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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傳 3회] 스스로 부르는 파국(破局)-말자들의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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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傳 3회] 스스로 부르는 파국(破局)-말자들의 행진
2007-07-27     프린트스크랩

 

조선 3대 임금 태종(이방원)은 신흥국 조선의 체제를 정비하고 왕권을 획기적으로 강화한 왕이다. 태종은 이미 20대 초반에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강씨 소생인 방간 방석과 정도전 등의 세력을 제거하고 아버지 태조도 어쩌지 못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다.


태종은 방의, 방간 등의 동복형제들과 이화, 이거이, 이숙번, 조영무, 조박, 민무구, 민무질 등 형제 처가를 중심으로 한 친족 세력과, 자파 무장들로 결사(結死)의 단체를 꾸려 당대의 어떤 세력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위치에 있었다. 태종은 목적을 이룬 다음에는 서슴없이 결사를 허물어트리고 자파의 인물들까지 숙청을 하는 비정한 정치로 조선 천지를 공포에 떨게 했다.


인척인 이거이 세력의 분쇄와 민무질 민무구 등 처남들까지 죽이고 평생 동지와도 같았던 이숙번까지 숙청하는 토사구팽의 모범을 보였다. 피도 눈물도 없었다. 그러나 태종의 공포 정치는 어수선하던 시대의 기강을 다잡고 세종시대라는 발전과 안정의 시대로 안내했다는 역사의 평가를 가능케 한다.
카리스마의 화신 태종은 재위 기간 중에 두 명의 인간 말자(末子)를 만나는데 '이굉'과 '양령'이다. 이굉은 태종 공신 중의 한 사람인 이천우의 아들이고 양령은 태종 자신의 큰 아들이다.


이천우는 태종의 잠저 시절부터 보필해 온 무장이었다. 이천우는 변함없는 충정으로 태종의 절대적 신뢰를 받으며 평생을 함께 하다 주군보다 먼저 죽음을 맞는다. 태종은 3일간이나 정무를 폐하고 애도를 했고 신하들도 안타까워한다. 그런데 정작 상주가 문제였다.


이굉은 아버지가 위독한데도 문병은 하지 않고 집에서 바둑을 두며 큰 소리를 내 환자의 심기를 거스르고 사냥을 나가 갑사(甲士)의 아내를 빼앗아 첩으로 삼는 등 마치 병든 아버지를 빨리 죽기를 바라는 듯했다. 이천우가 죽자 이굉은 송장 냄새가 난다며 방문을 닫고 계모에게까지 시신을 못 보게 하고는 이천우가 계모에게 준 토지 노비 등을 모두 빼앗았고 첩 하나를 데리고 옆집으로 가 묵었다.


특히 이굉은 이천우가 애첩에게 보석을 주었다는 것을 알고 그 애첩을 구타하고 그것을 빼앗고는 계모를 협박하여 친구에게 시집을 보내는 등 그 행위가 천도를 거슬렀다.


(“父卒, 吾當回換受賜。” 再傷病父之志。 又當病革之時, 宏不侍側奉藥, 而着棊戲謔, 又佩劍率衆, 怯取屬散甲士金乙生之妻爲妾。 及父卒, 於沐浴、飯含之時, 塞鼻而出, 大斂入棺之時, 稱其臭惡, 滿面塗藥, 揜鼻退立, 繼母及妾欲入見之, 閉門不納。 又父曾以奴婢與皇甫氏, 侵奪其六口, 父卒未幾, 打傷其父之所親信奴沙顔吐, 以致逃去, 태종실록)


태종은 이 보고를 받고 기겁을 한다. 아들이 아비의 죽음을 욕되게 하고 어미(계모도 어미)를 능멸했으며 아버지의 첩들을 구타하고 내쫒은 행동은 만행이랄 수 있었다. 신하들이 참형으로 처단하라며 아우성이 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태종은 이천우를 생각하여 그 재산을 몰수하고 귀양을 보내는 것으로 사건을 매듭짓는다. 


이굉은 병상에 있는 아버지의 지근에서 바둑을 두며  환자를 자극한 것으로 실록은 기록한다.
태종의 친위 세력들은 거의가 바둑을 둘 줄 알았다. 이거이 조영무, 권희달, 이애, 민재,남재 등 모두가 실록에 바둑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민재는 두 아들인 민무구 민무질의 정치적 입장을 조율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집으로 몰려들어 자연스럽게 기원(?)이 된다. 실록은 민재가 바둑을 핑계로 사람을 모아 붕당을 이룬다는 탄핵 상소가 있다.


무장 권희달은 한참 선배인 조영무와 바둑을 두다가 시비가 붙어 조영무의 집무실을 때려 부수는 소동이 나기도 한다.
조선은 바둑을 문화의 척도로 여겼다. '윤봉'이 태종의 명을 받고 명에 사신으로 갔을 때 궁의 환관이 조선은 달자(達子 몽고)와 같은 족속 아니냐 하자, 달자들이 금기서화를 아느냐 핏대를 세우며 따져 사과를 받기까지 한다.


(“太宗皇帝時, 有一太監, 與我同坐曰: ‘朝鮮人與達子無異。’ 予內懷怒意曰: ‘達達亦知琴碁、書畫乎?’ 其人赧然曰: ‘我失言矣。’” 鄭善曰: “達達與狗無異" 父則狼, 母則白鹿, 只食牛馬乳, 牛馬乃達達父母也。문종실록)


당나라 이후 지식인들은 문사철(文史哲)과 금기서화를 알아야 지식인이란 인식이 있었다. 인간 말자 이굉은 문사철은 모른 채 금기주색(琴碁酒色)에 몰두한 것이 문제였다.
이굉과 비슷한 사람이 양령이다. 양령은 바둑과 매사냥에 거의 미친 사람이다. 할머니 한씨의 제삿날에도 바둑판과 고수들을 대동하고 제사를 모시는 절로 가 바둑에 몰두를 한다. 따라온 동생 충령(세종)이 만류를 하자 너는 법당에 가 잠이나 자라고 한다.


양령은 구종수 구종지 형제와 친하게 지낸다. 이들은 야망이 있어 놀기 좋아하는 양령을 수시로 자신들의 집으로 초대하여 여자들을 소개하고 바둑 고수 방복생(方卜生)을 불러 양령과 대국을 주선하여 그를 미치게 만든다.
방복생은 사서(史書)에 기록된 몇 명 되지 않는 바둑의 고수다. 바둑은 기생들이 거문고를 켜는 장소에서 두어진다. 바둑이 끝나면 술이 들어오고 무희들이 춤을 추고 양령은 그중에서 미색을 골라 잠을 자고 마음에 들면 아예 궁으로 동행하는 파격을 서슴지 않는다. 양령은 여자에 집착을 한다. 구종수 집에서 데려온 가이(可伊)를 태종이 내치자 정면으로 반발 하며 부왕에게 커다란 벽보에 큰 글씨로 항의문을 보내기까지 한다.


-전하의 시녀는 모두 궁에 들어와 있는데 다 중하고 예쁘게 받아들이지 않는지요. 가이를 내보내라 하시니 그녀가 살아가기 어렵고 또 바깥에서 여러 사람과 통하게 되면 소문이 아름다울 것인지요. 지금껏 신의 많은 첩들을 모조리 내치셨는데 곡성이 사방에서 들리고 원망이 나라 안에 차니 어찌 일이 아닐는지요. 한나라 고조가 산동에 거할 때 재물과 색을 탐했으나 어찌되었는지요. 진왕이 어질었으나 나중에 나라가 망한 걸 보십시오. 전하는 나중에 신이 큰 효자가 될 것을 왜 모르십니까.


태종은 양령의 이 서찰을 보고 기겁을 한다. 그리고 세자 폐위를 결심한다. 곁에 있던 승지 황희는 세자 나이가 어리다는 말만 읊조린다. 양령의 나이 23세 때의 일이다. 태종은 그 나이에 천하를 도모한 사람이다. 양령은 부왕이 건재한 궁안에서 많은 궁녀들과 관계를 하는 일탈을 서슴지 않다가 끝내 도전적인 항의서 한 통을 쓰고 세자 자리에서 쫓겨난다. 풍류 남아로 인식된 것은 동생 충령의 사랑과 배려 때문이다. 실록에 보이는 양령의 진면모는 이굉과 동류다. 


당서(唐書)에는 당국자미방관지심(當局者迷傍觀者審)이 나온다. 바둑을 두는 사람보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수가 더 잘 보인다는 말이다. 때로는 주변 사람의 조언도 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는 말이겠다. 
이굉이나 양령은 스스로 파국(破局)을 만든 사람들이다. 파국은 끝난 바둑을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당국과 파국 모두 바둑에서 나온 말이다. 태종이 충령을 눈여겨본 것은 온유하다는 것이었다. 온유는 사실 별게 아니다. 방종하지 않고 조급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다릴 줄 안다는 말이다.


역사는 기다리는 사람의 것이다란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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낼모레면 |  2007-07-27 오후 1:10: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1등..1등..이건 내가 1등..  
애명 |  2007-07-27 오후 5:50: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방대한 자료수집과 식견에 찬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바둑사에 불멸의 지표를 세워주시길...  
dori124 |  2007-07-30 오전 11:02: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좋은글 잘보았습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양령보다 훨씬 패륜아 였네요 태종같은 카리스마
를가진 지도자 도 부럽 습니다  
체리통 |  2007-07-31 오후 12:26: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고 불필요한 감정에 얼룩짐이 없어 읽기가 참으로 개운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등지고 |  2007-08-07 오후 5:46: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태조의 공포 정치는 <-오타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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