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사가 나간 건 5개월 전으로 알고 있습니다. 취재부장이 이동박이란 위인인데 일종의 사건 브로커로 보면 무난합니다.  그 자는 요즘 군부 실세들과 모종의 사업을 벌인다는 소문이 도는데 머잖아 그 자의 돼먹지 않은 소문을 듣게 되겠지요.”

김순원은 마른침을 삼키고 나서 덧붙였다.

“그 기사가 실릴 무렵 일본 손님들이 한국에 왔어요. 무라야마 연구소를 대변한다는 하세가와라는 학자였습니다. 그 자가 흥미로운 발언을 했어요. 전라도엔 남악이 없다는 겁니다. 예전에 있었는데 지각변동으로 사라졌다는 거죠. 이 부분은 최교수님께서 설명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목이 타는지 큰 물 컵에 잔뜩 물을 따라 마시는 제자를 보며 최경조 교수는 미소를 머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견하다는 미더움의 표시였다. 그는 슬라이드 한 장을 바꾸었다.

“여러분들도 누누이 들으셨을 것입니다만, 한반도는 풍수상 아시아 대륙의 동북을 향해 기어 올라가는 거북이 형상이라고 말합니다. 이 점은 오랫동안 한반도를 짓눌렀던 일본인들이 잘 알겠지요. 그렇다면 자궁에 해당하는 곳이 전라도라는 사실도 그들은 알고 있을 겁니다. ｢사건과 추적｣이라는 주간지 인터뷰에 응한 하세가와는 무안의 승달산과 목포의 유달산 그리고 해남의 두륜산을 잇는 중심점을 남악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제도해 본 결과 남악은 목포 앞바다가 될 수도 있다는 엉뚱한 말을 풀어놓았어요.”

남악의 위치를 승달산과 유달산 · 두륜산을 삼각으로 연결하는 중심점으로 보는 게 풍수사들의 한결같은 견해였다. 그렇게 보면 하세가와의 인터뷰는 잘못이랄 수도 없었다. 당장 반론을 제기하려다 최경조는 그만뒀었다. 그것은 벽암(碧岩)의 전화를 받게 되면서였다. 당시의 전화 내용을 그는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전화를 건 벽암은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무라야마 연구소의 젊은 학자들이 지껄인 얘기들을 들으면서 어쩌면 이 방면에 최고 연구가인 최경조 교수께서 반론할까 걱정스러워 전화를 드렸습니다. 하세가와 팀들은 남악의 위치를 찾아낸 지 오래됐을 겁니다. 그리고 모종의 일들을 은밀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세가와를 전면에 내세워 한국의 지리학자나 풍수사들이 남악에 관해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는지를 떠보려고 수작 부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최교수께서는 저들의 행위를 모르는 척 눈감아 주시오.”

최경조 교수는 반론을 포기했다. 이후 얼풍수나 지리학과 학생들을 내세워 남악의 위치가 어떻다느니 회유하며 묻는 무리가 있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지금껏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병아리 기자 김순원이 지적하고 나서자 함구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학계에 발표하진 않았습니다만 논문으론 완성되어 있습니다.”

송학수가 점잖게 거들었다.

“남악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군요.”

“저는 오래 전부터 전라도를 여행할 때 남악의 존재에 대해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습니다. 술가(術家 ; 풍수사)들이 써 놓은 풍수서엔 남악의 위치를 잠시 전에 말한 대로 승달산과 유달산, 그리고 두륜산을 삼각으로 연결하는 중심점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음미해 보면 재밌는 현상이 눈에 띕니다. 무안의 승달산(僧達山)은 그 첫째 글자가 불교를 나타냅니다. 그렇게 볼 때 목포의 유달산(儒達山)은 유교를 뜻하겠지요. 불교와 유교를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고유 종교 가운데 하나가 빠진 게 도굡니다. 승달산과 유달산이 있으니 당연히 선달산(仙達山)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여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런 산은 없었습니다.”

문태일은 언젠가 벽암이 들려준 말을 떠올렸다. 그때도 남악에 대해 구구절절 얘기가 흘러 다니다가 승달산 · 유달산 다음에 두륜산을 자신있게 꼽았었다. 왜냐하면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두륜산의 서쪽 자락을 선은산(仙隱山)으로 표기한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던 것은 이유가 있었다. 유불선(儒佛仙)의 삼법회통(三法會通)을 이룬 산을 선은산으로 잡아 작도하면 남악을 바닷속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답답한 문제의 해답은 역시 최경조 교수가 풀었다.

“선은산이 아니면 어느 산인가? 나는 역사서를 다시 한번 훑어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지명을 찾아낸 거죠. 바로 영암군 미암면에 소재한 선황리(仙皇里)입니다. 이곳은 참으로 신령스런 곳이죠. 영암은 우리 나라 풍수의 시조 도선 국사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전 삼신산(三神山)에 대한 확신을 가진 거죠. 그래서 세 산을 삼각으로 연결하여 중심을 찾으니 바로 무안군 삼향면 남악리 마을이었습니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엔 오룡산(五龍山)이 있다. 다섯 용이 다투다가 되돌아오는 곳. 주산인 북악에 대해 남도의 주산인 남악. 그렇게 찾던 남악은 바로 그곳이었다.

송학수가 당치않다는 듯 헛기침을 뿌리며 퉁명스럽게 쏘아 부쳤다. 그의 눈매는 가늘게 찢어져 있었다.

“그것참 이상하지 않소. 그자들이 그렇게 해 가며 남악의 위치를 감춰야 할 이유가 뭣이오? 뜬소문처럼 그 지방을 사들여 한국 속에 일본을 건설하려는 것이오?”

“이유가 있었습니다.”

“글쎄 그 이유가 뭔가 말이오?”

“문제는 오룡산(이 지방에선 천마산이라고 함)이었습니다. 다섯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신령스런 산으로 알려진 것처럼 오행의 기운이 회돌이 치며 상접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보기에는 너무나 볼품없어요. 이 산에 거대한 건물이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건물 이름도 없고 출입도 허용되지 않은 묘한 곳이죠.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수양관이라고 인근 마을 사람들은 말합니다만 자세한 건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들은 바로 이곳을 거치고 돌아가는 것이 마지막 코습니다.”

송학수는 메마른 입술에 침질을 하고 나서 물었다.

“산과 건물의 소유주를 알 수 있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