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심점을 이루는 곳은 금산사 미륵전(彌勒殿)입니다. 이곳은 미륵신앙(彌勒信仰)을 잉태시킨 본령이죠.”

평소 연구가 있었던지 학술적인 면을 토대로 거침없이 분석해 나갔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미륵신앙이란 석가모니불이 그 제자 중 한사람인 미륵에게 장차 성불하여 제1인자가 될 것이라고 써 놓은 데서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핍박받는 백성들은 자신들을 구원해 줄 미륵님이 나타나기만을 학수고대하며 천날을 하루처럼 인내하며 기다려 왔습니다.”

미륵님이 나타나 자신들을 도탄에서 구원해 줄 절대자로 믿는 신앙이 팽배해진 본령이 금산사였다.

“미륵신앙을 살피면 우선 역사적인 배경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먼저 백제 쪽을 보겠습니다. 백제는 6세기 이전부터 미륵신앙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나당 연합군에게 나라가 망했어도 그들은 자신들이 세운 사찰을 찾아가 미륵님이 나타나 망한 나라를 되찾을 수 있도록 공을 드렸어요. 비록 백제를 점령했지만 신라는 그들의 정신까진 다스릴 수 없었죠. 특히 옛 백제의 정치 · 경제 · 문화 · 종교의 중심지였던 공주 · 부여 · 익산을 잇는 3대 거점 지역은 신앙적인 투쟁과 저항이 아주 치열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점령자였던 신라로서는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였겠지요.”

신라에 끌려와 혹독한 노예 생활을 하는 자들, 또는 핍박 받는 백제의 유민들, 불평 · 불만이 쌓일 대로 싸인 그들은 부여 · 익산 지역에서 하루를 걸어 집결할 수 있는 장소로 모악산 금산사를 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라 조정에서도 대책 마련이 시급했을 겁니다. 그래서 백제의 유민을 신앙적으로 볼모 잡을 정책을 펴려고 김제 만경 출신의 12살짜리 소년을 신라 조정이 파견한 숭제법사(崇濟法師)의 문하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이 소년의 이름이 진표(眞表)다. 불문에 들어온 지 11년 만에 지장보살로부터 정계(淨戒)를 받고 영산사로 옮겨와 부지런히 정진해 훗날 금산사를 보다 더 큰 사찰로 중건했다. 이것은 신라 조정이 펼친 종교 정책의 일환이다. 그렇다면 정책 승려가 된 진표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이 부분에 대해 김순원은 자신 있게 답변을 내놓았다.

“진표 율사는 백제군이 최후로 싸웠다는 부안 · 변산 · 불사의암(不思議庵)으로 가서 구도 생활을 하다 속리산으로 올라가 동북으로 개골산까지 나아가 발연사(鉢淵寺)를 세우게 됩니다. 만약 진표가 미륵신앙을 숭배하는 백제 유민들의 뜻에 따랐다면 신라 조정에선 그를 살려 두지 않았을 겁니다. 진표 율사는 백제 유민과 신라 조정의 유혈 사태를 잠재우는 협상의 테이블이 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그렇다고 백제 유민의 저항 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세력이 만만치 않게 자리 잡았지만 섣불리 군중 앞에 나서지를 못했다. 그런 점에서 견훤이 등장해 후백제를 세우자 백제 유민으로부터 열렬히 환영받은 것은 미륵신앙 때문이었다.

“이러한 미륵신앙은 천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조선왕조에서는 도참설 신앙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정여립(鄭汝立)이라는 인물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죠. 그가 대동계를 조직하여 중앙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는 죄명으로 효수 되고, 집터가 있는 제비산(帝妃山)은 1미터 높이의 구덩이를 파고 숯불로 지져 혈맥을 끊었습니다. 대역무도한 역적의 발현을 막으려는 의도였겠지요.”

금산사 가까이는 세월이 흐르면서 동학혁명의 진원지인 원평(院坪 ; 동학혁명의 근원지) 장터가 나타난다. 어디 그뿐인가. 증산교의 강일순이 미륵불을 자처하고 포교 활동에 박차를 가하자 말째 제자 차경석은 보천교를 세워 차천자(車天子)로 득세하다 명멸했다. 김순원은 결론을 내렸다.

“제가 입사 시험을 치를 때 논문이 ‘미륵신앙’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금산사 주변을 탐색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는 몰랐지만, 오늘날 일본 관광객들이 남도 지방으로 몰리고 또 남악이니 보물이니 하는 등의 엉뚱한 말들이 흘러 다니는 것은 ‘남악’과 ‘보물’이 숨겨진 곳을 숨기기 위한 술책으로 보여집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이미 남악을 찾아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묵묵히 듣고 있던 최경조 교수는 시선을 허공에 뿌린 채 말했다.

“얼마 전 ｢사건과 추적｣이라는 주간지에 ‘남악이 존재하는가?’라는 기사가 실린 걸 보았네. 거기에 따르면 남악의 실재에 대해 상당히 비관적인 입장을 취한 것 같은데 김기잔 어찌 생각하나?”

“저도 그 기사를 보았습니다만 엉터리라고 봅니다. 직접 취재를 했다고 여기 저기 산이며 마을을 곁들여 실렸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빼먹었더군요.”

“근본적인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