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음, 52년생이면 임진년(壬辰年)이고 6월이면 어디 보자 5월이 윤달이니 정미(丁未)로세. 가만 보자, 태어난 날이 9일이니 일진은 정축(丁丑)이 될 터이고 태어난 시는 사시(巳時)렷다.”

따라락거리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이어졌다. 노인은 동서남북의 방위대로 찌르듯 귀점구를 흔들다가 이내 좌판 위에 뒤집었다. 가늘게 찢어진 입으로 오리 동전 세 개가 삐죽이 빠져나왔다. 흉이었다. 노인의 목소리가 무겁게 떨어졌다.

“역시 좋질 않아.”

김순원의 낯빛에 불안한 그림자가 수놓아졌다.

“직장을 그만 두지 않으면 안 되나요?”

“그렇다면 이렇게 하시오. 스물 네 시간 안에 만나는 사람 가운데 젊은이를 누군가에게 소개하는 이가 있을 게야. 그를 만난다면 능히 물을 얻을 수 있어. 그 사람이 누군지는 생각할 필요 없어. 찾는다고 나타나는 사람이 아니닌까.”

“오늘 내일은 신년 휴일입니다. 이 기간에 업무적으로 만날 사람은 없는데요.”

“그럼 할 수 없고.”

“?….”

“사람의 목숨은 가늘고 약해 보이나 명주실보다 더 질겨. 아하하하하! 어디, 슬슬 일어나 볼까!”

좌판 위의 물건을 낡은 가방에 쓸어 담은 노인은 급히 건너편으로 걸어갔다. 그쪽에서 눈길을 거두며 한선주(韓瑄珠)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저 노인네 엉터리 아네요, 순원씨?”

“그런 소리 마. 우리 신문사회부 기자들은 한 번씩 다 봤어. 모두들 귀신이 따로 없다고 감탄들이야.”

“점이라는 건 확률이라던데.”

“확률? 그렇지. 일정한 공식에 따라 풀어 간다면 확률이 되겠지. 그러나 저 노인은 달라. 언제나 이곳에 좌정하여 일본대사관을 노려보고 있는 모습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상이 배어 있거든. 언젠가 저 노인의 모습을 촬영해 신문에 내려다가 곤욕을 치렀다니까.”

“왜요?”

“자신의 모습이 신문에 나가면 30년 세월이 허사라고 했어. 그래서 물었지. 도대체 언제부터 이 자리에 앉아 계셨느냐고.”

“그러니까 뭐래요?”

“그때가 언제인지는 기억 밖의 일이지만, 앉아 있을 날이 많지 않다고 했어. 뭐라드라….”

한선주가 잡아끌었다.

“우리 골치 아픈 얘기 그만해요. 참, 저녁에 최교수님 댁에 가기로 했잖아요.”

“최교수님?”

그제야 김순원은 자신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지난 해 전반기에는 갓 제대한 후 취직시험 준비 때문에 정신없이 보냈었다. 어렵사리 신문사에 들어오자 어떻게 알았는지 지리학과 동문 선후배에게서 연락이 밀어닥쳤다. 신년 첫날 최경조 교수님댁에서 부킹하자는 약속이었다. 최교수와는 많은 시간을 탐사 여행으로 보낸 대학교 은사였다.

“몇 시라 했어?”

“저녁 6시오. 그때 가면 술 마시느라 할 얘기도 못하잖아요. 순원씨 지금 가요. 일찍 갔다 오는 게 좋잖아요.”

“그럴까.”

길이 뻥 뚫린 신년 벽두다 보니 신당동 최경조 교수 집까지는 20분이면 넉넉하게 갈 수 있었다.

종교 문제 연구소에 새로 취임한 문태일 소장을 비롯해 황극경세원의 송학수는 오에이취피(OHP) 화면을 노려보며 심각한 낯으로 최교수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두 분께서 그려 오신 산도(山圖)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충 이런 정돕니다.”

문태일이 화면을 노려보며 아쉬워했다.

“벽암(碧岩)이 그린 것과 차이가 없어. 때마침 손창하 풍수가 위급하다는 연락을 받고 김제에 내려가는 바람에 함께 못왔소.”

최경조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벽암 선생이 만난 일본인 처녀가 남악(南岳)을 찾아 한국에 왔다는 것인데…, 왜 정여립의 집터를 남악으로 보느냐는 겁니다.”

그 지도를 해방 전에 만들었다고 가정할 때 몇가지 의문점이 남았다. 즉, 조선총독부에서 남악을 인정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최경조는 그 부분을 지적했다.

“일본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있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전라도 지방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이들의 여행 목적은 머지않아 일본이 바닷속으로 침몰할 때를 대비해, 한국에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뜻이 다분하다는 분석입니다. 그래서 남악을 찾는다는 것인데, 서울에 버금가는 명소가 된다는 믿음이라면 설득력이 써억 좋지 않거든요.”

최경조는 서랍 쪽으로 가다 비로소 김순원 일행을 발견했다. 반색하듯 한 손을 들어 아는 체 하며 소파를 가리켰다. 둘은 엉거주춤 자리를 잡으며 낯선 손님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최경조가 설명했다.

“제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