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에 좌절한 대륙의 천재, 마샤오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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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에 좌절한 대륙의 천재, 마샤오춘 (1)
2008-03-11     프린트스크랩
▲ 사진/이주배



승부세계는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의 세계이다. 승자 독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이며 승부의 역사는 2인자를 기억하지 않는다.

마샤오춘(馬曉春) 9단.
1995년 당시 3대 세계기전 가운데 후지쯔배와 동양증권배를 석권하며 단숨에 세계랭킹 1위로 도약, 중국바둑을 정상에 끌어올렸던 귀기(鬼氣) 서린 기사.
고개를 삐딱하게 외로 꼬고 자세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 수읽기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앞 버드렁니를 굳이 감추지 않은 채 약간은 냉소적인 웃음기와 시니컬한 시선이 섞인 그의 표정을 볼 때마다 어찌하여 스티븐 호킹 박사의 얼굴이 떠오르곤 했는지.

그는 천재였다. 그러나 이창호라는 불세출의 천재와 같은 시대, 같은 하늘을 이고 산 승부사였기에 비운의 천재, 비운의 승부사였다. 4번이나 세계대회 결승에서 만났지만 한번도 이기지 못했고 그 내상(內傷)으로 정상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던 중국의 바둑영웅. 중국이 대국수(大國手)라 칭하던 녜웨이핑 9단이 1회 응씨배에서 한국의 조훈현 9단에게 일격을 맞고 무대 뒤로 사라진 것처럼, 녜웨이핑의 뒤를 이은 마샤오춘마저 조훈현의 내제자 이창호에게 곤죽이 되도록 연타당하고 링을 내려와야 했으니 중국바둑팬들이 느꼈을 수모가 오죽했으랴.

중국 일인자의 굴욕은 녜웨이핑-마샤오춘 2대에 끝난 것이 아니다. 마샤오춘 9단 자리를 대신하고 나선 창하오 9단도 ‘이창호 콤플렉스'에 10년 이상 시달려야 했다. (이 이야기는 졸고 바둑수첩 '중국의 이창호' 창하오 스토리에 자세히 풀어놓았다.)

이창호의 빅뱅에 소멸한 대륙의 별 마샤오춘
마샤오춘 9단의 대 이창호 9단 통산전적은 비공식 대국 두 판을 포함해 6승25패다. 19.35%의 승률. 10판을 둬서 2판 이겼다는 얘기인데 아마추어 바둑에서라면 두 점 치수라고 평가절하해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1996년 3월 18일 7회 동양증권배 결승3국에서부터 1997년 10월 27일 2회 LG배 8강전에 이르기까지 무려 10연패를 당한 적도 있다. 90년대 중반 세계 톱을 다투던 라이벌 간의 전적이라 여기기에는 민망한 스코어다. 

두 사람의 헤게모니 쟁탈전은 겉보기엔 1999년 삼성화재배와 LG배, 도합 결승10번기가 정점이었다. 앞서 1996년 7회 동양증권배(3-1 이창호 승)와 9회 후지쯔배, 두 개의 대회에서 고배를 들긴 했지만 1999년 2월과 3월, 한달 간격으로 연이어 벌인 3회 삼성화재배와 3회 LG배의 비장감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 직전까지 10연패를 포함해 3승15패로 일패도지(一敗塗地)의 길을 걷고 있던 마샤오춘으로선 일대 반전을 노리고 친 배수의 진이었기 때문이다.

이창호와 마샤오춘의 명암 두 기사의 영광과 좌절을 여실히 보여주는 한장의 대국사진. 승자 이창호 9단의 무덤덤함과 패자 마샤오춘의 탄식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제3회 LG배 결승3번기 2국 종국 순간. (사진제공/월간바둑)


그러나 매는 맞아본 사람만이 그 아픔을 안다 했다. 저 유명한 ‘조훈현의 잽'을 한번 당해본 사람에겐 그 다음부터 조훈현 9단의 잽은 더 이상 잽이 아니다. 관전자의 눈에는 그저 툭 던지는 가벼운 응수타진인 듯 보이나 당하는 선수에게는 벼락같이 날아드는 쇠뭉치 같기만 하다는 국후 증언이 허다하다. 그런 것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 보고도 나자빠지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이창호의 팔진도'에 걸려 기진맥진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창호의 위력을 진정 알지 못한다. 중국의 일인자 구리 9단조차 “이창호 9단의 시대가 끝났다고 하지만 이9단과 마주해 보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의 무서움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라고까지 대놓고 말을 했을까.

시종 무심한 ‘기다리는 바둑'으로 마샤오춘을 스스로 초조와 불안의 올가미에 몸을 옥죄게 만들곤 하던 이창호의 바둑을 보노라면 일본의 전설적인 무사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코지로의 일생일대의 대결이 떠오른다. 쌍검을 쓰는 무사시와 장검술의 대가인 코지로의 일전은 심리전의 극치였다. 일전을 치르던 날 먼저 도착해 기다리던 코지로는 의도적으로 늦게 나타난 무사시를 보고 단숨에 칼을 빼고는 칼집을 버리는데 미동도 하지 않던 무사시가 그 유명한 말을 한다. “하하, 그대는 졌다! 무사에게 칼은 생명과 같은 것. 자네의 칼은 도로 들어갈 집이 없으니 이미  졌다."

마샤오춘은 심리전에서 졌으며 자신감에서 지고 들어갔다. 기술상으로는 끝내기와 계산력에서 밀렸다. 마샤오춘의 끝내기 실력이 형편없어 보였던 것은 이창호의 끝내기 솜씨가 그만큼 신출귀몰했던 탓이다.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잡는 삼국지의 장면이 반상에 재현된 것이 두 사람의 대결이었다.  

(마샤오춘 9단) “내 바둑인생 가운데 컨디션이 가장 좋았던 시기는 1995년에서 1997년 사이다. 당시에는 누구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불리한 바둑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전혀 두렵지 않았다. 물론 유감스런 일도 있었다. 가장 유감스러웠던 일은 1997년 2회 삼성화재배 준결승전이다. 당시 좋은 바둑이었는데, 이창호 9단에게 반집 역전패를 당했다. 만약 그때 이창호의 최대 장기인 끝내기에서 그를 꺾었다면, 나의 전성기는 계속되었을 것이다.” 

마샤오춘 9단이 지금도 치를 떨며 통탄해마지 않는 일생일대의 한판. 이 한판에 마샤오춘의 기가 완전히 꺾였으며 이후 이창호 앞에 서기만 하면 ‘칠종칠금(七縱七擒)의 신세'로 전락하고 마는 처지가 되었다고 본다. 이후 1999년 두 번의 결승대첩(삼성화재배와 LG배)은 이 연장선일 따름이었다.

산 사마중달이 죽은 공명에게 진 한판 제2회 삼성화재배 준결승전. 마샤오춘 9단과 이창호 9단의 차이는 끝내기 실력의 차이였지만 그에 앞서 심리전에서 이미 지고 들어갔다. (사진제공/월간바둑)


이미 마샤오춘을 내셨거늘 어찌 이창호를 또 내셨나이까
필름을 11년 전, 1997년 10월 9일로 되돌려 본다. 서울 신라호텔에서 벌어진 2회 삼성화재배 준결승전이다. 1회에서 결승에 오른 유창혁 9단이 요다 노리모토 9단에게 첫 우승컵을 빼앗긴 탓에 주최국인 한국의 체면이 살짝 구겨졌고 2회 대회에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런데 4강에 동반 진출한 김승준 9단이 고바야시 사토루 9단에게 일찌감치 져 이창호 9단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러나 '날마다 장'일 수 없는 게 승부세계.

이때까지 이창호 9단의 대 마샤오춘 9단 통산전적은 13승3패(비공식 대국 2판 포함). 최근 8연승 중이었다. 1996년 동양증권배와 후지쯔배 결승에서도 이긴 바 있어 이번에도 이겨줄 것으로 믿었지만 반상의 형편은 절망적이었다.

   

[장면1] 제2회 삼성화재배 준결승

백 이창호 9단
흑 마샤오춘 9단

<1997. 10. 9, 서울>

<실전도> 백170까지의 형세는 반면 10집이라고 한다. 그것도 끝내기할 공간도 별로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흑의 두터운 반면 10집 유리라고 하니 덤(5집반)을 제하고도 5집 차이. 프로바둑에서 이 정도 차이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때부터 기적이 일어났다. 승리가 눈앞에 보이자 산 사마중달이 죽은 제갈공명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흑171로 움직인 수가 괜한 분란을 일으킨 행보. 195의 곳에 한칸 뛰었으면 필승이었다. 백178로 흑 석점을 들어냈을 때 바로 되따내지 않은 흑79가 또 실수. 백184가 선수라는 사실을 미처 못 읽었다. 손 빼면 <1도>의 수단이 있다.

[실전도]
 
 
[1도]

백198까지 기껏 움직였던 흑71이 도루묵이 되었다. 여기까지 백이 2집 이득을 보아 반면 8집으로 줄어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희망이 절벽'이라 한다. 그런데 마샤오춘의 눈에 마가 씌었는지 백206으로 밀고들어갈 때 무심결 흑207로 선수하려 든 수가 천길 낭떠러지 끝에서 허공중을 향해 내디딘 한수가 되었다.

   

<장면1> 백△로 밀었을 때 누구라도 흑1은 선수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창호 9단은 백2로 뛰어들었다. 순간 검토실에서 “와-” 하는 함성이 터졌다.

[장면1]


   

그렇지만 이 수 또한 백6 때 <2도> 흑1로 받아두었으면 별 수가 없는 자리였다.

문제는 뒤쫓기는 초조함에 흥분한 마샤오춘이 냉정을 찾지 못하고 <장면1> 이하 흑17까지 우상귀를 내주고 백 5점을 뜯어먹는 선택을 하는 바람에 다들 역전된 줄 알았다.

[2도]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밀히 계산해 보니 흑이 1집반 남는 형세라고 한다. 이제야말로 남은 끝내기라곤 한두 집짜리에 불과하니 더 이상 기적을 바란다는 것은 염치불구를 넘어 파렴치한 짓이다. 그런데 이날 마샤오춘은 한국의 1천만 바둑팬을 모두 파렴치한 사람으로 돌려세우고 말았다.

   

<장면2> 한두 집 끝내기 과정에서 한 집을 또 손해본 마샤오춘 9단이 우상변에서 패를 자청했다. 물론 팻감이 많다고 본 것이고 이 패를 이기면 반집 승이다.

이때 백2의 기상천외한 팻감이 작렬했다. 마샤오춘의 계산에는 전혀 없던 팻감이다. 이 대목에 이르러 마샤오춘은 좌절했고 하늘을 원망했다. “하늘이시여! 주랑을 내셨거늘 어찌 공명을 또 내셨나이까!”

백의 코붙임 팻감에 흑은 3으로 최대한 버텼다. 이렇게 받으면 백2는 일단 한집 손해 본 수가 된다. 그러나 대신 이곳에서 백은 3개의 팻감을 더 얻었다. 지금 팻감 하나는 단순한 한집의 가치가 아니다. 승패를 가름하는 천금이다.

따라서 흑은 <3도> 흑1로 웅크려 받는 것이 정수였고 그러면 팻감이 모자란 백으로선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장면2]
 
 
[3도]


   

마샤오춘의 입장에서 기가 막힐 노릇은 최후의 순간에도 또 있었다. <장면2>의 백26으로 끊는 팻감을 썼을 때, 검토실의 조훈현 9단이 <4도> 흑1로 받는 수를 발견했고 이것은 백에게 패를 양보해도 흑3, 5 두 곳을 차지하게 되면 흑 반집승이었다.

그렇다고 <5도> 흑1에 백2를 선수한 뒤 패를 때린다면 이때는 흑5가 또 결정적인 팻감으로 들어 백이 패를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역시 흑의 반집승.


결국 313수까지 사투를 벌인 혈전은 백의 반집승으로 끝났고 반쯤 얼이 빠진 마샤오춘 9단은 계가를 마치자마자 신경질적인 손놀림으로 돌을 쓸어 담더니 벌떡 일어나 자리를 떴다. 하긴 이런 장면에서도 꾸욱 눌러 참고 복기할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정상이 아닐 터이다. 아, 한 사람은 빼고. 이창호 9단…. ^^ 

[4도]
 
 
[5도]



아래 만화는 1999년 [월간바둑가이드] 4월호와 2000년 [월간바둑] 9월호에 소개되었던 ‘마샤오춘 뎐' 1편이다. 다음 회에는 ‘마샤오춘 뎐' 나머지 2, 3편과 1999년 마샤오춘-이창호 9단간의 라이벌전을 마저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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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1108 |  2008-03-15 오전 11:22:4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칼럼은 매번 잘 보고 있습니다. 다만.. 2회 삼성화재배 4강에는 김승준 九단도 있었습니다. 고바야시 사토루 九단과 함께 말이지요..  
운영자55 아...그렇군요. 김승준 9단도 4강에 올랐는데 사토루 9단에게 먼저 진 상황이었습니다. 문맥 제대로 잡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치우2세 |  2008-03-15 오전 11:41:5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칼럼 재미있는데..다른 관점에서 보아주시죠. 마샤오춘이 두손으로 잔을 받은건. 그가 외견상 괴팍하고 자존심(자만심)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겸손해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이란 것이죠. 대가들은 모두 겸손하죠. 구리. 창하오. 이창호. 그리고 요즘 이세돌도..마샤오춘도 그런듯. 10번을 이기더라도 한 판 지면 아무리 뛰어난 기사도 겸손을 찾는듯. 어쩌다 한번 이기면 우쭐해지는것과 반대라 볼 수 있죠.  
돌부처쎈돌 당시의 마샤오춘을 잘 모르시는 듯 합니다. 치우님께서 다른 관점으로 보아달라는 건 이상하군요. 작가의 생각을 바꾸라는 것과 마찬가지죠^^!
선비만석 |  2008-03-17 오후 5:29:2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으음....마샤오춘.....불행한 사나이....이창호에게 걸린게 불운이여.....  
cool하게 |  2008-03-17 오후 6:49:5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정말 글솜씨가... 입에 쩍쩍 달라붙게 잘쓰십니다. 앞으로도 불세출의 바둑기사들 부탁합니다.  
yeon138 |  2008-03-19 오후 3:56:1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저 태클거는 것은 아니고요. 그냥 같이 생각해봤음해서 글 적습니다. 술따라주려고 하면 두손으로 깍듯이 받는 것이 원래 정상아닌가요? 친한 친구사이라면 모를까... 11살 차이라는 것도 물론 많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초면인데, 하도 맞아터져서 그랬다거나, 알아모셨다거나 하기보다는 개인의 성품이 예의가 많은 성품 아닐까요? 참고로 전 누구에게라도 모르는 사람이나 심지어 친구에게 술 받을 때도 두손으로 받는데요.  
돌부처쎈돌 이 야그는 어느 정도 알려진 에피소드이고, 어린 이창호에 대한 마샤오춘의 두려움은 굉장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니 이해하시는 것이...태클 거는 건 아님다^^ 친구에게 두 손으로 술 받는다는 것도 재밌군요^^
yeon138 전 외국기사를 저딴식으로 표현한 기자의 태도가 결코 이해되지는 않지만, 돌부처쎈돌님 같은 분도 계시군요. 역시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거 같습니다. 어쨌거나 마샤오춘은 중국국가대표총감독을 맡고 있지요? 그럴로 판단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렇게 편굴한 인간은 아닌것 같네요. 자유분방한 사람같습니다.
Nazareno 바둑두는 양반들의 대체적인 공통분모....상당히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다...돌맞을 발언인가..ㅎㅎㅎ 하여가눼~ 자국이던 외국이던 프로기사를 넘 우상시...신성시하는 경향이 있어보임...기자양반이 가까이서 봤을테니 술받는 장면을 누구보담 정확히 보구 분위기를 느꼈을틴디...설령 좀 과장되게 만화루다 표현했다하드라도 한번 웃자고 재밋게 그린 만화인디 뭐 그리 까탈스럽게 따지시나...타 분야에 비해 바둑동넨 지나치게 심각한 게 문제...두손으로 술받았다고 비굴하거나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독자는 없을 듯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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