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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일기(15)/ 조선사신들이 본 일본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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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일기(15)/ 조선사신들이 본 일본바둑
2008-12-05     프린트스크랩

  

원중거는 일본사행기록에서 조선과 일본의 수준 차이를 체험적이고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원중거는 조선과 일본의 차이를 문(文)을 아는 학자들의 수준이 제일이고 그에 못지않게 의술의 수준을 들고 있다. 일본의 각 지역에 의원이 있는데 모두 녹봉을 받고 글자도 아는 지식인임에도 불구하고 의술의 수준은 겨우 조선삼이 만병통치약인 줄 아는 수준이라 한다.

원중거가 1763년 떠난 계미사행을 준비하는 조선조정의 대처에도 일본이 얼마나 조선삼의 획득에 혈안이 되어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아래 원문 참조). 원중거는 일본인들이 조선삼의 씨앗을 들여와 일본에서 수없이 재배를 시도하다 실패한 사례를 기록하며 일본의 조선삼 재배의 성공이 오히려 조선삼의 가격을 떨어트려 조선 일본의 백성들도 좀더 쉽게 조선삼을 구입해 복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지도 피력한다.

원중거가 따라갔다 온 계미사행의 정사는 조엄이다. 조엄도 당시 사행의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몇 줄의 바둑을 언급하고 있어 반갑다. 조선시대 통신사라 불리는 많은 조선의 문사들이 일본을 다녀와 각기 일기란 이름으로 기행문을 남기고 있는데 그 속에는 하나같이 한두 줄의 바둑이 언급되어 있다. 원중거보다 70년 정도 먼저 일본을 다녀온 신유한은 일본 본토의 서민들의 생활을 자세하게 기록하며 일본의 한 어촌에서 본 바둑의 풍경을 목도하고 기록한다.  


남도(일본)에 있었다. 막중(幕中)의 여러 동료들이 서산(西山)의 좋은 경치를 보고 와서 신선 같은 놀이를 했다고 자랑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또한 날마다 여러 시를 청하는 왜인들에게 부대끼고 보니 답답하여 뜻에 맞지 않았다. 저물녘에 동자 하나를 데리고 왜통사ㆍ금도 각 한 사람씩과 더불어 한가롭게 산보하여 해변으로 나갔다. 민가 울타리를 돌아가면서 걷다가 쉬다가 하였는데, 대[竹] 울타리와 꽃동산을 보니 눈에 보이는 것마다 그림과 같았고, 사람들이 혹 마주앉아 바둑을 두는데 소리가 땅땅하여 바로 소동파(蘇東坡)의
백학관(白鶴觀)이 생각났다.


신유한은 바닷가 한가한 일본의 어촌에서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일본의 백성들의 삶을 목도하고 놀란 나머지 산문으로 그치지 않고 아예 시 한편을 지어 첨부한다. 이 시대 정학용이나 이학규 등의 글에 보이는 조선 백성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비교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물가에 어른거리는 포구의 그늘 / 津頭宛宛瓊樹陰

앉아서 바둑 두는 사람 있네 / 有客坐彈棋

나는 사람은 모르고 바둑소리만 듣는데 / 我聞棋聲識人

대울타리 초가집이 맑고 조용하네 / 竹籬茅屋清且夷

어찌 상산(商山)의 사호(四皓)랴 / 豈是黃谷與園綺

푸른 수건 쓰고 칼을 찬 오랑캐 아이로세 / 綠頂帶劍蠻家兒

머리 들어 바라보매 흰구름이 먼데 / 擡頭一望白雲遙

늙은 소나무 약초풀이 얽혀 있네 / 古松神草光紛披

나는 선인을 생각하며 한 번 노래 부르니 / 我思仙人一放謌

선인은 바다가에 있네 / 仙人乃在海之湄

구름수레는 오지 않고 학만 높이 나니 / 雲駢不來鶴飛高

저물녘에 홀로 서서 탄식만 하네 / 日暮獨立空嘆咨

내 스스로 말한다 천도복숭아 훔친 동방삭(東方朔)은 / 自說偸桃漢大夫

시끄러운 세상에 글을 지어 임금의 탑전에 올렸네 / 風塵作賦登瑤墀

우연히 삼한의 사신 따라 왔는데 / 偶逐三韓使者來

목란으로 배 만들고 계수나무로 깃대를 했네 / 木蘭爲舶桂爲旗

진동이 크게 웃으며 나를 보고 말하기를 / 秦童大笑向余言

진시황도 삼신산에 속았다네 / 祖龍亦被三山欺

안기생(安期生) 갈 때에 옥신을 두고 가더니 / 安期去時留玉舃

간 뒤에 구름 안개 바람이 부셔졌구나 / 去後煙霞風碎之

해변엔 돌 쌓은 무덤 우뚝우뚝 / 海濱築石靑磊磊

왜 선인이 되지못하고  해골로 묻혔는고 / 何不作仙埋枯骴
 

신유한의 기록은 광해군 인조 이후 일본의 내정이 정치적인 안정과 경제력 축적이 가져온 일본문화의 활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것은 '덕천실기'에 나오는 무사는 모든 것에 능해야 하고 특히 기예에 밝아야 한다는 도꾸가와가(家)의 통치이념과 무관치 않다.

도꾸가와이에야스는 바둑을 잘두지 못했지만 바둑을 일본전역에 보급하여 소수만의 도락이 아닌 전 일본인의 도락으로 만들어간다. 도꾸가와가의 방침을 신유한이 목도했고 50년 후 일본을 갔다온 정희득 또한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의 일기 해상일기에 실감나게 기록한다.

유식한 자라야 어버이 상사(喪事)에 30일 복을 입고, 그 나머지는 4~5일로 그치며, 살육(殺戮)을 농사만큼 여겨 전쟁의 공을 제일로 삼으며, 집집마다 불상을 모시어 숭배하고, 형벌은 무척 가혹하며, 시서(詩書)와 예악(禮樂)은 애당초 어떤 것인지 알려고도 않고, 구슬놀이와 바둑에만 열중하여 낮밤으로 즐겨 놀며, 죽으면 신체를 불태워, 무덤도 없고 사당도 없다.

정희득은 신날하게 일본을 지적하고 있지만 사실은 입으로만 충이니 효니 하며 공론에만 치우친 나머지 실리를 잃은 조선의 시기심의 한 단면일 뿐이다. 정희득의 눈이 포착된 극성을 떨치고 있는 바둑의 모습은 신유한의 기록을 증거한다 할 것이다. 이외에도 여러 편의 사행일기 속에 일본바둑의 붐이 기록되어 있다.

도꾸가와가의 지원 아래 번듯한 바둑계의 모습을 갖춘 일본바둑의 붐은 전 조선에 불고 있던 조선바둑과 보폭을 함께 하며 발전한다. 다만 기예와 예능을 단수한 소비(?)로 치부한 조선조정의 정책이 조선바둑계의 인상을 만들지 못한 것이 아쉽다. 예능을 대한 조선조정은 바둑뿐만이 아니라 의술, 화원, 음악 분야까지 천시했으니 바둑만 집어 탓할 일도 아니다.

 

(승정원일기 영조 38년 4월20일)

鳳漢曰, 東萊府使權導, 狀請接慰官下送。此乃通倍使請來差倭先報也。通信使, 自備局當治送, 而國儲蕩竭, 民間赤立, 而所入人蔘, 其數將至二百餘斤, 前有略干聚儲, 尙多不足。今方經紀, 而西民之受弊, 罔有餘地, 交隣重事, 有不可廢, 而此事十分憂憫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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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뀐지 |  2008-12-06 오후 4:38:5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 때 부터 하마 경제분야가 뒤쳐졌군요 . ***  
후지산 |  2008-12-08 오후 12:27:0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연말 행복하소서. 오로회원님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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