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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10)/ 바둑과 병법(兵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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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10)/ 바둑과 병법(兵法)
2008-08-18     프린트스크랩

 

승정원일기 속에 보이는 바둑과 연관되어 가장 빈발하게 등장하는 기록이 사안(謝安)이다. 사안은 조선실록에도 수없이 등장하는 인물이다. 사안은 중국 동진의 정치가이자 군사전략가로 조선시대 국정의 토의장에 수시로 인용된다. 특히 전쟁이나 반란 역모 등 비상한 일이 생길 때마다 그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영조4년 전국적으로 창궐하던 도적집단과 무신의 난이 일어나자 영조와 신하들이 모여 대처 방법을 찾으며 역사 속에서 '사안'을 모델로 삼는다. 한마디로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자는 의미다. 사안은 급박한 시국을 극복한 역사적 인물이다.

남북조시대 패자를 꿈꾸던 '부견'은 동진(東晋)을 정벌하여 천하를 통일하려고 112만 대군을 거느리고 남벌(南伐)에 나섰다가 회수(淮水)의 남쪽 지류인 비수(肥水) 싸움에서 동진의 재상 사안(謝安)의 전략에 말려들어 불과 8만 군사에게 대패하고 만다. 338년 8월의 일로 우리 역사로는 고구려 소수림왕시대에 해당한다.

전쟁은 이렇게 전개된다. 부견의 아우로 전진의 총사령관이던 부융(融)이 동진의 선봉장 사현(謝玄)으로부터 비수 강가에 진을 친 그의 군대를 조금 물려주면 남군(南軍)이 비수를 건너가 일전을 벌이고자 한다는 편지를 받게 된다. 이에 부융은 비수를 건너는 남군을 섬멸하고자 자신의 군대에게 후퇴 명령을 내리는데, 그의 대군이 전쟁에서 패하여 후퇴하라는 줄 알고 서로 밟고 달아나는 바람에 수습할 수 없는 사태로 짐행된다.

(국립박물관 소장 사안의 전쟁장면을 그린 병풍도)



사현은 총대장 사안의 밀명을 받고 이런 꾀로 북군(北軍)을 교란시킨 다음 정예 경기병 8000명을 거느리고 비수를 건너 달아나는 대군을 추격, 섬멸하는 작전을 펼쳤다. 이에 북군은 수십만의 사상자를 내며 완전 괴멸하고 말았다. 이 와중에 부융은 말이 고꾸라져 피살되었고, 부견은 화살에 맞은 채 필마단기로 도망쳐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사안은 백만대군이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순간에도 자신의 막사 안에서 태연하게 바둑을 두며 전쟁을 지휘, 승리를 챙긴다. 사안은 바둑을 병법의 한가지로 인식시킨 사람이다. 사안은 중국역사 곳곳에 보인다.

바둑을 병법으로 말한 사람은 의외로 많다. 조선실록에 선조는 바둑을 병법과 같은 것이다, 말한다. 곽재우 김시민 이시발 등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바둑이 병법이란 말은 견강부회가 아니다. 실제로 동양역사상 가장 유력한 병법서인 '등단필구'는 바둑을 병법의 교범으로 활용(?)한다. 등단필구는 만력14년(1586) 무과급제로 무인생활을 시작한 '왕명학'이 편찬한 방대한 내용의 병서다. 조선의 무장들은 이 등단필구를 모르면 장수노릇을 할 수 없었다. 병학지남이니 무예도보통지하는 조선의 병서들은 사실 등단필구의 아류다. 왕명학은 등단필구에서 이렇게 말한다.

-병법은 전쟁이 펼쳐지는 전장을 좌우한다. 장교와 병졸에 행하는 것이 훈(訓)이다. 장교와 병졸을 움직이는 것이 련(鍊)이다. 그러나 병법은 만능이 아니다. 병법을 너무 믿는 장수는 棋譜를 따라 바둑을 두는 사람과 같다. '기보'가 바둑을 두는 수를 다 담아낼수 없듯 병법도 전쟁을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바둑이 병법을 담아낸 범주가 아닌 아예 바둑이 곧 병법이란 주장을 한 사람도 많다. 그러나 바둑과 병법의 담론을 체계화하고 논문화시킨 사람은 아직 없다. 사안과 병법, 그리고 바둑의 담론은 역사속에서 면면하다. 이 기록들을 토대로 군사전략적 측면에서 누군가 의미있는 검토를 할 필요가 있겠다.

 

(원문) 영조4년 3월14일

亦有之, 而卽今傅會訛言, 騷動迷民, 決非可憂之盜矣。 光佐曰, 聖敎至當。 符堅百萬兵, 勢如風雷, 而謝安圍碁賭墅, 意思安閑, 當大事而豈不用心? 其矯恃鎭物之量, 足以制勝而然矣。 然國事貴乎萬全, 卽今如人重病, 無扁鵲之良醫, 而徒以不足憂爲言, 不爲之對症投藥, 則將未知其病之至於何境矣。 上曰, 然。 不可輕動。


영조4년 3월24일

凡諸鎭壓之道, 必勿輕易有動, 以謝安事觀之, 符堅百萬師, 直指江左, 而謝安, 以數萬師, 破賊捷書至, 適圍棋, 人有問之, 徐曰, 兒輩遂已破賊, 此出於鎭壓之計。 殿下御門受俘, 豈不是好事? 而事涉輕遽, 有非泰山鎭壓之道, 伏願更加三思。 上曰, 謝安事, 表裏不相應, 心喜則當喜, 圍棋時折屐之心尙在, 此予所不取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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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만석 |  2008-08-19 오후 9:11:2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음 바둑이 병법과 같다는 이야기는 가끔 들었지만..옛사람들도 그리 생각하였네요....  
소라네 |  2008-08-21 오전 11:15:4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동진 조정에서는 사안이 전쟁상황의 진행을 걱정하고 있었다. 사안은 전쟁승리의 소식이 전해졌을 때 손님과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그 소식을 접하고는 기버하는 얼굴도 보이지않고 원래대로 바둑팜 계속 두었으며, 손님의 질문에는 애송이들이 적을 무찌른것뿐입니다. 라고만 대답할 뿐이었다. 그러나 손님이 돌아가자 나막신의 굽이 부러져 있는 것도 모르고 뛸 듯이 기뻐했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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