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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傳 5회/ 바둑傳 독해법-신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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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傳 5회/ 바둑傳 독해법-신충
2007-08-06     프린트스크랩

 

전설은 말한다. 옛날 신라에 바둑 잘 두는 왕자와 그를 따르는 사내가 있었다. 두 사람은 매일 잣나무 그늘에서 바둑을 두며 우정을 쌓았고 왕자는 나중 자신이 왕이 되면 사내를 궁으로 불러 우대하겠다는 다짐을 둔다.

훗날 왕자가 왕이 되어 궁에 들어가는데 사내는 아무리 기다려도 왕이 부르지 않자, 시를 한수 지어 잣나무에 걸어 두게 된다. 그러자 푸르던 잣나무가 시들시들 죽어 간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사내를 궁으로 불러 벼슬을 주고 옛 우정을 회복하는데 갑작스레 왕이 죽자 사내는 벼슬을 버리고 산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는 것이다. 절의 이름은 단속사(斷俗寺)라 한다.


전설은 '삼국유사'에 전하는 '신충의 잣나무'로 화제가 바둑이어서 바둑인의 관심을 끄는 에피소드다. 주인공들은 신라 35대 효성왕과 당시 중시(상대등의 전신)를 지낸 신충(信忠)이다.
효성왕과 신충의 우정은 자못 대단했던 모양이다. 왕자 시절의 인연으로 왕이 되자 최고위 관료로 발탁하여 다시 궁에서 만나게 된다. 이 남다른 우정이 삼국유사에 포착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전설은 이 두 사람의 사랑과 우정을 은유하고도 기교적인 어법으로 말하고 있다. 잘 읽어 보면 은근한 호모섹슈얼리티(homosexuality, 남자 동성애)가 느껴질 정도로 아슬아슬하다. 일연은 효성왕과 신충의 에피소드를 접하고 한껏 농익은 환유의 필체를 휘두른다. 그러나 전설의 수원지(水源地)이자 거울인 삼국사기는 일연의 글쓰기를 한껏 비웃는다.


효성왕은 동복형 효소왕의 뒤를 이어 재위 5년 만에 죽은 왕이다. 효성왕은 왕자시절부터 바둑을 좋아했다. 그가 왕위에 오르자 당의 현종은 '형숙'을 대표로 한 대규모 사신단을 보내어 축하를 하고 바둑의 고수 '양계응'을 부사로 딸려 보내어 신라의 바둑을 시험하기도 한다.
효성왕은 재위 3년째 중시였던 '의충'이 죽자 후임으로 신충을 발탁한다. 신충은 당시 '이찬'이라는 차관급 벼슬을 하고 있었다.


효성왕의 재위 기간은 순탄치 않았다. 많은 천재지변이 발생하고 경주 시내에 붉은 옷을 입은 귀신이 나타나는 등 민심까지 이반이 된다. 효성왕의 장인인 '영종'의 반란까지 일어난 정도다.


효성왕은 재위 4년 만(741년)에 허망하게 죽음을 맞는다. 그의 시신은 동해에 산골(散骨)된다. 효성왕의 후계는 그의 동복동생 경덕왕이다.


신충은 어떻게 되었을까. 전설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신충은 머리를 깎고 산에 있어야 한다. 이름도 거창한 단속사(세상과 인연을 끊은)에 가 있어야 마땅할 터이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전설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二十二年 夏四月 遣使入唐朝貢 秋七月 京都大風 飛瓦拔樹 八月 桃13)李再花 上大等信忠 侍中金邕免 大奈麻李純爲王寵臣 忽一旦避世入山 累徵不就 剃髮爲僧 爲王創立斷俗寺居之 後聞王好樂 卽詣宮門 諫奏曰 “臣聞 昔者桀·紂 荒于酒色 淫樂不止 由是 政事凌遲 國家敗滅 覆轍在前 後車宜戒 伏望 大王改過自新 以永國壽” 王聞之感歎 爲之停樂 便引之正室 聞說道妙 以及理世之方 數日乃止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덕왕 22년조)


상대등 신충과 시중 김옹이 면직되다. 대나마 이순이 왕의 총애를 버리고 홀연히 산으로 들어가 머리를 깎고 단속사를 세우고는 그곳에 머물렀다.

삼국사기는 신충을 기록한다.

가) 효성왕 3년 이찬 신충을 중시에 임명하다.

나) 경덕왕 16년 신충을 상대등에 임명하다.

다) 경덕왕 22년 상대등 신충 시중 김옹 사직하다.


삼국사기의 기록은 효성왕 재위시 신충은 이찬이라는 고위 관직에 있었고 중시로 발탁된 것을 말한다. 특히 효성왕이 죽은 뒤 경덕왕 16년에 신라 최고의 관직인 상대등에 임명된다. 그리고 무려 7년을 근무하고 사직을 하고 있다.


1145년에 편찬된 삼국사기의 세밀한 기록을 1295년에 편집된 삼국유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대나마 '이순'이 왕의 신임을 받다가 홀연히 산으로 들어가 단속사를 세우고 승려가 되었다는 구절 말이다. 일연이 삼국사기의 이 대목을 읽다가 이순을 빠트렸거나 오독했다고는 믿지 않는다. 다만 일연의 문학적 소양을 존경할 뿐이다.


일연은 향가 한 편을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삼국사기에 전하는 이순이란 인물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당대 신라의 인물이던 '신충'을 부각시킨다. 한마디로 신비화를 꾀한 것이다. 신화는 항상 이렇게 만들어진다. 지금도 지리산 한 자락에 가면 신충의 '단속사' 터가 전하고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일연과 김부식 이 두 역사의 신(神)이 그리려던 신라사람 신충은 오늘 우리 앞에 이런 두 개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실의 역사와 가공의 역사의 접전은 이렇듯 판이하다.

필자는 조선사 바둑전에서 무조건 사실의 기록만을 말하고 싶다. 필자의 판단은 자제하고 기록과 기록의 행간도 유력한 학계의 성과로 보충(?)한다. 이런 점에서 재미와 흥미가 반감 될 것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많은 회원들이 읽어 준다는 것에 감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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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사람 |  2007-08-06 오후 8:02: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나무등지고 |  2007-08-07 오후 6:02: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2등...^^ 이번편은 재미 좀 적다.. 저번 편은 재미있었는데..  
나무등지고 하긴 뭐... 내 이야기도 재미있는 것은 아니니... ㅠㅠ
소라네 |  2007-08-23 오전 10:46: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당 현종 양계응 을 기억에 남겨야겟습니다. 이런글을 읽게 해주시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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