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하 아나운서는 오른 쪽에 떠오른 화상을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이주형 기자, 그쪽 기온은 어떻습니까?”

“영하 7,8도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밤이 깊어지면서 수은주는 더 떨어진 상탭니다.”

“작업은 어느 정도 진척 있습니까?”

“아닙니다. 현재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보자가 도착할 시간이 거의 다 됐습니다. 아, 말씀을 드리는 순간 제보자가 탄 차가 도요지 안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군용 지프에 몸을 실은 이동박이 창밖으로 한 손을 내밀어 대기중인 인부들과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는 차에서 내리자 중계차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지금 많은 국민들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선 제보를 하게 된 배경 설명을 짤막하게 해주시죠.”

“저는 오래 전부터 ｢서삼릉 미스테리｣에 의문을 가져왔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일제가 서삼릉에 태실을 조성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파헤치던 중 뜻밖의 사실에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뭡니까?”

“얼마 전 일본의 아카다 컬렉션에 나왔던 월산대군의 태호는 너무나 아름다운 도자기였습니다. 일제는 이러한 도자기를 수탈해 가기 위해 전국의 명당에 안치된 태실을 헐어 서삼릉으로 옮겼죠. 이 과정에서 함부로 태호를 다루는 까닭에 깨지거나 손상된 것도 많았지만 상당량의 태호가 일본으로 건너갔거나 특수층의 비호를 받은 부동산 업자가 밀실 깊숙이 숨겨 두고 있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됐습니다.”

이주형이 장황한 설명을 잘랐다.

“그렇다면, 태호 일부가 이곳 도요지에 있다는 겁니까?”

“일부가 아니라 거의 비장 되었다고 봅니다. 자세한 것은 제가 근무하는 ｢스캔들｣ 잡지에 실

었습니다만, 시간 관계로 그 부분은 생략하기로 하고 태호 발굴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죠.”

이주형은 약간 옆으로 비켜선 채 따라 걸었다. 이동박은 품속에서 두 장의 종이를 꺼내 한 장을 이주형에게 주었다. 거기엔 한 시가 씌어 있었다.

불시상추병(不是傷秋病)

지인억일봉(只因憶一鳳)

사정여해심(思情與海深)

중야독상심(中夜獨傷心)

“시구의 내용은 접어 두겠습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이동박은 ｢추사정｣ 안으로 일행들을 이끌어 갔다. 그곳에도 시구가 씌어진 편액이 걸려 있었다.

부차십량진(不借十兩盡)

지공종사절(只恐宗祀絶)

사가잉불매(思家仍不寐)

중소일편월(中宵一片月)

“에, 편액에 쓰인 시구를 보면 제가 이주형 기자에게 준 쪽지의 시와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를테면 앞 시의 첫글자를 그대로 따왔다는 점이죠. 자, 이쪽으로 오시죠. 이 ｢추사정｣ 앞에 사각으로 된 돌이 있잖습니까. 여기에서 시구에 씌어진 대로 걸음을 옮기면 비밀을 풀 수 있습니다. 첫행은 ‘부차십량진’이라 했습니다. 즉, 십량을 쓴 것은 아깝지 않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열 걸음을 걷겠습니다.”

이동박은 편안한 걸음걸이로 열 걸음을 걷고 멈추었다. 이주형이 부지런히 옆으로 따라 걸었다.

“그 다음이 ‘지공종사절’이라 했습니다. 조상의 제사를 드리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돈이 없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어느 방향으로도 걸음을 옮길 수는 없습니다.

세 번째는 뭡니까. ‘사가잉불매’입니다. 집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열냥의 돈을 다 써 버렸으므로 제사를 지낼 수 없으니 잠을 잘 수 없다는 거죠. 잠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여덟 시간을 잡니다. 그래서 남쪽으로 여덟 걸음을 걷습니다. 왜 남쪽이냐 하면, 처음에 앞으로 나가는 것이 동이고 그 다음이 서였으니 이번이 남이죠. 마지막이 ‘중소일편월’이죠. 한밤중에 조각달만 떠오른다는 뜻이죠. 그래서 북으로 한 걸음입니다.”

이동박은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서야 위치를 잡았다. 인부를 가까이 오게하여 자신이 멈춘 곳의 반경 1미터 너비를 파게 했다. 이주형의 낯빛도 흥분된 상태였다.

“지금 여러분은 역사적인 현장을 보고 있습니다. 수십년 동안 그늘에 가려진 채 왜곡되어 온 서삼릉의 태호들. 이제 그 태호들이 긴 동면에서 깨어나기 직전입니다.”

인부들은 열심히 곡괭이질 했다. 대략 5분쯤 파 내려갔을 때, 곡괭이 끝에 쇠가 부딪치는 느낌이 강렬했다. 인부가 고함을 질렀다.

“뭔가 걸렸어요!”

중계차 쪽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모두들 부나비가 되어 라이트가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대략 1분쯤 파 들어가자 좌우 1미터 남짓의 철제 상자가 나타났다. 상자 입구에는 자물쇠가 채워진 것을 보며 이주형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삼릉의 태호라면 한두 개가 아닐 텐데요. 철제 상자가 너무 작은 것 아닙니까?”

“아직 속단하기 이르죠. 이 안에 뭐가 있는지.”

인부들이 곡괭이 날을 집어넣어 좌우로 비틀었다. 자물쇠가 떨어져 나가고 문이 열렸다. 철제 상자 안에는 한 점의 도자기가 덩그마니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사연을 기록한 두툼한 노트 한 권이 놓인 채였다. 노트 제목은 ｢사랑하는 내 딸에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