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하 아나운서의 멘트가 급히 이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11시 다큐멘터리 극장에서 자세히 전하기로 하고 마이크를 스튜디오로 넘기겠습니다. 이 시간에는 경제 전문가를 모시고 구로다 회장의 방한 일정에 대해….”

티브이 화면에서 시선을 거두며 박일우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군중들 사이에서 허겁지겁 지프로 돌아가 어둠 속으로 달려가는 마충길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아하하하하, 이처럼 통쾌한 장면은 처음 보는구만. 과시 박사주의 걸작일세.”

언제 들어왔는지 송학수는 손바닥을 두드리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눈치 빠른 기미꼬가 작설차를 준비하러 나가자 그는 김순원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

“이곳에 와 보니 어떠신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송학수는 시선을 박일우에게 주었다.

“불편한 곳은 없으시오?”

“너무 편안합니다.”

“그렇담 다행입니다. 민주아 그 아이가 신년 연휴를 시골에서 보내게 됐으니 당분간 불편할 겁니다.”

송학수는 티브이 화면을 곁눈질하고서야 덧붙였다.

“흐음, 오늘 저녁에 사연을 공개할 모양이로구만. 신년 벽두부터 울 사람이 많겠어. 아니, 김기자. 왜 그러시오. 안절부절못하는 품이 묻고 싶은 게 많나 보구만.”

“잠깐만요, 갑자기 서삼릉 미스터리를 방영한 이유가 뭡니까? 곽성필은 ｢사건과 추적｣이라는 주간지에서 물의를 일으킨 그 친구 아닙니까? 무속인들의 기둥서방이라고 평판이 돈 위인을 어떻게 리포터로 삼았죠?”

“장민호를 잡으려다 마충길이 된통 걸린 거지. 그러나 저러나 저 화면을 보면 까무러칠 사람들이 많겠는데 그래.”

송학수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천장을 향해 간헐적으로 ‘허어!’를 연발했다.

어디가 잘못됐는가? 이동박은 그 점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예측했던 대로 태호가 비장된 장소를 찾아냈다면 상황은 급속도로 달라졌을 것이다. 장민호 회장은 나이 때문에 감옥에 갈 일은 없다 해도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었다. 또한 국민의 이름으로 규탄 대회가 열리면 함부로 나다니는 것조차 위험했다. 그렇게 본다면 한걸음 먼저 알려준 박사주는 구세주였다.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를 든 기미꼬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가 건네주었다.

“아, 장민홉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금명간 한 번 만나십시다, 내 박사주에게 할 얘기가 많습니다. 아참, 물건들은 정해진 장소로 옮기는 중입니다. 그럼….”

수화기를 내려놓는 박일우를 향해 김순원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렇다고 섣불리 물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어서 메마른 입술에 침질만 계속했다. 그러한 심중을 알아차린 듯 뒷설명을 깔았다.

“많은 사람들이 장민호 회장을 매국노로 단정짓고 있지만 그건 잘못된 판단입니다. 그 분은 겉과 속이 확연히 다른 수박 같으신 분입니다. 그 점 김기자도 궁금할 게요.”

“그렇습니다.”

“저도 장민호 씨에 대해 여러분과 같은 생각이었습니다만, 오죽 선생이 남기신 여러 글을 읽고 그분의 진면목을 알게 된 거죠. 그분은 일정하에 독립투사들을 도와주었고 풍수적으로 좋은 땅은 침해를 입기 전에 사들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 소유의 부동산이 전국에 흩어져 있죠.”

“것보다두 더 궁금한 것은….”

“도요지 사건입니까?”

“아, 예에.”

“서삼릉을 조성할 때 빼돌린 태호가 그곳 어디에 비장 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연히 알게 됐죠. 죽은 정공칠 실장이 알려준 겁니다. 물론 죽기 전이죠. 장민호 회장이 도요지 안에 태호를 감춘 것은 삼합회와 한판 승부를 앞두었기 때문이에요. 자세한 전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떤 이유 때문에 태호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았답니다. 그 점을 이동박 쪽에 은밀히 흘린 거죠.”

“태호의 양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왜 흔적을 찾지 못했을까요? 이동박은 그 방면에 도가 튼 위인인데요.”

“거의 다 찾았어요. 이를테면 다 잡은 고기를 놓쳤다고 하는 편이 낫겠죠. 아까 김기자가 본 것처럼 그곳 ｢추사정｣에 있는 시구는 그렇게 해석이 돼요. 함정은 맨 마지막에 있었죠. ‘중소일편월(中宵一片月)’이오. ‘한밤중에 조각달만 떠오른다’는 시구인데, 여기에 비밀이 있다고 했었죠.

이동박은 이 시구에서 아마 두 가지를 생각했을 겁니다. 그 하나는 좀 전에 본 것처럼 걸음을 한 발짝 옮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곱 걸음 반을 옮기는 경우었죠. 보름달이 열다섯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면 일편월은 보름달의 반인 7.5가 맞죠. 만약 이동박이 북쪽으로 한 걸음이 아니라 일곱 걸음 반을 걸었다면 태호를 발견했을 겁니다. 그때는 나도 손을 쓸 수 없었죠. 그러니까 운이라고 봐야죠.”

김순원은 이 일이 운만은 아닐 거라는 섬뜩한 생각에 몸을 떨었다. 언제 가져다 놓았는지 기미꼬가 끓인 작설차는 식은 지 오래였다. 김순원은 식어 빠진 찻물을 홀짝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