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의 '똑딱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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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의 '똑딱군화'
2008-05-21     프린트스크랩
▲ 공익근무요원 훈병시절 군기(?) 바짝 든 이창호 9단의 모습 ^^


* 아래 글은 1994년부터 5년간 <스포츠서울>에 '정용진의 바둑수첩'이란 꼭지명으로 연재했던 바둑칼럼 중 독자들로부터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글로, 지금 시제에 맞게 일부 손을 보아 재수록합니다.
그리고 만화는 1998년 1월호 <월간 바둑가이드>에 이 내용을 두 쪽 만화로 압축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창호 9단이 병역혜택을 받고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한 것이 1996년.


병역의무를 앞두고 '세계적인 보물'이니 바둑에 전념할 수 있게 병역면제 특권을 줘야 한다, 어쩐다 하여 한때 꽤나 시끄러웠다. 이 논란은 그의 공익근무요원 혜택의 자격요건을 놓고 '바둑이 예술이냐 한낱 게임이냐'라는 논쟁으로 이어졌다.


지금이야 바둑이 어엿한 스포츠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당시 규정으로는 바둑의 정체성에 대해 내린 딱부러진 정의가 없을 때였다. 아니, 정체에 대해 달리 정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게 정확한 고백일 것이다. 중국에서는 바둑이 이미 정신스포츠로 대접받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근육운동이 아니므로 체육의 범주에 넣는다는 건 무리가 따랐고 예술이냐 게임이냐 정도의 생각을 할 때였다.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로 해석이 가능할 때였다.

예술, 예도라고 주장을 하기는 했어도 사실 명확한 근거나 논리적인 설명, 사회적 인식이 모호한 형편이다 보니 바둑은 병역혜택을 받을 수 있는 종목이 아니었다. 법적인 규정도 없었고 당연히 선례도 없었다. 이에 이창호 9단의 재능을 아끼는 국회의원들까지 탄원에 나서면서 어렵게 공익근무요원으로 인정되었고, 바둑의 예술론이 대세로 굳어졌다. 그 바람에 대학에 바둑학과가 생기기까지 했으니, 국보급 기사 이창호의 위력은 가히 메가톤급이었다.

여담이지만, 그때 한국기원의 월간바둑 편집장으로 재직하던 나는 해당 정부부처에 ‘어찌하여 바둑이 예술인가’를 입증하라는 숙제(?)를 받았고, 며칠 밤을 낑낑 대며 예술학개론 같은 책을 뒤져가며 장문의 리포트를 작성하던 기억이 새롭다. 


세계 최초의 '똑딱군화'가 탄생한 사연

공익근무요원이 되면 한 달간 의무적인 병영훈련을 받아야 한다. 바둑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도 그토록 메가톤급 위력을 과시한 이9단이었건만 정작 영내에서는 '공배'에 '빈삼각' 우형(愚形)의 연속이었나 보다. 포복절도할 그 에피소드 하나.


"연병장 선착순 집합!"이라는 호랑이 조교의 집합명령이 떨어지자 소대원들이 번개같은 '비마행마'로 달려 연병장에 집합한다. 그런데 "뒤로 번호!"를 붙이기만 하면 번번이 머리 하나가 모자란다. 조교의 눈썹이 빳빳이 세워지며 고성이 터진다.


"이번에도 또 이창호 훈병인가?"


훈병들이 연병장으로 달려간 그 시간에도 우리의 이창호 훈병은 내무반에서 군화(워커) 끈을 못 매 쩔쩔매고 있다. 바둑으로 치면 초읽기 초과 반칙패 감이다.


"이창호 훈병! 여기서 뭐 하나? 사회에서 신발끈도 한번 안 매 봤나?"


기록계시원 같은 '조교'의 초읽기 독촉에 이미 울상이 돼버린 우리의 이창호 훈병.


"…한번도…전…운동화만 신어봐서…"


이창호 9단이 운동화만 신어봤다는 말은 사실이다. 그것도 끈 달린 운동화가 아닌 찍찍이 운동화만…. 조훈현 9단의 부인 정미화 여사의 증언이 이를 입증한다.

“내제자로 들어올 때가 창호 나이 열한 살, 초등학교 4학년 생이었다. 내제자로 받고 1~2년간은 손수 목욕을 시켰다. 머리를 혼자 못 감는 것은 물론 세수조차 제손으로 제대로 못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생이긴 하지만 그 나이면 누구나 세면 정도는 할 줄 아는 게 정상인데, 아마도 창호는 본가에서 그렇게 애지중지 키웠던 듯했다. 운동화 끈이 한번 풀어지면 며칠이고 풀린 채로 지렁이 매달고 다니듯 신고 다녔다. 그래서 아예 끈을 묶을 필요 없는 찍찍이 신발을 사 신켰다. 원체 무감각, 무신경한 아이였다. 그러나 바둑에 대한 열정만큼은 집요해 고래심줄보다 끈질겼다.”


들릴 듯 말듯 특유의 '돌부처 어법'으로 우물거리니 다시 조교의 호통이 떨어지기 일쑤다. 명색이 민주군대에서 폭력을 사용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얼차려 기합도 어디 한두 번이어야지. 사회에서 국보급 보물이라고 애지중지하는 존재를 막대할 수도 없고….

목마른 놈이 샘 판다고…, 이쯤되면 답답한 정도를 넘어 거꾸로 조교가 통사정하게 된다.


그래서 어찌 됐을까?


결론은 생각다 못한 조교가 군화에 '똑딱단추'를 달아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기에 이르렀다. 끈 대신 똑딱단추가 달린 군화! 이 똑딱군화를 만드느라 담당조교는 새빨간 토끼눈이 되도록 밤새 한 땀 한 땀 바느질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대한민국 군대 역사에, 아니 세계 군사상 똑딱단추 달린 군화를 신고 훈련받은 병사는 아마도 이창호 9단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이것이 똑딱군화가 탄생한 전말이다.


스무 살이 되도록 바둑 외에는 모든 신경망을 끊고 살아온 이창호 9단이었기에 가능한 일화다. 이창호는 왜 강한가? 주변에서 세상물정을 잊고 오로지 자나깨나 바둑에만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줬고 본인도 무섭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 지금도 별로 변함이 없다.


스승 조훈현 9단이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나이 들어 이성을 알게 되고 결혼을 하고 처자식을 가져 봐. 자연 하나 둘 고민거리가 생기게 되면 어디 뜻대로 바둑에 집중할 수 있나. 그런 면에서 창호는 아직 행복한 거야. 그래서 더 강한 거라고…."


그렇다면 앞으로 이창호 앞에 남아있는 제일 큰 복병은 이성관계? 어느새 서른 중반의 나이가 됐으니 어쩌면 이 복병을 벌써 만났는지도 모른다. 후후 글쎄, 아무리 천하의 강태공 이창호라 한들 한번은 '콩깍지 쓰고 바라보게 될 특별한 여성’ 앞에서도 '돌부처 고문관'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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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티라태 |  2008-05-23 오전 1:16:5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재밋네여~ ^^  
노을강 |  2008-05-23 오전 11:55:2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이창호 군복 정말 안어울네여 ㅋㅋ
똥 방위같은디.  
노을강 |  2008-05-23 오전 11:55:4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제대하셨네요.  
속편한 |  2008-05-23 오후 10:44:2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상단의 경례사진에 고개가 좀 삐딱하다 싶더니...일종의 복선같은건가요..ㅎ 사실 운동화끈을 질질 끌고 아이스크림을 물어쥐고 오는 꼬마에게 뭇 고수들이 힘 한번 못쓰고 당하더라는 식의 기사나 칼럼등을 볼 때에는 아무렴 설마 이창호9단이 아무리 꼬맹이때라도 운동화끈 질질 끌고 다녔을까 싶어서 반신반의 했었는데...이 글을 보니 어렴풋이나마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네요^^ 좋은 기사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속편한 |  2008-05-23 오후 10:50:1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근데 저런 얘기는...도대체 어디서 들었을까요..? 동생 영호씨가 듣고 전해줬나 했는데 기사 처음 나왔을 때에는 영호씨도 어려서 기자분들과 딱히 친분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을거 같은데..뭐 이창호 9단의 공익근무가 당시에 사회적으로도 이슈였으니 하물며 바둑기자라면 어떻게든 취재 해야됐겠죠..ㅎ 갑자기 이창호 9단이 훈련소 얘기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자니 자꾸 웃음이 나와서 몇마디 더 썼습니다^^;  
ho사랑 |  2008-05-24 오전 1:57:16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조교라는 사람이 참 마음이 좋은것 같네요.  
斯文亂賊 맞아요^^ 천사표 조교... =3=3=3
적우침주 |  2008-05-25 오전 12:47:4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당시 쟈크를 단 군화가 없었나^^군화 두개주는데... 사재에서 쟈크를달지..  
선비만석 |  2008-05-25 오후 9:33:2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허걱~~~그런 일화가...참말로 똑딱군화가..ㅎㅎㅎㅎ 정이사님 내는 군대 생활 할때 육여사 총맞는거 생중계로 보았습니다..옛날 얘기죠......34년전 애기네요....허참....  
라키블루 |  2008-05-26 오후 12:51:3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빠져가지곤.....빡세게 굴려서 빠릿빠릿하게 맹그러놨음 벌써 결혼했을텐데....^^  
천리소사벌 |  2008-05-27 오후 6:44:0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군대 현역이 아니고, 공익으로 가는 것도 이창호 때문에 그랬지만, 대학 특기 입학도 이창호 때문에 만들었던것 같은데 전에 한 동안 그 문제로 설왕설래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창호에 대한 지원은 거국적이였다고 말 할 수 있지요  
gosodj |  2008-05-29 오후 5:46:4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아.... 웃겨.... 이렇게 재밌는기사도 있었군요.
진짜 추천 백만개임니다.. 앞으로도 재민는거 마이 실어주세요  
웃가막재 |  2008-05-30 오후 12:37:2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나의 군생활은 오로지 전쟁을 염두해둔 생활이었기에 휴가를 나와도 조바심나서 하루이틀 빨리 입소 하곤 했지요. 만약에 이창호9단보다 선임으로 같이 생활했더라면 아마도 이9단은 살아나기 힘들었을겁니다. 물론 똑딱군화도 생겨나지 않았을꺼고...헌데 이글을 쓰는 나도 조낸 우끼네요, 조교도 귀엽고...ㅎ  
한솔풍운아 |  2008-05-31 오전 1:12:4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ㅎㅎㅎ
 
돌부처쎈돌 |  2008-05-31 오후 12:49:3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ㅋㅋㅋ
오랜만에 인사 올리면서 웃어서 지송해유^^!
건강하게 잘 지내시죠?
정용진님의 글은 언제나 매력 만점!
 
용마5 |  2008-05-31 오후 6:49:5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정이사님의 재밌고, 재치있는 이야기, 요즘도, 그렇게 바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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