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기사론/ 조남철 선생이 인가한 대형루키 '강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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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기사론/ 조남철 선생이 인가한 대형루키 '강유택'
2008-12-02     프린트스크랩


** [新기사론-강유택 편]은 [월간바둑] 2008년 12월호와 동시게재합니다. 잡지 지면 사정으로 싣지 못한 부분을 더하였습니다.


‘新기사론'을 취재하면서 많은 기사들의 코멘트를 따게 된다. 그때마다 “입단 3년차, 3단 이하 신예기사 중 누가 ‘물건'이냐?”는 질문을 빠뜨리지 않는다.

올 초까지만 해도 박정환의 이름이 가장 많이 오르내렸다. 그런데 여름철을 지나며 강유택(姜儒澤)이란 이름을 거론하지 않는 기사가 없었다. 한상훈처럼 세계적으로 ‘초단 돌풍'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김승재처럼 신인왕 타이틀을 딴 바도 없다. 지난해 4월에 입단했으니 입단 2년차. 데뷔전을 치른 게 지난해 7월말이니 이제 고작 1년을 갓 넘긴 애송이 중의 애송이다.

그런데 이 젖비린내 폴폴 나는 신출내기가 9월말까지 승률 80%대를 넘나드는 고공비행을 거듭했다(9월 22일까지 강유택 2단은 53전 42승 11패로 79.25%의 승률로 이 부문 1위를 달렸다).
요새 신예들의 승률을 따질 땐 이전마냥 예선전 대국이 많이 포함된 ‘거품'으로 평가절하할 수만은 없다. 이세돌이나 이창호 같은 최정상급이 상주하는 정글은 아닐지라도 요즘 ‘9단급 저단진'들이 벌이는 예선전은 본선 못지않은 ‘지옥'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강유택 二단의 승률에는 한국바둑리그 같은 큰무대의 전적이 포함된 것이기에 결코 허수로 치부할 수 없다. 그가 눕힌 명단에는 조훈현, 유창혁 같은 백전노장에서부터 원성진, 백홍석, 허영호를 비롯 한상훈, 박정환 같은 유망주들까지 고루 들어 있다.

단숨에 랭킹11위까지 치고올라온 초년병

2008년 11월 13일 현재 강유택 2단은 63전 46승17패(승률 73%)로 다승 7위에 올라 있다. 다승 5위 최철한 9단(48승13패)과 다승 6위 강동윤 8단(47승16패)과는 1승씩의 차이에 불과하다. 승률은 다승 1위(61승22패)를 달리고 있는 이세돌 9단과 같은 73%. 최철한(승률 79%)-이창호(승률 76%, 57승18패)-강동윤(승률 75%)에 이은 공동 4위다.

윤현석 9단은 강유택의 높은 승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한동안 승률 80%를 상회하는 페이스를 유지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기사층이 두터워지고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각축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60% 이상 승률을 기록한다는 건 꾸준한 성적을 거둬야만 가능한 일인데, 프로 초년병의 70%대 승률은 대단한 기록이다.”

강유택의 랭킹도 껑충껑충 뛰어올라 11월에는 11위까지 이르러 톱10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88올림픽 태생, 만20세 이하 신예기사들 가운데 강유택(91년생)보다 상위 랭커는 4위 강동윤(89년생)밖에 없다. 첫 손가락에 꼽았던 박정환(93년생)이 21위, 김지석(89년생)이 22위, 김승재(92년생)가 26위에 보일 뿐이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입단 1년밖에 안된 기사가 랭킹10위권에 이른 경우는 한상훈 3단(2006년 12월 입단하여 2007년 1월 랭킹9위에 입성) 외는 없었다.

물론 승률만 가지고 ‘대형 루키' 운운은 성급한 평가라 반론할 수 있다. 승부는 한방이 있어야 한다. 제아무리 문전에서 놀아도 골 결정력이 없으면 이길 수 없는 축구처럼 바둑도 결정적인 한방, 즉 타이틀을 따야 온전히 인정할 수 있다 강변하면 할말은 없다. 이 또한 승부세계를 재는 잣대이기에.
그 한방이 강유택에게는 있는가?

80년대 생인 강동윤 8단은 이미 ‘거물'로 발돋움했으니 논외로 하고 강유택과 같은 90년대 출생 또래 기사 중 박정환 2단과 김승재 2단은 각각 2007마스터스 챔피언십과 8회 오스람코리아배 신예기전을 우승하면서 한방을 보여줬다.

강유택이 보여준 건? 일단 2008한국바둑리그 9승5패(다승7위), 13기 박카스배 천원전 4강, 52기 국수전 4강, 신예기전인 오스람코리아배 4강 진출이 전부다. 번번이 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꿩 잡는 게 매이기는 하다. 문전에서 백날 좌충우돌하기만 하는 공격수보다 어슬렁거리다 한방을 날리는 킬러가 더 강력한 스트라이커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물에서 곧장 숭늉을 찾을 순 없는 노릇. 강유택 2단은 고작 입단 2년차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박정환과 김승재는 입단 3년째에 신인기전에서 우승했지만 본격(오픈)기전에서 아직 4강까지 치고 올라간 적은 없다. 질로 따져 강유택의 행보를 저평가할 수 없다는 걸 말하는 참이다.

적지 않은 기사들이 강유택을 무서운 유망주로 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장 손에 쥔 과실보다는 고루 활약을 보이고 있는 그의 성적표에 더 점수를 준다는 걸 뜻한다. 물론 이 순간에도 성장하고 있는 재목들이라 한참 더 지켜봐야 하긴 하지만 말이다.    

2008한국리그에 '괴물 신인'이 나타났다. 강유택 2단은 정규리그 9승5패로 팀(영남일보)을 챔피언결정전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이 됐다. 6라운드에서 강유택에게 진 백홍석 6단의 절망적인 표정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이 신예의 위력을 읽을 수 있다.

한국바둑리그에선 펄펄 날았다고는 하나 아직은 설익은 과일. 이제 시작이니 당연한 일이다. 국수전 4강에서 목진석 9단에게, 천원전 4강에서는 강동윤 8단 벽을 넘지 못하고 좌초됐지만 현재보다 미래가 한껏 기대되는 그릇이 강유택이다.

전쟁 싫다며 군대 안가려고 배운 바둑?

강유택 2단은 1991년에 태어났다. 올해 우리나이로 18세. 그런데 11월 26일생이라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만16세를 지나지 않은 상태다.

입단은 2007년 4월 1일 ‘내신 입단'했다. ‘내신 입단'이란 한국기원 연구생들이 6개월간 벌인 리그를 집계하여 내신성적 1등에게 별도의 입단대회 없이 곧장 면장을 주는 제도다. 당시 1위를 다투던 김현찬을 불과 6점(총승수 1승) 차이로 따돌렸다. 김현찬은 1등을 네 번이나 하고도 초반 4위, 7위를 하는 바람에 1등 두 번에 그친 강유택에게 고배를 마셨다. 대신 강유택은 꾸준히 4위 안에 들었다. 이 점, 꾸준하다는 점에 일단 방점을 찍는다. 

입단할 때의 나이 만15세. 연구생의 심한 적체로 퇴출나이(만18세)에 다다라 아슬아슬하게 입단하는 지망생이 대부분인 요즘 만15세 입단이면 이른 축에 든다. 하지만 근래 입단 흐름에 비하면 빨랐을지 모르나 그의 실력에 비해선 늦은 편이라는 게 주변의 평이다. 그만큼 강유택은 독보적이었다. 그리고 꾸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포가 약했는지 결정적인 한방이 아쉬웠다. 조기 입단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게 그렇고, 프로가 된 후 승승장구하면서도 4강에서 주저앉은 것이 그렇다. 나중에 분석하겠지만, 이 ‘2% 부족'은 그의 ‘낯가림 현상'에 기인한다. 

강유택이 바둑돌을 처음 쥔 건 만6세 때였다. 아버지 강호길(46) 씨는 부천시 역곡에서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IMF 무렵은 경기가 말이 아니었다. 손님이 없다보니 어머니 박현진(39) 씨와 가게에서 재미 바둑을 자주 두곤 하였는데 어린 유택이가 관심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 시절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걸프전이 발발했고 이창호 9단의 병역면제 소식이 보도되던 때였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입학도 안한 녀석이 전쟁 뉴스를 보고선 군대 가기 싫다, 바둑을 잘두면 군대에 안가나 보다 생각했는지 자기도 바둑을 두겠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아버지 어머니는 기력을 밝히기도 창피한(?) 두 자리 급수. 아버지가 조금 가르치다가 동네 바둑교실에 보냈다. 그냥 맡기면 혹시 애를 잘 가르쳐 주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프로로 만들 거니까 잘 봐 달라.”고 허세를 부렸다. 프로기사라는 말만 들었지 바둑에 대해선 사실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런데 6개월 뒤 “잘 두니 키워 보자”는 원장의 말이 돌아왔다.

7~8급 정도 되었을 때 동네 애들은 상대가 안돼 강호길 씨는 아들을 데리고 기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전문 바둑도장이 있는 줄조차 몰랐다. 아버지가 기원비는 물론 담뱃값 따위를 건사하며 동네기원 순례를 하던 시절 부자는 기분 좋게 대문을 나가곤 했다고 어머니는 증언한다.
그러나 올 때 표정은 승패에 따라 달랐다. 특히 이길 수 있는 판을 졌을 때 아버지는 스파르타 장군처럼 아들을 훈육했다. 대회에서 긴장해 어이없이 지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정신력 부재에서 본 아버지는 팔굽혀펴기를 100개, 200개…, 심지어 500개까지 시킨 적이 있다는데 놀랍게도 몇 시간이고 낑낑대며 이를 다 하더라는 것이다. 유택이가 체력이 달리지 않는 건 이때의 팔굽혀펴기, 줄넘기를 많이 시킨 덕분이라며 아버지는 껄껄 웃는다. 

연구생시절부터 입소문난 어린강자

기원 순례는 1급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프로기사를 시키겠다는 뜻을 품긴 했어도 애가 바둑을 좋아하니 이런저런 학원을 기웃거리지 않고 그저 바둑교실 한곳만 보냈을 뿐 딱히 목숨 걸고 덤벼든 것도 아니었다. 우연인지 천행인지 여하간 바둑공부만 한 건 행운이었다. 양천대일도장에서 본격적인 바둑수업을 하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김희용 원장) “유택이를 받았을 때 가르쳤던 김지명 씨가 기재가 뛰어난 아이니 눈여겨보라고 하더군요. 처음엔 고수한테 겁 없이 덤비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 바람에 동급의 다른 아이들보다 사범한테 2점 더 접히고 두었지만 싸움을 마다 않더군요. 철들면서 기풍 변화를 가져오긴 했지만…. 한창 배울 때 주로 마샤오춘이나 조치훈 9단 같이 성적내는 기사들 바둑을 많이 놓아보던데 이들을 따라하다 보니 싸움바둑에서 실리바둑으로 바뀐 게 아닌가 싶네요.

제자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인터뷰하고 있는 김희용 원장.

기보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집중력이 좋은 아이였어요. 다른 아이들은 앉은자리서 3~4국을 놓고 나면 엉덩이를 떼기 일쑤인데 유택이는 9국이고 10국이고 연구합니다. 유택이가 실리에 민감한 바둑이기는 하지만 싸움을 싫어하지도 않죠. 수읽기가 정확하고 힘이 좋은데 상대가 집바둑은 싸움을 못할 줄 알고 건들다가 낭패를 많이 보죠. 하하.”

양천대일도장은 현재 “연구생 최강자들이 가장 많이 모인 양산박” 소리를 듣고 있다. 도장 원생 가운데 한국기원 연구생이 33명이고 이중 남자연구생 1군만도 24명, 다시 이 가운데 연구생 1~2조가 12명이라고 한다. 2008년 올해에만 4명의 프로를 배출했다. 이곳 넘버원이었던 강유택은 입단대회 때마다 입단 영순위로 거론되었다. 입소문을 듣고 아마강자들이 많이 찾아왔다. 그들 대다수가 “참 잘 둔다. 세다. 상대를 답답하게 만드는 바둑.”이라며 돌아갔다.

입단하기 전 국수에 오른 윤준상 7단도 놀러온 참에 지도기 한판을 두었다. 강유택이 지긴 했지만 그때 윤국수로부터 ‘타개귀신'이란 평을 들었다. 윤국수는 “제가 그래도 프로 중에선 공격이 약한 사람이 아닌데 양곤마를 다 타개하는 솜씨가 놀랍다”며 감탄했다.

이처럼 자타가 인정하는 실력자였으면서도 도장 내 실력서열 7~8위에 지나지 않았던 한 살 아래 김승재보다 한 걸음 뒤져 입단했다(김승재는 2007년 12월 일반인입단대회를 당당히 통과했고 강유택은 4개월 뒤 내신으로 면장을 손에 쥐었다.) 강유택이 늦은 게 아니라 김승재의 입단이 빠른 거라 말할 수도 있겠으나 아무튼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게다가 김승재 2단은 올해 오스람코리아배 신예연승최강전 4강에서 강유택을 꺾고 우승까지 했다.

왜 자꾸 김승재와 강유택을 비교하는가? 나이도 비슷하고 입단 시기도 비슷한 데다 동문수학이다. 동시에 ‘차세대 주자'로 떠오른 이 두 사람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강유택의 바둑을 좀더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김승재 바둑과 대조해 볼 필요가 있다.

김승재(왼쪽)와 강유택은 박승문 6단이 육성한 양천대일도장의 투톱이다. 동문수학한 도반이자 맞수인 두 사람이 벌일 경쟁이 자못 궁금하다.

날카롭고 타개 뛰어난 실리형 기풍

생활사감인 김희용 원장은 양천대일도장이 배출한 두 간판스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승재는 승부기질이 엄청 센 스타일입니다. 이에 비해 유택이는 외향적으론 상당히 유순하지요. 이창호 9단처럼 성실하고 착실한 ‘반상의 범생이'랄까. 도장 연구생들한테 가장 인기가 있지요. 별명도 ‘강 프로'입니다. 연구생 시절부터 자기 목표를 가지고 겸손하게 열심히, 프로다운 자세를 한치도 흐트러뜨리지 않는 생활모습을 보여줘 붙은 별명이지요. 이 점이 최대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연구생시절부터 두 기사를 가르친 스승 박승문 6단의 평가는 어떨까.
“유택이는 워낙 어려서부터 기재가 돋보인 톱클래스 유망주였죠. 승재는 입단 무렵엔 약했는데 프로가 된 이후 확 늘어 발군의 성적을 냈고요. 둘 다 실리형이긴 하지만 스타일이 다르지요. 유택이는 반짝반짝 재기가 빛나고 타개에 능한 집바둑 스타일로 굳이 이분법으로 비교하자면 이세돌 쪽에 가까운 편이고, 승재는 이창호의 안정적 운영에 가까운 편이지요. 둘 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상당히 침착하며 집중력이 강하고 전체적인 페이스가 골라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옥득진 5단은 강유택을 잠재력이 어마어마한, 대형루키로 평가했다.
“장담하건대 유택이는 엄청 성적을 낼 겁니다. 두는 거 보면 지금 이미 정상급에 비해 모자란 부분이 없어요. 야구로 구질에 비유하면 마구? 스타일이 엄청나게 까다롭고 번쩍번쩍해 조금만 어물어물 하다보면 순식간에 저만큼 밀려버립니다. 공격보다는 타개 스타일이지요. 유택이의 돌은 잡기가 정말 힘들어요.”


 

[장면1] 제8기 오스람코리아배 결선4강
강유택 2단
김승재 2단
<제한시간 5분 30초 3회, 덤 6집반, 2008. 9. 5>

   

두 사람은 도장에서 동문수학하며 100판도 넘게 겨뤘다. 승률은 강유택 2단이 좋았다는데 프로승부는 또 다른 법.

김승재 2단은 강유택의 강점으로 “깊은 수읽기”를 꼽았다. 그러면서 “밥을 자주 사줘 좋다”며 웃는다. 인간성도 굿이라는 얘기다.

국면은 초반 흑▲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면서 백이 주도했다. 하지만 중반 이후 김승재의 힘이 발휘되면서 좌변 백대마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흑2로 달리며 김승재도 “잡은 줄 알았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흑2로써 <1도> 흑1,3으로 두는 것은 백2,4로 쉽게 살아버린다.

백이 그냥 사는 수는 없다며 실전 백3 선수 후 백A, 흑B 등의 수단을 기사들이 검토하고 있을 때 백5의 마늘모가 떨어졌다.
급박한 초읽기 속에서 떨어진 이 수에 다들 (순식간에 수를 정확히 읽어내는 재주에) 감탄했고, (찾아내기 쉽지 않은 수를 간단하게 찾아내니) 약간은 허망했다.

<2도> 흑1은 이하 백6까지 역시 사는 수가 있다.
수순 중 흑5의 수로-

<3도> 흑1로 변화해도 백6까지 살아버린다.

그러나 승부는 이후 백이 실착을 저지르면서 역전되고 말았으나 강유택의 수읽기와 타개솜씨를 여실히 보인 대목이었다. 321수 끝, 흑 2집반승.

[1도]
 
 
[2도]
 
 
[3도]



 

[장면2] 2008한국바둑리그 9라운드
유창혁 9단
강유택 2단
<제한시간 30초 10회, 덤 6집반, 2008. 8. 17>

   

두 번째 만남이다. 바둑리그 2라운드에서 처음 만나 어수룩하게 굴다 완패했고 이 판도 고전 끝에 역전했다. 대선배로부터 관록의 힘이 뭔지 톡톡히 배웠다.

백1의 단단한 마늘모에 흑2가 강유택의 날카로움이다.

백1이면 <4도> 흑1,3으로 두거나 아니면 흑1, 백2의 교환을 생략한 채 3에 두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이것은 백A의 갈라침이  눈에 밟힌다.
실전 흑2의 뛰어듦은 이런 연유로 등장했다.

<5도> 흑1은 백2,4로 두어달라는 주문. A의 약점을 선수로, 자연스레 방비하겠다는 얘기다.

이에 유창혁 9단도 실전 백3으로 눌러갔고 흑 또한 A로 마이웨이를 외쳤다. 308수 끝, 흑 2집반승.

[4도]
 
 
[5도]




 

[장면3] 2008한국바둑리그 10라운드
이정우 6단
강유택 2단
<제한시간 30초 10회, 덤 6집반, 2008. 9. 1>

   

강유택의 번뜩이는 재기를 하나 더 본다. 백1로 틀어막은 장면에서 흑은 6의 곳을 끊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하지만 지금은 백A로 축.

그렇다고 <6도> 흑1로 두는 것은 상대가 이하 백6까지 변신할 것이다. 이 다음 흑7은 한 박자 늦다. 백8로 늦추면 뒷북을 친 꼴.

실전 흑2의 껴붙임이 강유택이 동물적인 감각이다. 백3으로 반발할 때 흑4를 선수해 놓고(축머리다) 6의 절단!

[장면4]는 이후의 수순이다. 축으로 몰 수 없게 된 백은 1로 물러섰고 흑은 2 이하 6의 통렬한 모착과 14의 덮어씌움으로 일방에 가까운 싸움을 펼치게 되었다. 260수 끝, 흑4집반승. 

[6도]
 
 
[장면4]

강유택 바둑에 대한 기사들의 평을 종합해보면 이세돌과 조훈현, 강동윤의 스타일을 믹서해 놓은 기풍이란 느낌이 와 닿는다. 일단 이들은 모두 실리에 민감하고 수읽기가 깊으며 전투적이다.
하지만 강유택은 이세돌 9단처럼 강렬하고 번뜩이며 수읽기가 빠르되 그만큼 전투적이지 않고(좀더 수비지향적이고), 조훈현 9단처럼 발이 빠르되 엷지 않다(그만큼 스피디하진 않지만 좀더 안정적인 반면운영을 한다). 그리고 강동윤 8단처럼 날카로운 수를 많이 구사하고 타개와 마무리에 강하나 그만큼 치열하고 전투적이지는 않은 편이다.

김승준 9단은 강유택의 바둑을 ‘실리파, 전투력, 타개' 이 세 마디로 압축한다.
“실리에 민감하다고는 해도(하긴 요즘 뛴다난다 하는 기사 중 실리에 예민하지 않은 기사가 있을까만) 마샤오춘처럼 아주 밝히는 스타일은 아니고 대신 그에 비하면 전투를 더 하는 편이지요. 요즘 신예들이 하나같이 그러하듯 수읽기와 종반이 강합니다. 두루 강해요.”

후반 강한 침착한 집바둑…분위기 타는 약점

올해 바둑리그에서 직접 맞붙어본 바 있는(1승1패) 유창혁 9단은 무엇보다 강유택의 안정감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입단 1년밖에 안된 기사가 랭킹11위까지 올랐다는 건 실로 놀라운 행보입니다. 상대가 걸어오는 싸움은 마다않지만 먼저 싸움은 잘 안 거는 타입이고 전투를 해도 급전을 벌이거나 초조한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는 포커페이스 형이란 인상을 받았습니다.

싸움이 특별히 강한 느낌이나 강렬한 맛은 없어 보이지만 차근차근 상대를 괴롭히는 스타일이지요. 침착하고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이런 바둑이 사실 더 무섭습니다. 무너질 듯 무너질 듯하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지구력 좋은 이창호류의 절충파들은 그만큼 형세판단이 뒷받침되기에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이창호 9단과는 두터움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창호 9단이 더 두텁지요. 상대적으로 강유택 2단은 스피디하고요.” 

윤현석 9단도 실리형의 침착한 기풍이라는 데 동의한다. 수비 위주로 반면을 이끌다가 상대의 허점을 짚어 주도권을 쥐는 침착한 스타일은 후반이 강하다고 한다. 목진석 9단의 감상 또한 비슷했다.
“강자를 상대해도 주눅들지 않고 상당히 침착하다. 바로 이런 점이 기복 없이 엄청난 기세로 성장하게 한 요인인 거 같다. 마무리도 훌륭하다.”

이 같은 상찬들은 이제 1년을 갓 넘긴 신예라는 점을 웬만큼 고려한 평일 터이다. 경험이 부족한 건 말할 나위 없다. 우선 바둑내용적으로 보면, 집바둑으로 흐르는 바둑에서는 종반 마무리가 돋보이고 힘을 내는 모습을 보이지만 최근 바둑리그 14라운드 조훈현 9단과의 대국(아래 장면6)에서 드러났듯 자기 스타일로 가닥을 잡지 못했을 때-가령 상대가 조9단 같이 엷음을 감수하며 발빠르게 실리를 취했을 때 반사적으로 쌓게 된 두터움을 어떻게 활용하고 전투를 이끌어야 하는지 따위에 미숙한 면이 드러난다.

게다가 분위기를 곧잘 타는 바둑 외적인 약점도 보였다. 이는 경험부족과 연결되는 얘기이긴 하나(그러므로 점차 극복될 것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낯가림은 그의 성격에 기인한 측면도 있다.

도장에선 이미 초강자로 대접을 받았고 성적도 좋았지만 이상하게 대회에만 나가면 미끄러지는 현상. 강유택의 아마시절 우승기록은 2003년 상하이에서 열린 20회 세계청소년바둑대회 주니어부(11세 이하) 우승이 유일하다. 그밖에는 2002년 정현산배와 2006년 세계청소년바둑대회 시니어부 준우승이 전부다. 실력에 비해 입상운이 무척 안따랐다는 말로 돌리면 그만일까.

2008한국바둑리그의 성적도 들여다보면 처음 2연패(대 최명훈, 유창혁)를 당한 뒤 3라운드부터 11라운드까지 8승1패로 날았다. 이 가운데 6연승이 있다. 국수전과 천원전, 오스람코리아배 3개의 기전에서 약속이나 한 듯 4강에서 주저앉았다.

“이전까지 편하게 두다가 막상 결승무대가 코앞에 어른거리니 저도 모르게 부담을 가진 듯합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심적 동요도 패인으로 작용했음을 본인도 고백한다.

(김희용 원장) “대가 약한 건 아니나 분위기를 타고 적응하는 데 시간이 약간 걸리는 타입이지요. 이 점에서 한국바둑리그 초반 7연승을 올린 류동완 초단과 비교되지요. 류동완은 힘과 배짱이 좋은 기사입니다. 이 점이 초기에 성적을 낸 원동력이라 생각합니다. 유택이도 초반 2연패를 당했지만 분위기에 익숙해진 뒤부터는 실력발휘를 했지요. 경험이 쌓이면 집중력을 더 발휘해 더 성적을 내리라 봅니다.”



 

[장면5] 2008한국바둑리그 11라운드
강유택 2단
홍민표 6단
<제한시간 30초 10회, 덤 6집반, 2008. 9. 19>


   

흑1의 삭감에 백2로 지킨 수. 흑11 때 백12로 순순히 받아준 수, 백22의 수비에서 유창혁 9단이 말한 강유택의 안정적인 성향을 보게 된다.

다른 건 몰라도 <7도> 흑1에 백은 삼수갑산에 가더라도 2로 반발하고 싶은 곳이다. 만약 흑3으로 잇는다면 백6까지, 이건 흑이 곤란하지 않은가.

실전 흑15,17이 실착이었다.
백14가 놓였더라도 <8도>에서 보듯 흑▲를 선수로 행사한 좌하변 흑대마는 이미 깔끔하게 수습된 모습이거니와 A의 붙임도 있어 절대 공격당할 돌이 아니다.
따라서 흑1로 뛰는 게 요처였다.

꾹꾹 참으며 웅크리고 있다가 이 한 박(拍)의 틈새를 여지없이 간파하며 백18,20을 낚아채는 강유택의 송골매 같은 눈. 이제 흑A는 백B로 늦춰 그만이다. 이 순간 승부의 저울추가 기울어졌다. 224수 끝, 백 불계승.

[7도]
 
 
[8도]




 

[장면6] 2008한국바둑리그 14라운드
조훈현 9단
강유택 2단
<제한시간 30초 10회, 덤 6집반, 2008. 11. 8>


   

그러나 안정적인 반면운행이 마냥 최선일 수는 없다. 강유택은 조훈현 9단과 2008한국리그에서 두번 만나 처음(7라운드)에서는 이겼지만 두번째는 졌다. 그런데 이 두번째 만남에서 백전노장 조훈현 9단이 구사한 전법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강유택 2단의 허점을 여실히 파고든 한판이었기 때문이다.

조훈현 9단의 바둑은 일단 빠르다. 두 계단씩 성큼성큼 걸어올라가는 그의 보폭처럼 쉭쉭 날랜 소리가 난다. 빠른 바둑은 대신 엷다. 이 엷음을 그는 치열한 전투로 극복한다. 백6~10, 백12~20의 과정을 보면 과연 물찬 제비 같다.

백26의 기습 이후 28의 수는 30으로 먼저 협공하는 착상이 일감인데 조훈현의 사전에는 이런 밋밋한 발상은 감질난다.

<9도> 백△는 흑1 이하 7로 두어달라는 얘기. 물론 이것이 보통이지만 왠지 좌변과 우상변의 백이 낮은포복으로 자세를 잡은 모습이어서 밍숭밍숭한 감이 든다. 해서 흑도 실전 31로 비틀었는데-

<10도> 흑◎에는 백1~5로 두어 ▲ 두점을 무력화시킬 줄 알았는데 역시 조9단은 백32,34로 가르고 나온다. A 단점이 눈에 빤히 보이건만, 마치 가드를 완전히 내리고 상대의 공격을 유인하는 복서처럼 바로 치고 들어오라는 제스처다.

온건하게 둔다면 <11도> 백1일 것이다. 흑도 2로 자세를 잡을 터인데 이것은 위아래 백△가 견고히 자리잡고 있어 충분해 보인다. 그런데도 백은 실전 34로 싸움을 건다.

보통의 경우 실전은 백의 무리한 작전이나 본시 조훈현 9단은 이러한 강공으로 이득을 본 뒤 치열한 전투로 엷음을 극복, 대세를 일거에 바꾸는 탁월한 힘을 지녔다.

[9도]
 
 
[10도]
 
 
[11도]

   

요는 붙어보자는 것. 그러나 강유택은 곧장 달려들지 않는다. 흑35로 비껴간다.

흑35의 수로 A의 약점을 곧장 닥달하는 것은 <12도> 흑1로 추궁하는 수단도 있어서 일단은 아끼고 싶은 대목. 하지만 흑45는 어땠을까?

<13도> 흑1(실전 흑45)은 백2를 기대한 수. 그러면 흑3, 5로 절단하고 백6 때 흑7로 자릴 잡으며 싸우겠다는 얘기인데-

<14도> 흑A 없이 바로 흑1,3의 절단은 백4로 만만치 않은 싸움이라 본 것이다. 물론 이세돌 같은 파이터라면 불문곡직 이렇게 한판 붙었을지 모른다. 쌍방 못싸울 이유가 없는 자리지만 강유택은 좀더 안정적인 흐름을 원했다.

하지만 상대의 '강수! 강수!' 연발에 사이드스텝으로 일관하는 사이 백은 44,46으로 엷었던 곳을 보강하며 재미를 봤고 실리로 앞서 가게 되었다. 상대의 인파이팅에 전혀 흔들림 없이 균형을 맞춰가는 안목은 돋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상대가 실리를 파는 동안 상대적으로 구축한 두터움을 이후 어떤 식으로 활용하느냐. 상대의 엷음을 어떻게 추궁하며 주도권을 되찾아오느냐가 관건인데 이 부분에서 강유택은 아직 서투른 면을 보이며 완패했다. 유창혁 9단이 말한, "두터움을 쌓았을 때의 활용여부", "아직 전투력은 검증되지 않았다"는 바로 그 대목이다. 275수 끝, 백3집반승

[12도]
 
 
[13도]
 
 
[14도]

강유택 2단은 가장 많이 공부해야 할 부분으로 포석을 꼽았다. 이창호 9단의 바둑을 가장 좋아한다며 올 1월 36기 명인전 예선3회전에 한번 대국했는데 역시 마무리와 끝내기가 강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가장 따라가고 싶은 기사로는 한상훈 3단을 들었다. “라이벌 의식이라기보다는 저보다 세고 성적도 내니까…”라고 말하며 당면 목표는 신인왕 타이틀과 세계대회 본선진출이란다.      

강유택을 낳을 때 부모는 달리 태몽을 꾸지 않았지만 입단하기 전날 아버지는 희한한 꿈을 꿨다고 한다. 아버지와 도장 원장이 작고하신 조남철 선생과 셋이 한국기원 4층 기사실에서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래층 사무국에서 급히 조선생을 찾더라는 것. 사무국직원이 조선생께 강유택의 서류를 보여드리며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고 잠시 들여다보던 조선생이 “강유택 입단시켜!” 큰소리로 선언하셨고(1년 전 작고하신 조선생이 꿈에 보인 것도 희한하지만), 그 꿈대로 강유택은 다음날 입단했다.

꿈 이야기에 기댄다면, 강유택은 한국 현대바둑을 개척한 조남철 선생이 인가한 기사다. 그런 기재가 펼칠 한국바둑의 앞날은 과연 어떠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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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익는향기 |  2008-12-02 오후 1:53:1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아 꿈이야기 였군요... 조남철 선생님이 언제 그런말을 하셨을까 궁금했었는데...

정 이사님은 흙속에 뭍혀있는 보석을 찾아내시는 감각이 탁월하신듯...
강동윤 기사 쓰시자 마자 대형 사고를 막 치고다니것좀 보세요.


앞으로는 강 씨 선수들이 강 할것 같은 예감이...
강동윤, 강유택...둘다 이창호처럼 성실하다니 더욱 기대가 됩니다.

재미있게 잘읽고 갑니다... 수고 많이 하셨어요...  
AKARI |  2008-12-03 오후 7:13:2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김희용원장님...^^ 천하의 영재를 가르치고 키운 ..얼마나 흐뭇하실까요?

승부라는것이..꼭 논리합리적인것으로 설명할수 없는 묘한 미스테리한것도
있는듯 해요..어디에서나...조남철기성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입단을 허락
하셨다니..이것도..무슨 계시? 겠지요^^  
AKARI |  2008-12-03 오후 7:14: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혹시나..강유택사범님의 동생분도 바둑을 두시는지 궁금하네요?
아시는 님 계신지요?  
AKARI 혹시나..이름이 비슷한 강민택군~?
AKARI |  2008-12-03 오후 7:20:0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좌승재우유택.........박승문사범님 표정이 참 든든해 보이시네요^^  
후지산 |  2008-12-10 오전 7:48:5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김희용원장,
대단한분 같습니다. 언제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돌부처쎈돌 |  2009-01-07 오후 9:14:1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와, 어마어마한 분량...
글이란 건 이렇게 쓰는 것이야를 보여주시는군요.
강유택 사범이 입이 귀에 걸리셨을 듯^^!
정이사님의 열정에 감탄이란 단어로 갈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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