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주는 연못가에서 몸채를 향해 걸으며 뜻밖의 얘기를 꺼내 들었다.

“어둑새벽에 경신년 운수점을 열었더니 괘사가 심상찮아요. 내우외환의 조짐인 산풍고(山風蠱)였소. 이 점괘가 떨어질 때마다 나라에 변란을 가져 왔으니 상서롭지 못한 괘사요. 보아하니 올해도 금년 봄이 다하기 전 큰 변란이 일어날 게요.”

오늘 하루 동안에 만난 점쟁이들의 점괘가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지 알 수 없었다. 그것만으로 본다면 가히 신술(神術)이다. 박사주를 따라 방으로 들어온 김순원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기어코 송학수 원장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의도가 무엇인지가 궁금하다는 것이다. 답변이 뜻밖이었다.

“예나 제나 이 나라엔 욕심 많은 승냥이가 있기 마련인가 보오. 그거야 사람의 분복이니 우리 같은 학인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나, 반백년 동안 기이한 짓을 저지른 왜인들의 야수 같은 몸부림은 막아야질 않겠소. 해서, 김기자를 이곳으로 부른 것이오.”

“?….”

“이해가 안 된다면 다시 말하리다. 김기자와의 인연이 끝나지 않아 상면하게 된 것이오. 자세한 건 차차 알게 될 것이오. 출근 하려면 앞으로 이틀 더 남았으니 나와 함께 지냅시다. 그렇게 해야 뒤탈이 없을 거요.”

여기까지 왔으니 싫다 좋다 반론을 펼 게재가 아니었다. 한편으론 박사주라는 사내의 행적이 어떤지를 눈여겨볼 심산이었다. 방으로 들어오자 티브이에선 설날 특집 프로가 끝나고 스폿뉴스를 담당한 송인하 아나운서의 멘트가 이어지고 있었다.

“일본 경제를 이끌어 가는 구로다(黑田) 회장의 한국 방문이 이뤄졌습니다. 연로한 나이인데다 지병으로 인해 휠체어 신세를 면치 못하는 구로다 회장은 우리 경제인 연합회의 회장단과의 회합을 극구 사양하고 일본 대사관 안에 마련한 임시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자신의 방한 목적을 ‘단지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라고 밝힌 구로다 회장의 행보가 몹시 궁금합니다. 7시 종합 뉴스 시간에 사계의 권위자를 모시고 구로다 회장의 방한에 따른 궁금증을 풀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일단 티브이를 끄고 박사주는 좌정했다. 김순원은 두어 걸음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신문사에 있으니 누구보다 세상 돌아가는 이칠 잘 알 것으로 봅니다. 지난 10. 26 이후 12. 12사태가 이어져 세상은 지금 폭풍의 눈 속에 갇혀 있는 형국이오. 누구든 앞서 가는 자가 있다면 가차 없이 총알받이가 되는 그런 세상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가능한 일등을 피하는 게 상책이오. 이리들의 눈 밖에 나는 것은 사냥감의 표적이 되니까.”

“?….”

“김기자의 신년 운이 좋지 않게 떨어진 것은 휴일이 끝나는 3일 날의 기사 때문이오.”

“예에?”

김순원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기사는 마감 시간에 임박해 넘겼기 때문에 알고 있는 사람은 한선주뿐이었다. 연말연시의 들뜬 기분이 팽배해 있다 보니 사회부 동료들은 누구 하나 그의 기사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기사 제목은 ｢오명계(五鳴鷄)는 다시 우는가?｣였다. 물론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잡동사니’라는 칼럼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군부 쪽의 심기가 좋을 리 없는 내용이었다.

난전(亂戰)의 수순을 읽어 가는 바둑의 고수처럼, 박사주는 사활의 급소를 정확히 찌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