일 등은 자신이 모르는 일이라 하나 전후 관계가 합당하고 영문이 종친과의 사사로운 교류를 금한 법을 어기고 활쏘기 바둑 등을 핑계로 거듭하여 만나 윤무 심정 등 16명과 의견을 모아 일을 도모하니...


(與新昌令面質。 訢曰: “前於參判家, 臣父及李峓、義山令往會, 臣亦往焉。 則爾在坐共酌, 何謂不飮?” 振誠曰: “其日不設酌。 亦未見汝。” 訢曰: “其日參判與義山令圍棋。 我當出入戶, 而爾坐南邊, 何固諱之?, 振誠曰: “其然猶不得記也。중종실록)



박영문의 난에 연루된 인사들의 심문에는 하나같이 박영문 등이 바둑을 핑계로 만나고 일을 도모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중종의 거듭된 질문에도 박영문은 자신의 죄를 부인하다가 중종 9년 4월에 군기시 앞에서 신윤무와 더불어 능지처참된다. 능지처참은 말과 소를 이용한 사지절단형이 아니다. 말과 소를 이용한 절단형은 거열형이다. 능지처참형은 잘 들지 않는 녹슨 칼로 산채로 사람의 온몸을 저며 죽이는 형벌로 거열형보다 몇 배는 지독한 형벌이다.


중종은 준비 없이 왕이 된 인물이다. 주변에는 범 같은 반정 공신들에 포위되어 있고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한 조선의 사림(士林)에 둘러싸여 도무지 왕의 체모가 서지 않은 사람이었다. 태풍이 와 나라가 엉망이 되자 그 까닭을 신하에게 묻자 어떤 신하는 '왕이 시원찮아 그런 듯합니다' 한다. 중종은 어안이 벙벙하다. 그저 눈만 껌벅일 뿐이다. 조선의 신하들은 까칠했다. 세조에게 야자를 놓은 정인지는 물론 효종 때는 왕에게 대놓고 개과천선해야겠다 말한 신하도 있다.


조선실록상의 크고 작은 반역 사건에 바둑이 매개체로 등장한 것은 신기하다. 방간의 난에서 1884년 갑신정변까지는 484년의 차이가 난다. 그러나 방간의 난에서 등장한 바둑이 계유정난, 남이의 변, 박영문의 난은 물론 갑신정변에도 변함없이 등장한다. 갑신정변의 주모자 김옥균은 '갑신일록'을 남겼다. 갑신일록은 지금 일본 수나메하지메(須永元)의 후손들의 손에 있는데 그 속에 두 건의 바둑 기록이 나온다.



-1884년 11월 7일.

조선 고수 두 명을 데리고 공사관(일본)에 갔다. 관원 우치가키(內恒)가 바둑을 잘 두어 조선인과 일본인의 바둑을 다투게 한다는 구실이 적당했다.



김옥균은 정변을 도모하며 일본의 지원을 적극 모색하며 일본 영사관을 무상출입한 듯하다. 주변의 눈을 피하기에 바둑이 그만이라는 육성인 것이다. 김옥균은 며칠 후에 다시한번 바둑을 기록한다.



-1884년 11월 10일.

어제 있었던 바둑모임(圍碁宴)의 답례로 신축한 나의 집으로 다케조에(일본공사), 시마무라(서기관), 고바야시 영사 등을 초대했다. 우리 쪽에서 서광범, 박재형, 윤치호가 함께 했고 홍영식이 늦게 왔다. 시마무라와 옆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본 영사관에서 한일 간의 고수들의 대결 외에 한번 더 바둑 대회를 열었던 모양이다. 일본측에서 술과 여흥을 제공했기에 김옥균은 그 답례를 핑계로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하고 있다. 그리고 시마무라와 밀담을 나눈다.
갑신일록은 김옥균이 일본 망명시 갑신정변의 전모를 일기 형식으로 다시 작성한 일기다. 연구자들 사이에서 진위 여부를 따지는 목소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대세는 진품으로 본다. 


김옥균이 바둑을 이해하고 즐긴 것은 일본의 혼인보 슈에이와의  에피소드가 전한 것이지만 갑신일록을 통해 이렇게 실제적으로 만나는 것은 반갑다. 갑신정변은 실패로 끝났고 주모자들은 해외로 망명을 떠났지만 정변에 참여했던 하급 인원들의 고초는 상상을 초월한다. 형조에서 그들을 문초한 '추안추급안(推及案)'에 갑신일록에서 김옥균이 말한 바둑을 핑계로 한 거사의 도모가 생생하다.



-날마다 옥균 재필의 집에 갔습니다. 갈 때마다 논다는 것을 이유로 떠들썩하다 옥균 재필이 말하곤 했습니다.


지금 세상은 모두 개화를 했다는데 우리만 혼자 개화하지 못했으니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日日頻數往來玉均載弼家數數從遊.常聞共言日各國 人不昔其身得以開化.朝鮮獨立不能焉甚可恨也.)



추급안은 조선의 또 하나의 기록의 보고다. 조선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비변사등록 외 형조 금오(의금부) 한성부 등의 추급안까지 능히 도서관 하나를 꾸밀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한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속에 도무지 무엇이 들어 있을지 우리는 잘 모른다. 박영문의 취조에 나온 바둑을 핑계로 한 반정의 모의가 갑신일록과 추급안 속에 공히 나타난다는 것은 흥미롭다. 바둑이 조선 전체를 관통 하는 놀이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과연 바둑은 조선의 국기(國技)였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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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靑 |  2007-08-16 오전 8:01: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갑신일록의 날짜는 양력입니다. 우리역사에 기록된 갑신정변은 음력이라 혼동 하실듯 하여 사족을 답니다^^  
李靑 아 갑신정변은 음력 10월17일입니다.
李靑 그리고 김옥균의 시체가 바로 이 능지처참의 형으로 다스려지기도 합니다.
나무등지고 |  2007-08-16 오후 2:55: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오메르타(OMERTA):말하지 않는다는 약속  
나무등지고 |  2007-08-16 오후 2:56: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본인이 1등 하기 없기.  
소라네 |  2007-08-16 오후 4:26: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진짜 작가님들의 글을 뵈니 나도작가 코너에 글올리는 것이 새삼 부끄러워집니다^^ 계속 기대속에 기다리겟습니다.  
노을강 |  2007-08-23 오전 10:19: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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