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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傳 프롤로그] 바둑 神話와 악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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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傳 프롤로그] 바둑 神話와 악수하다
2007-07-18     프린트스크랩

 

1. 산해경 속의 바둑


사(史) 또는 무(巫)로 불리던 샤먼이 신명(神明)을 부르던 행동인 악(樂)과 무(舞)를 버리고 서(書)와 자(字)를 주관하던 시대로 오면 샤먼은 드디어 제(帝)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인간의 신(神)이 된다. 제(帝)는 왕으로 사(史)와 무(巫)가 주도하던 부족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 부족의 영도자가 된다.


제(帝)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 서(書)를 담당하던 사람들인 서학동(書學童)들은 인간의 신 帝가 다스리던 세상을 기록했으니 그것이 바로 '산해경'이다.


'산해경'은 중국 고대 신화 전설의 모체로, 중국 고대의 인문 지리를 묘사하고 있는 중국의 삼국유사다. 삼국유사보다 1천년이나 먼저 쓰였고 저자 또한 불명이다 보니 사서(史書)로 약점이 있다 할 것이나 신화를 역사로 읽어내는 학문적 성과가 나오면서 중국 고대사 연구의 중요한 텍스트가 된 책이다.


산해경은 요순시대 이전을 말하고 있다. 황제, 전욱, 제곡, 요, 순으로 이어지는 삼황오제 시대의 오디세이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데 이 산해경 속에 바둑의 에피소드가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한다.

 

苦山之首曰休與之山其上有石焉.名曰帝臺之碁.
五色而文其狀少鵠유帝帶之石.所以禱百者也.腹之不蠱...
-산해경 중 차칠경


고산(苦山)이 있다고 한다. 고산은 황하 중류에 있는 산인데 눈과 털이 붉은 산돼지 모양의 형상으로 바른말을 잘 하는 산고(山蠱)가 살고, 정상에는 노란색에 잎이 둥근 나무 황극(黃棘)이 자란다. 고산은 휴여산, 고종산, 고요산 등을 좌우 2백 리 안에 거느리고 있는 명산이란다.

이 고산의 초입에 휴여산이 있다. 휴여산에 돌이 있는데 帝의 바둑돌이라 한다는 것이다. 돌은 오색인데 메추리알처럼 생겨 ‘제대(帝臺)의 돌’이라는 이름을 얻었단다. 이 돌은 온갖 신들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기도 하고 신들의 놀이로도 이용되며 사람이 돌을 갈아 마시면 약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산해경의 이 기록을 '소천탁치'는 박물지의 요순의 바둑 기록보다 앞서는 기록이라 하고 '주백고'는 휴여산이 신들이 모여 바둑을 두던 산이라 고증을 한다.

고종산은 '회남자'에도 보인다. 신들이 모여 놀던 산이 휴여산이란다. '목천죽간'은 염제의 딸 '여시'가 죽어 묻은 곳이 고종산이란다. 그렇다. 휴여산 고종산 고산은 중국 신화의 중심산이다. 帝의 바둑돌은 박물지에 전한다는 요순의 바둑신화보다 앞서는 기록으로 바둑이 삼황오제의 창조 신화까지 역사가 올라간다는 증거인 것이다. 신화는 신화일 뿐이라 하지만 20세기 탁월한 언어학자 '바르트'의 말은 음미할만하다.


-신화는 언어와 마찬가지로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한 체계다.


이 말은 언어가 일차 기호 체계라면 신화는 일차 기호 체계로 공표하지 못한 '기표'와 '기의'를 함의한 '메타' 언어라 할 수 있다는 거다. 다시 말해서 신화는 신화 안에서 2차 언어로 무엇인가를 말한다는 것이다. '바르트'나 '소쉬르'는 신화를 역사의 1차 사료로 접근하는 길을 열어 놓은 사람이랄 수 있다.


제대(帝臺)를 놓고 여러 해석이 뒤따른다. '소천탁치'는 臺는 의미 없이 끼여든 것으로 보았고 '주백고'는 帝의 바둑판이라 한다. 帝臺는 제사를 올리던 바둑판 모양의 돌 정도가 아닌가 한다. 그렇게 해석을 하면 제대지석(帝臺之石)이 온전히 해석이 된다.

주역 '귀매괘'에 귀매제을(歸妹帝乙)이 나온다. 제을(帝乙)은 은의 마지막 왕 '주왕'의 아버지다. 제을의 여동생이 시집을 간다는 말이다. 은허점사의 시대에는 帝는 신이자 군왕이다.


臺의 갑골문의 뜻은 사당 위에 풀이 자라 있는 모습이다. 사당은 제사를 지내는 곳이고 그 위에 풀이 나 있으니 노천에 방치된 제단, 즉 커다란 바위 정도가 아닐까. 帝가 휴여산에 와 제대의 바둑돌을 이용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것은 바둑의 출발이 유희(遊戱)라기보다는 점복에 가깝다는 말로 이해된다.


휴여산에 거동한 帝를 '한서'는 황제로 특정한다. 황제는 삼황오제의 첫번째 바로 중화민족의 창조조 바로 그 사람이다. 산해경은 박물지보다 한단계 높은 신화적 어법으로 쓰인 책이지만 박물지에 전하는 요순의 바둑 신화보다 바둑에 한해서는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모습이다. 띠풀을 덮어 겨우 겨우 비를 피하는 정도의 순의 집무실에 뽕나무 무늬로 된 바둑판에 상아로 만든 바둑알로 아들에게 바둑을 가르쳤다는 언어도단의 어법은 가당찮다.


휴여산은 황하의 중하류에 있다. '탁록'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탁록은 시간과 역사가 만날 때 토템족들의 일대 쟁투가 있었는데 뱀을 숭배하던 황제(화이)족과 새를 숭배하던 치우(동이)족의 싸움이 그것이다. 제대지기(帝臺之碁)는 바로 이 시대에 나온 말이다. 요순 시절 보다도 더 올라가는 바둑의 역사의 한 장면이다.



2. '가호' 무덤이 전하는 의미


바둑이 주역과 어떤 이유에서건 관련이 있다는 것은 필자의 독단적인 생각이 아니다. 바둑은 이미 고대부터 저명한 평자들로부터 주역과의 연관성이 거론되어 왔다. 그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육상산'이니 '구양수'이니 하는 인물들은 차치하고 '소천탁치' 같은 근대의 발군의 학자까지도 주역의 출발과 바둑의 출발의 접점을 진지하게 거론할 정도였다.


바둑이 승부를 다투는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한중일 바둑 주변에서 바둑의 철학과 문화적 충의(衷意)를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전무해졌고 기껏 필자를 포함한 역량 부족의 필자들이 정교하지 못한 글로 겨우겨우 바둑의 승부 외적인 고찰을 시도하는 정도여서 '소천탁치'의 빛나는 학문적 성과를 전혀 계승하지 못하고 있는 황량한 상황이다.


'바둑 안에 주역 없고 주역 안에 바둑 없다'는 언필칭 바둑 전문가의 주장에도 아무런 반론은 물론 어해(語解)조차 짐작해 주는 필자 한명 없는 말라버린 바둑계의 사유 기반이 허망하다.


바둑이 동양사의 태동과 함께 오늘날까지 변함 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던 점은 바둑이 가진 무궁한 수법(數法: 手法은 틀린 말이다)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바둑이 담아내고 있는 사유(思惟)도 무시할 수 없다.


바둑은 무궁한 수법과 동양적 사상의 함의를 담아내고 표현하는 철학적 문화적 성격이 있었기에 '만가지 놀이의 왕'(삼국지, 좌전 등) '철학의 방편'(육상산)으로 중단없는 보급과 전승이 있었다. 중국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한국)의 바둑의 연원이 깊고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다.


단언하건대 국내에 전하는 고려 조선의 문헌 태반이 바둑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오늘날의 한국 바둑의 성과가 몇 명의 천재적 기사의 출현과 매스컴의 집중적 조명 덕으로 보는 단세포적인 진단이 그저 멋쩍다.


8개의 귀갑(龜甲) 무엇을 의미하나

은허문자가 나오기 전, 삼황오제의 신화도 태동하기 전, 토템족의 정신적 모태인 큰 뱀(용)의 형체도 아직 성립하기 전, 용산문화니 홍산문화니 하는 편의적인 연대 편년이 겨우겨우 추정되던 시대의 중국 무양현 '가호'에서 발굴된 중기 신석기시대의 무덤은 놀라운 것이었다. 기골이 장대한 유골을 중심으로 돌칼, 돌화살촉, 그리고 뼈로 만든 피리 등이 묻혀 있고 유골의 머리 위에 어른의 손등만한 '귀갑(龜甲)' 8개와 귀갑 안에 작은 잔돌들이 불규칙한 수량(총 55개에서 70개 사이)으로 들어있는 채 발굴된 것이었다.


등과 배 부분의 귀갑이 온전한 상태로 그 안에 0개에서 25개로 불규칙하게 나온 손톱 크기의 잔돌은 학자들의 토의 끝에 '고대의 점복의 도구'로 본다는 발표가 있었다. B.C 5천년~1만년에 해당하는 중기 신석기시대의 무덤 안에서 나온 귀갑이 점복의 도구였다면 이곳에서  8개의 귀갑과 55~70개(일부 깨진 것을 추론)의 잔돌이 八象(팔괘)과 64괘라는 주역의 면모를 떠올리는 것은 문의망상(형태를 보고 무엇을 억지로 추론함)으로 보기만은 어려울 것이다.


점복에서 8이라는 숫자의 개념이 왜 중요한지 출발의 이유가 무엇인지 8상에서 64괘가 나온 배경에 논리가 없다든지 하는 질문은 뒤로하더라도 8이란 숫자의 개념이 중국에서 지극히 일찍부터 생겨났다는 점만은 인정이 된다할 것이다.


이 부분에서 필자는 '소천탁치'의 안목을 높게 평가한다. 그는 '가호'의 유적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일찍이 중국에서 8이라는 숫자의 개념이 생겨났고 바둑을 포함한 여러 가지의 반상 게임이 시작되었다'는 놀라운 통찰을 한 바 있다.


'소천탁치'는 바둑의 출발을 8도(道) 반상(盤上)에서 시작된 '국희(局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동시에 그는 각기 따로 놀며 천지분간을 못하는 바둑연구가들과 주역연구가들을 질타한다.


-위기의 기원이 64방격에 있고 기자(棋子)가 그 경계선의 교차점에 놓여 9도(道) 81로(路)를 상상케 하고 17도(道) 반은 이것을 4개 합친 것으로 간단한 유희가 복잡화하여 처음으로 현재의 위기와 같은 방식이 나왔다고 본다.


이런 여러 종류의 국희(局戱)에 사용된 8. 8. 64 방격(方格)의 반면을 고찰하는 데 있어 우연히 주의를 끄는 것은 일종의 불가사의한 정방형(正方形 magaic square) 안에 2차 정방형 (square of two degrees)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과 관련하여 가장 흥미 있는 것은 건(乾)이하 8괘를 2개씩 조합한 복서(卜筮)의 기본수 64괘가 단순한 수의 일치가 아니고 이와 같은 방격의 하나하나에 길흉화복의 조후(兆候)가 분배되어 있어, 8괘는 이것을 결정하는데 사용한 특수한 기구(器具)에 조각하여 사용한 기물이 있었을 것이란 가설이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소천탁치'의 마니아는 아니다. 그러나 바둑사라는 부분에서 그와 비교될만한 논자(論者)를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를 능가할 논자의 출현이 난망(?)한 바둑계의 풍토 안에서 그를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가호 무덤의 주인의 삶은 무엇인가

인간이 신을 찾는 과정은 인간으로의 준칙과 판단의 기준을 신에게 구하는 곳에서 시작되었다고 '이봉'은 말한 바 있다. 無事無占無日無祭 하던 시대는 주나라뿐만 아니라 은(상) 하나라는 물론 저 까마득한 신석기시대까지로 올라간다는 것이 놀랍고 경의롭다.

무덤의 주인은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남쪽으로 다리를 뻗은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머리 위에 둥근 원으로 놓여 있던 8개의 귀갑은 다음 순서로 잔돌을 귀갑 안에 넣고 있었다.


(가)6개 (나)11개 (다)12개 (라)25개 (마)14개 (바)8개 (사)0개 (아)0개


귀갑과 잔돌이 점복의 도구였다면 8의 의미를 주역의 팔상(八象)으로 보고 각기 주역의 64괘의 주어진 의미를 비교하면 재미있는 결론을 얻게 된다.


(가)송괘 (나)태괘 (다)비괘(丕) (라)무망 (마)대유 (바)비(比) (사)불명 (아)불명


1월의 의미가 있는 태괘는 제사를 올릴 고기를 들고 강을 건너는 마음이다. 7월의 의미가 있는 비괘는 도무지 답답하여 풀리지 않는 마음이다. 훗날 정약용은 태괘와 비괘를 대치(待置) 즉 상대적인 위치에 있다고 했다. 相通相合과 不通不和를 말한다.


무덤 속의 주인공은 이 극단적인 갈등 속에서 중기 신석기시대를 살았던 듯하다. 극과 극은 비범한 삶의 반영이겠다. 중기 신석기시대를 살던 샤먼의 삶은 결코 간단치 않았을 것이다. 무망괘는 태괘와 비괘의 중재자다. 색화초복(화를 물리치고 복을 부르는)을 임무로 하는 샤먼의 삶은 곧아야 한다고 한다. 곧지 않으면 샤먼의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 주인공의 말년은 비괘(比卦)에서 결론난다. 머리가 없는 것이 비다(比之无首). 그렇다 샤먼은 샤먼답게 살다가 샤먼답게 죽는다. 샤먼의 죽음을 말한 귀갑과 잔돌의 메시지는 결코 행복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물론 중기 신석기시대의 귀갑 잔돌로 주나라에 와서 완성된 주역으로 역해석을 한다는 것이 타당성이 있을 리 없겠으나 8개의 귀갑과 잔돌이 八象六十四卦의 의미와 연관이 있다면 이 추론이 전혀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닐 터이다.


오늘날 八象의 부호가 인간의 생식기를 뜻한다는 학자들과 희생(犧生)의 의미라는 학자 등 유력한 논지가 있다. '소천탁치'는 바로 이 八象을 주목 8도 반상(盤上)의 출현을 말했다. 바둑이 박물지 산해경을 통해 역사 이전의 시대를 말하는 것도 결코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3. 조선사 바둑전(傳)


조선사(朝鮮史) 바둑전(傳)은 신화의 포연에서 벗어나온 바둑 역사의 생생한 기록이다. 조선실록의 4백여 건의 바둑 기록을 모두 취합하여 20여 개의 테마로 정리를 할 것이다. 부족한 것이 많을 것이다. 필자 자신이 이런 작업을 할 입장도 위치도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이런 작업을 기다리다 목말라 죽겠기에 먼저 샘을 판다.


아는 척을 좀 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역사적 식견도 한자 실력도 믿을 것이 못된다. 전공을 한 것도 아니다. 이점을 십분 이해하고 앞으로 읽어주기를 바란다. 연재는 일주일에 1회 게재를 원칙으로 하되 속도가 붙을 때면 2회를 올릴 때도 있을 것이다. 모쪼록 사이버오로에서 일상의 스트레스를 씻어버리고 생활의 활력을 찾으셨으면 한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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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몽스 |  2007-07-18 오전 11:33:00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신화와의 악수~ 기대가 됩니다...작가님 건필하시길 기원합니다~^^*  
나무등지고 |  2007-07-18 오후 2:10: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2등^^  
폭풍999 |  2007-07-18 오후 6:19:00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앞으로 기대만땅입니다..
근데요 바둑안에 주역없다는 누가 말한건지 그친구에게 따지고 싶읍니다...
화투패 52장에도(두꺼비4장 포함) 4상과 12지간이 조인트 된 ..
길흉화복의 심오한 묘리가 숨어 있거늘....
 
부지사생 문용직 교수님이었던거 같은디 ^^
낙지대그빡 |  2007-07-18 오후 6:25: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4등^^ 순위꿘~
오로에서도 이청님 글을 볼수 있다니 기쁩니다^^ 건필건필~!!  
사다리 |  2007-07-18 오후 6:46:00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우와~ 기대만땅임돠 !!!! 바둑력사에 대한 날카롭고도 사실자료에 근거한...지가 지금껏 접한 제대루된 진짜배기 글을 만나듯함돠....담편이 벌써부텀 기다려짐돠....  
강북거사 |  2007-07-19 오전 7:21: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이청님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저는 바둑강사(브레인엎) 입니다, 몇몇 뜻있는 분들이 바둑철학에 관하여 나름대로 고심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전무하지만은 안습니다. 이점은 참고하셨으면합니다.  
체리통 |  2007-07-25 오전 12:12: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강북거사님, 연구자는 있을지 몰라도 아직 성과가 미미함을 이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노을강 |  2007-08-23 오전 10:20: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나 유용합니다.  
op11 |  2011-01-07 오전 8:15:1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음~  
장기고수 |  2016-03-15 오후 3:53:2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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