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서랍 안에서 꺼내 온 것은 문태일이 그린 산도(山圖)와 비슷한 지형도였다. 송학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것은 남악의 위치도잖습니까?”

“왜 아니랍니까.”

“어떻게 손에 넣었습니까?”

“이제껏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지형도는 모양만 오래돼 보일 뿐, 근자에 만들었어요. 한국을 여행하는 일본인 관광객들은 저마다 한 장 씩 지니고 있거든요.”

송학수를 스쳐보고 나서 문태일이 반문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일본인 관광객들은 대부분 삼합회(三合會) 소속입니다.”

“삼합회?”

“우리나라 추명학회(推命學會)처럼 일본 내 점쟁이들의 사조직이죠.”

사조직이라는 말이 왠지 거부감을 일으키는지 송학수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들도 우리처럼 [주역]이며 [상리학] · [풍수지리학] 등을 배운단 말입니까?”

“배우는 쪽도 있겠지요. 하지만 삼합회 회원들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불안한 장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 일단 삼합회 회원으로 가입합니다. 회원들은 이때부터 삼합회 회주(會主)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 별도의 요금을 지불하지 않고도 장래에 대한 설계나 금융 문제 또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대처 방안에 대해 무료 상담의 혜택을 받습니다. 한국의 단체 관광 등의 패키지 상품을 개발한 것 등이 모두 미래에 대한 일입니다.”

문태일이 짧게 물었다.

“이유가 있을 것 아니오?”

“외면적인 것은 남악에 묻힌 보물이죠.”

“남악에 묻힌 보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뜬구름 잡는 것 같지 않소. 남악에 보물이 묻혀 있다면 그렇게 요란스럽게 관광단을 보낼 이유가 없잖습니까. 최교수께선 어찌 생각하십니까? 뭔가 다른 목적이 있다는 생각이 안듭니까?”

최경조는 한 걸음 물러섰다. 그 자신 남악과 보물에 대한 답변엔 신중을 기했다.

“그동안 풍수학의 대가인 많은 분을 만나 보았습니다. 북악이 있으니 남도엔 반드시 남악이 있을 거라는 공통 생각이 있습니다만, 그 지점이 어디인지는 서로의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일본 쪽에서 학계에 흘린 정보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습니다. 자, 앞에 있는 오에이취피(OHP) 화면을 주시해 주십시오.”

실내가 어두워지며 영사막에 지형도가 수놓아졌다.

“잠시 전에 보았던 지형입니다. 한국에 들어온 삼합회 소속의 관광객들이 지니고 있던 것이죠. 남악으로 표시된 부분은 어이없게 선조 때 역모로 몰린 정여립이라는 선비의 생가 텁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정여립은 선조의 묏자리가 ‘오공의 혈’이기 때문에 자신이나 후손 중에 나라를 세운다는 인물이 나온다는 참의를 믿고 있었어요. 그런 이유로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서에는 [정감록] 신앙을 믿는 정여립의 엉뚱한 야망이 묻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 때문에 목숨을 잃었지만.”

이렇듯 역모로 몰린 정여립의 생가를 남악으로 표기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 점에 대한 궁금증을 지금껏 밝혀 내지 못했다고 최경조는 안타까워했다. 김순원이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교수님, 제 생각을 말씀 드릴까요?”

“그러지 김기자.”

“일반적으로 보물지도란 한 장 아니면 두 장입니다. 그만큼 희귀성이 전제돼야 합니다. 그런데 일본 관광객들은 한결같이 보물 지도를 한 장씩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만을 놓고 본다면 집단으로 보물을 찾아 한국에 온 것으로 봐야겠지요. 그렇지만 누구 하나 금산사를 정점으로 정여립의 생가를 돌아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한국 방문이 지도에 그려진 대로 정여립의 생가가 목적지는 아니란 얘기죠.”

문태일이 동의했다.

“내 생각이 그거요. 언젠가 벽암이 김제인가 어디에서 일본인 처녀를 만났다 했는데, 그건 특별한 경우였거든. 하지만 그 처녀도 남악의 위치도라는 걸 가지고 있었다니 희한한 일이잖소.”

김순원은 오에이취피의 화면을 노려보며 덧붙였다.

“일본인 관광객들, 이들 삼합회(三合會) 회원들의 입국 목적은 정여립의 생가를 방문하는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해졌습니다. 그들은 전라도 지역을 돌아보지만, 한 번도 정여립의 생가 근처에 가지 않았다는 게 여러 경로로 증명됐어요. 그런데도 지도엔 정여립의 생가를 남악으로 표기했을까요? 그들은 목적의식이 분명한데 전연 아닌 것처럼 가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사실이나 문제 또는 특별한 장소를 숨기려는 트릭이 분명합니다.”

김순원은 얇은 비닐에 전후좌우로 쓱쓱 어떤 곳의 지형을 그려냈다. 그런 다음 오에이취 기기에 올려놓았다. 그려진 장소는 세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