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너희들은 나의 말을 잘 따라 주어 그 점 고맙게 생각한다. 나 역시 너희와 함께 지낸 걸 큰 즐거움으로 여기고 있다.

지금 너희 머리에 꽂은 나비 모양의 금보요(金步搖)엔 치사량에 이르는 독극물이 들어 있다. 하나는 매독 균이고 다른 하난 AIDS다. 이것들이 혈관에 주사되었을 때로부터 계산한다면 최소한 1.5초 안엔 상대에게 병원균을 옮기게 된다.

그렇게 됐을 때 여러분은 미우라 클럽의 공신이 되는 건 물론 자랑스러운 일본인으로서 훈장을 상신받게 될 것이다. 여러분의 결단은 그 옛날 태평양 전쟁 시에 아군기를 몰고 적함에 돌진했던 가미가제(神風)의 역사를 새롭게 열어갈 것이다.”

다음날 두 처녀는 목적지를 향해 떠나갔다. 정공칠의 상대는 고작 열여섯인 미야마(美山)였다.

미우라가 이 처녀를 발견한 것은 신주꾸에 있는 어느 대중음식점이었다. 꽁꽁 언 손을 호호 불며 손님맞이를 하며 뛰어다니는 그녀를 보자 한눈에 명기(名器)라고 눈도장을 찍었다. 그는 즉시 거금을 주고 접수했다.

이날 밤 미우라는 그녀의 설익은 몸을 정성으로 다독거렸다. 그것은 영글기가 덜한 후지 사과 같았다. 뻑뻑한 듯싶으면서도 사근사근하고 물이 많은 것 같으면서도 알맞게 감칠맛을 내는 후지 사과. 미야마는 그런 아이였다. 이제껏 잠자리 기술을 가르쳐온 오하라 도시꼬(小原敏子)는 눈물을 글썽이며 건투를 빌었다.

“아가, 잘 다녀오너라.”

그녀는 메마른 어조로 말하며 뒷걸음으로 물러나왔다. 미야마가 강변에 있는 별장으로 안내되자 그녀를 본 정공칠의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졌다.

“내가 한남동을 떠나지 않은 건 이 집의 운치가 그만하기 때문이었어. 시설은 내세울 것 없지만 나를 흡족하게 해주는 것들이 많다보니 뭉그적거린 세월이 수 삼년인데 이렇듯 너 같은 아이를 만날 수 있고···.”

정공칠은 그녀를 일어나게 했다. 건강해 보이는 검은 피부.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를 보는 느낌이다. 평소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탓인지 어깨에서 등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흰 선이 없다.

“허허허허.”

흡족해하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어찌 너 같은 보배를 내게 보냈을꼬. 미우라의 심기가 여간 고약했을 터인데.”

정공칠은 미우라만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쏟아졌다. 목전에 큰 사업을 펼친다지만 길들인 야생마를 선물한다는 게 그리 간단한 게 아니었다. 평소 눈독을 들인 아이고 보니 그저 한손에 쥐고 호호 불어주고 싶었다. 쭉 뻗은 다리와 미끈한 몸, 어디를 봐도 군살 하나 없다. 그런데도 유방만큼은 풍부하게 솟아올라 마음을 더없이 흡족하게 했다.

“으음.”

무릎의 힘이 빠진 듯 미야마가 약간 흔들렸다. 그녀는 상대의 어깨를 잡으며 간신히 지탱했다. 정공칠은 한동안 혀끝으로 찔러보다 침대로 안고 갔다.

“몸에 불이 났어요. 꺼지기 전엔 놓아주지 않겠어요.”

그녀가 야생마처럼 날뛰며 상체를 멋대로 흔들자 살덩이는 맞물린 지점이 부대끼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서로의 몸이 극점을 향해 치달아갔을 때, 미야마는 금보요 안에 숨겨둔 약물을 꺼내 혈관 깊숙이 꽂았다. 정공칠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오, 어서!”

미야마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 흘렀다. 아직은 투여된 약이 몸 안에 스며들 시간이다. 일단은 후천성 면역결핍증의 증후 균만을 투약한 상태다보니 얼마든지 몸놀림이 자유스러웠다. 어차피 이 세상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야 한다면, 서른다섯의 정공칠에게 육보시(肉布施)되는 쪽으로 생각을 굳혔다. 그녀는 밀실에서 배워온 방중비술을 펼치며 금보요의 뚜껑을 열었다. 두 번째 독물을 혈관에 꽂았다.

다음 날 석간신문엔 장민호 회장의 비서실장 정공칠의 급서를 다루었다. 평소의 지병인 심장질환으로 마비가 왔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박인철 부총재에 관한 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미우라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실패한 거야?”

이시가와에게 경위를 조사시켰으면서도 불안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일단 기다렸으나 저녁 늦게 돌아온 이시가와는 아무런 정보를 가져 오지 못했다.

“정공칠 쪽은 성공한 것 같습니다만, 박인철 쪽은 어떤 움직임이 없습니다. 주변에 사람을 풀었으니 소식이 올 겁니다.”

“그래,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지.”

미우라는 불편한 기색으로 달갑잖은 신음을 끄응 흘렸다. 여전히 그의 뇌리엔 형체가 분명하지 않은 오노다(小野田)의 모습이 흐물흐물 떠다녔다.

그녀가 도자기를 들고 약속 장소로 찾아간 곳은 사람들의 출입이 뜸한 사직공원 옆 황극경세원이었다. 처음부터 그곳에서 만난다고 했다면 당연히 미우라는 말렸을 것이다. 그러나 박인철 부총재와 통화하고 난 직후고 보니 설마 송학수가 있는 곳으로 갈지는 꿈에도 생각지를 못했다.

“삶이란 구름 한 점 일어나는 것이고, 죽음이란 그 구름이 스러지는 것. 어떤 이는 덧없는 삶을 살다 가고 어떤 이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제 몸을 초개처럼 던진다. 오늘의 이 결단은 구국(救國)의 씨앗임을 잊어선 안된다.”

미우라의 격려를 마음 판에 새기며 오노다는 씩씩하게 황극경세원을 찾아갔다. 기암괴석으로 치장된 정원을 지나 마루에 올라서자 송학수는 바구니에 든 점자(占字)를 앞에다 쫙 흩트려 놓았다. 화들짝 놀란 그녀에게 명령하듯 송학수의 말이 떨어졌다.

“하나씩 밟고 오시오!”

“예에?”

“밟고 와요.”

그녀는 망설였다. 마음에 드는 글자가 있어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앞에 놓인 글자를 밟는 게 왠지 두려웠다. 그녀는 한손에 든 도자기를 앞쪽으로 추스르며 걸음을 옮겨 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