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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12)/ 바둑 하우스로 거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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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12)/ 바둑 하우스로 거듭(?)나다
2008-10-05     프린트스크랩

 


정약용은 '목민심서'에 지방 아전들이 본분을 잃고 바둑 쌍륙 등 잡기에 빠져있다 말한다. 혹자는 목민심서의 이 대목을 들어 정양용이 바둑의 몰이해를 말하나 사실은 그것이 아니다. 정약용은 여러 편의 바둑에 대한 호의적인 글을 썼고 말년에는 바둑을 유일의 낙으로 삼아 살았다. 정약용은 '경세유표'에도 아전들이 국가세금을 착폭하고 백성들의 재산을 탐하는 모습을 지적한다.

- 아전들이 고을 재정을 마음껏 농단하고 사사롭게 사용한다. 환곡도 가리지 않고 백성들에게 이자를 놓고 개인적으로 착복을 하고 흥청망청 마구 쓰고 사고가 나면 어디론가 피해 바둑노름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적당한 시기에 사또를 뇌물로 회유하고 원자리로 복직하여 또다시 분탕질을 친다. (지관수제편)

조선후기에 오면 바둑은 단체도박의 대명사로 통한다. 바둑이 소위 잡기(雜技)라 불리던 반상게임의 대명사가 되면서 바둑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승부에 도박을 거는 일이 하나의 유행이 된다. 승정원일기에 바둑의 도박성을 증거하는 기록이 여러 건 있다.

고종1년 '김좌근'은 온 나라에 반상도박이 판을 치고 반상도박에 양반, 상민을 가리지 않고 열명 중 칠팔명이 빠져있어 나라 살림이 걱정이라 말한다. 김좌근은 풍고 김조순의 아들로 안동김문의 기둥이다. 김좌근은 애기가였던 김조순과 같이 바둑을 좋아해 당대 바둑인들의 패트런을 자처한 사람이다.

이런 김좌근이 도박의 폐해를 지적하며 좌우포청을 발동 발본색원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주1) 김좌근의 건의는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쉽지 않다. 다음 해(*주2)에도 다시 이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바둑이 관원들 사이에도 도박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 기록을 보조해줄 자료가 하나 있다. 서울대도서관 (no208472) 조선문서자료인 '통유안치존통'이다. 면장(집강)이 이장(통존)에게 보낸 서류로 '안치리'의 주막거리에서 수십인이 모여 바둑도박으로 난리(?)가 났는데도 해당 이장은 무엇을 하고있느냐 묻고 있는 내용이다.

조선시대 면장이나 이장의 직분이 약소한 것이기는 하나 리(里) 단위의 주막거리에 수십인의 사람이 모여 도박판을 무상으로 벌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로 보여진다. ('통유안치존통' 자료는 [월간바둑] '이청의 풍운(5회)'에서 자세하게 소개할 것이다.)

조선후기로 오면 전국적으로 바둑의 광풍이 분다. 정약용은 여유당전서에 당대의 바둑의 유행을 생생하게 기록한다. 터무니없이 많은 과거응시자들을 거론하며 바둑을 비유하여 말하는 대목이기는 하지만 의미 있는 기록이다.

- 바둑으로 비교해 보자. 오늘날 작고 큰 고을에서 바둑의 고수를 찾기는 힘들다. 불과 서너명 정도다. 수명외에는 그야말로 볼품없는 하수들뿐이다. 하수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譬如碁然 通邑大都 善碁者不過 數人 數人之外 謂之隊碁 隊碁無限 不可選也.)

고수는 적고 하수는 부대를 만들 만큼 많다는 정약용의 말이 웃음이 나온다. 이 말은 당시대의 바둑의 유행을 증거하는 좋은 자료라 할 수 있다. 바둑이 도박과 연결되어 사회 문제화되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주1. (승정원일기) 고종1년 2월20일.

左根曰, 都下竊發之患, 挽近尤甚, 而究其所以然, 則雜技之害, 十居七八。富家子弟之蕩敗由此, 良民心性之變易由此, 而甚則胠篋穿窬之無所不爲。此不嚴禁, 弊有所難言者, 分付刑·漢兩司及兩捕廳, 使之各別掩捕, 照法勘斷, 而此輩多有依托處, 法隷不敢關涉。自今以後, 毋論宮家卿宰家, 毋或匿置, 而有不悛而入聞者, 宮監從重科治, 家長草記拿處, 因此而又有提飭者, 法司之推捉平民, 厥有分數, 而近來則小小微瑣之訟, 輒發刑吏所到之家, 蕩殘乃已。

 

*주2. (승정원일기) 고종2년 8월2일.

刑曹啓曰。傳曰, 近來難技之設禁, 顧何如, 聞內閣所屬, 狼藉設技, 至於現捉。此輩本以無嚴無憚之習, 至有此犯禁, 尤豈不痛惋。雖以入直閣臣言之, 不能禁飭之失, 在所難免, 爲先推考, 所犯閣隷, 出付秋曹, 照律嚴勘事, 命下矣。雜技漢閣隷金德昌·朴昌植·李好石·金基石, 軍士李明乭, 院隷韓命基, 兵曹使令權致俊, 典設司書員金學敏, 魂殿員役朴釗, 都摠使令朴仁順, 近仗軍士全鳳學·鄭致弘·李春植, 宣傳官廳使令南義宣, 軍士吳在完, 差備軍士黃五長·鄭得成等十七名, 先自內閣, 移送臣曹矣。雜技禁斷, 前後飭敎, 何等截嚴, 而今此諸漢, 俱以公門之役, 罔念法紀之重, 肆然設於禁中, 至於現捉之境, 究厥所爲, 有倍平民, 萬萬痛惋, 不可尋常照勘而已, 待過齋, 竝施嚴刑遠配之典, 何如? 傳曰, 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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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pan |  2008-10-10 오후 12:43:2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이청님은 바둑을 좋아하십니까? 아마 두신다면 아주 기력이 높을 듯 합니다. 저의 선생님이 보시고는 소음인이라고 하십니다. 침착하여 수를 잘 보실 듯 합니다.  
李靑 소음인거 맞고요.바둑은 하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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