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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傳 4회] 바둑광(碁王) 세조-當局不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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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傳 4회] 바둑광(碁王) 세조-當局不迷
2007-08-02     프린트스크랩

 

신숙주는 말년에 압구정에 물러나 있던 한명회를 찾아와 정자에서 바둑을 두다 보니 어느덧 황혼이 지고 있었다(亭上殘碁對落日琿)고 했다. 신숙주는 한명회와 더불어 세조 시대의 기둥이었다. 세조와 그들은 결사의 동지였고 지인지감을 아는 바둑 친구였다.


계유정난을 도모하던 시절에도 그들은 바둑을 빌미로 수시로 수양대군의 집에 모여 정변을 모의했다. 방간과 박포의 정변은 실패로 끝났으나 한명회는 이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군권을 완전 장악하고 있던 김종서 일파를 도륙했다. 박포가 말한 언참을 이용한 수양대군파는 전광석화의 일처리로 정권을 잡고 수양을 조선 7대 임금에 등극시킨다.


수양대군은 욕심껏 국왕이 되기는 했으나 도무지 명분 없는 찬탈에 스스로 괴로워한 사람이기도 하다. 요절한 문종과 어린 단종,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득세를 하고 있는 노회한 대신들의 제거가 명분 아닌 명분이기는 했으나 정권 찬탈 과정에 뿌린 과도한 피가 두고두고 부담이었다.


세조는 이를 만회라도 하려는 듯 국정을 바로잡고 문물 정비에 박차를 가하면서 한편으로는 불교와 바둑에 심취하여 자신의 정신적 위로를 삼으려 한다. 세조는 업무가 끝나면 재추(宰樞)에 바둑 고수들을 대기시켜 놓고 바둑대회 겸 조촐한 연회를 즐긴다. 그중에서 압권의 에피소드가 있다.


세조는 정무가 끝난 시간 한명회 신숙주 구치관 최항 등 정승들을 불러 편을 갈라 바둑을 두게 하고 승리 팀에 말 3필을 상금으로 건다. 당시 말 3필 가격은 한양에서 좋은 기와집을 사고도 남는 액수였다. 그날 신숙주 한명회의 팀이 이기고 패한 구치관 최항 팀이 억울해 하자 세조는 패자에게도 말 한 필을 상금으로 주어 위로를 한다.


궁안에서의 이 일은 세조와 공신들의 정담(?)의 일화일 수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당시대의 유행의 척도를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다. 바둑이 그만큼 사회 전반에 습합되어 있었던 것이다. 세조는 수시로 숙위 장교들을 불러 각궁(활)을 상금으로 걸고 바둑을 두게 한다. 세조는 고질적인 피부병 탓으로 잠이 없었고 여색까지 좋아하지 않아 무료한 시간을 거의 바둑으로 보낸다.


(戊午/召左贊成崔恒、西原君韓繼美、吏曹判書韓繼禧、戶曹判書盧思愼、漢城府右尹李坡、中樞府知事尹士昕、都摠管黃致身、衛將權擎、內禁衛將閔發等, 設酌。 又令入直內禁衛及兼司僕等棊, 賜勝者角弓, 人一張。 命諸宗宰, 以次進酒。세조실록)


조선 초기 바둑은 이미 모든 유희 중의 왕(으뜸)이었다. 조선 바둑은 남녀노소 귀천을 가리지 않았다. 나무바둑판 돌바둑판 그것이 없으면 종이 위에 금을 긋고라도 궁안에서부터 시장바닥을 가리지 않고 두어졌다. 실록은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교자(가마)안에서 바둑을 두며 노닥거렸다며 죄를 청하는 기록이 있다. 강상의 윤기에 반한다는 이유였다.


(前縣監安馥淫干其子德大之婦, 憲府論啓, 數其同轎夜半對惎之迹。 上震驚, 命嚴捕。 선조실록)


세조는 부왕 세종의 영향 탓인지 학자적 식견이 있었다. 문무를 겸했다 할만하다.
세종도 바둑을 즐겼었다. 세종은 바둑 고수 조순생을 겸사복(기마대 지원부대)의 관원으로 발탁하여 수시로 그의 바둑을 감상했다. 재주라고는 바둑 두는 것밖에 없다며 조순생을 탄핵하는 언관들의 주장에도 세종은 오불관언이다. 남의 말을 잘 듣는 성군 세종도 바둑의 즐거움만은 포기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세종의 아들들은 모두 바둑을 좋아했다. 문종 수양 안평 금성대군 등 하나같이 바둑의 에피소드가 있다. 세조는 참을성도 있는 왕이었다. 인재를 아끼고 사랑 하는 마음도 남달랐다. 술만 먹으면 세조에게 주사를 부리는 정인지의 경우를 보면 실감난다. 정인지는 술자리에서 여러번 세조를 공박했다. 너니 마니 하는 것은 예사였고 한참 세조가 무엇인가를 주장하는 데, 불가 불가 하며 딴죽을 걸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언관들은 벌떼같이 일어나 죽이라 청한다. 한번은 세조가 노발대발 한다.


-술잔을 들어 담론을 하는데 인지가 갑자기 일어나 나를 욕했다. 인지가 식견이 뛰어나기는 하나 오만하고 사람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이 정도다. 경박하기가 이 시대 제일이다.


세조는 부글부글 끓으면서도 정인지를 용서한다. 재주가 아깝고 또 그 재주를 시대가 필요로 한다는 이유였다.


세조는 정인지 신숙주 서거정 양성지 같은 문인들을 아꼈다. 대놓고 욕을 해도 술 때문이라며 넘어가 주는 담대함이 멋지기도 하다. 그러나 세조는 태종 못지않은 카리스마의 소유자기도 했다. 김종서를 직접 척살한 양정은 홍윤성과 더불어 세조의 군부의 심복이다. 그런데 술자리에서 한 실언으로 3일 만에 참수를 당하기도 한다.


피곤해 하는 세조에게 이제 편히 쉴 때가 된 듯하다는 말 때문이었다. 욕도 문인과 무인은 가려서 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인의 욕은 주사라 할 수 있지만 무인의 욕은 곧 칼이라는 세조 나름의 생각인 것이다.

세조는 주역에도 관심이 많았다. 권근에게 주역을 찬하게 하고 양성지 한계희 등에게는 오행을 연구하게 한다. 세조는 주역과 일역(日歷)을 공부하며 '위기응골도'라는 정체불명의 말을 실록에 남기기도 한다. 음양오행을 말한 어떤 책일 것이란 추측만 남아있는 이 대목은 미스터리다.


끊고 젖히고 붙이고 전개하는 바둑판 위에서 변화의 모양과 81로의 국상(局上) 위의 음양오행은 무엇이 닮은 것일까. 위기응골도는 바둑판 모양의 도상 위의 어떤 변화도로 추정되지만 음양오행을 바둑과 연관지어 생각했던 세조의 아이디어는 뜻밖이다.


(《五行圍碁法》, 再三修改, 猶未當, 上卽下筆曰: “圍碁乃立極。 五行子相擊挾打圍, 積畫取極, 能事畢。 局路八十一義, 掛數配極. 세조실록)


세조는 재추에 바둑 고수들을 묵게 했다. 서거정의 필원잡기에 재추에 말과 장기 등에 능한 사람이 있다고 언급을 한 바 있다. 서거정은 바둑광이었다. 그는 바둑시를 십여 편 남기기도 했다. 서거정은 바둑판을 대하면 정신부터 혼미해진다(堂局不迷從古小)라 했다.

세조 때에 오면 조선의 바둑은 궁녀 환관 약방(내의원)의 의사들까지 미친다. 즐기는 정도가 아니라 업무 중에 바둑을 두다 문책을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궁 밖의 번듯한 집에서는 잔칫날에 바둑판 몇 벌을 준비하는 것이 상례였다. 어떤 여자는 바둑으로 남자를 꼬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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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55 |  2007-07-30 오후 3:45: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연재 일자를 매주 금요일에서 목요일로 하루 당기겠습니다.  
푸른산야 |  2007-08-02 오전 10:04: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자료조사를 많이 하였을 덴데 너무 고생이 많으십니다 잘 읽고 있습니다
 
dori124 |  2007-08-02 오전 11:33: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이조 초창기 왕 들의 역사가 화려한데 바둑 문화도 이렇게 발달되어있는줄은 몰랐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서정이아빠 |  2007-08-02 오전 11:53: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보고있습니다. 역사속의 바둑 참 재미있군요.
"서거정은 바둑판을 대하면 정신부터 혼미해진다(堂局不迷從古小)라 했다." 당대의 문인 서거정이 그러하니 별볼일 없는 제가 바둑판 앞에서 정신을 놓치는 건 당연하네요...
감사합니다.
 
노예의꿈 |  2007-08-05 오후 6:45: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정인지가 욕한것을 참을수 있는것은 일상에서 벗어난 대화의 일탈정도 이지만 양정이 쉬라고 한건 왕위에서 물러나라고 한것이므로 대역죄에 해당 합니다. 태종 이방원의 경우 상왕으로 물러난 처지에 있으면서도  
노예의꿈 |  2007-08-05 오후 6:51: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병조에 관한 일만은 반드시 직접 챙겼고 이를 위반한 강상인이나 박습등을 의금부에 내려 심하게 다스렸습니다. 강상인의 경우는 잠저에 있을때 부터 모신 공신인 점을 참작하여 낙향으로 매듭을 지었지만 다른 사람  
노예의꿈 |  2007-08-05 오후 6:58: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들은 처지가 비참 했습니다. 그만큼 왕자신의 위치 설정에 영향을 줄수 있는 발언에 대해서는 민감 할수 밖에 없고 그런 발언을 한자에게는 가혹 하게 대처 할수밖에 없는 것이 전제 군주의 특징 일것입니다.  
체리통 |  2007-08-06 오후 4:43: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강호에 인걸이 득시걸이라  
나무등지고 |  2007-08-07 오후 5:58: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 서거정할아버지의 책 태평한화골계전을 보면 바둑을 어떻게 대했는지 그 분위기가 짐작이 갑니다. 바둑을 두더라도 그렇게 승부에 연연하지는 않았는듯.. 그 반상에서는 최선을 다했겠지만.. 그래고 혹, 세조의 피부병은 아토피인가요?  
검은휘파람 일종의 에이즈란 설도 쩝!
나무등지고 나도 빨리 3억5천 모아야지.. ㅠㅠ
소라네 |  2007-08-23 오전 10:52: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읽을수록 다음편이 기대되네요 이런글을 읽게 해주심에 감사드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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