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마키리(かまきり) 결사대

아따미(熱海)라는 일식집 밀실에서 비상대책회의가 벌어졌다. 유신 철폐를 외치는 시민들의 연호가 요란스럽게 이어지는 티브이 화면에서 참석자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때마침 하기식에 맞춰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미우라(三浦)는 티브이를 끄고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는 10월 16일에 발발한 부마(釜馬)사태를 기사회생의 절호점으로 여긴 듯 눈매가 서늘했다. 이번 소요사태를 빌미삼아 신도교(神道敎)에서 대규모 ‘심령부흥회’를 열게 되면 교세 확장에 박차를 가하게 될 계기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횟감이 놓인 상 앞에는 지역을 총괄하는 팔도의 총령(總領)이 앉아있었다. 그들은 두툼한 보고서를 앞에 놓고 눈 한 번 까딱하지 않은 채 미우라의 하명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일흔셋의 나이라 믿지 않을 만큼 그의 목소리엔 기백이 넘쳤다.

“한국은 끝없는 소요 속에 휘말리고 있다. 이건 하루이틀에 그칠 소란이 아니다. 유신 철폐를 연호하는 학생들이 없어지지 않는 한 미우라 클럽의 대한(對韓) 사업엔 결코 차질이 생길 수 없다.”

예전에는 이 땅의 지맥을 잘라 영웅호걸의 탄생을 막으려 했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어느 누가 나타나더라도 조금씩, 가랑비에 옷이 젖듯 잠식해 가며 일본혼(日本魂)을 심으면 그뿐이라 생각했다. 잘라 없애는 것보다 ‘키워서 잡아먹는다’는 계책이었다.

“지난 날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의 종교를 인정해주는 척 우민정책을 쓴 것은 삼일운동이란 복병 때문이었다. 해방 이후 한국엔 많은 종교 단체가 난립했으나 지금껏 명맥을 유지해온 교파는 한결같이 재정난으로 허덕이는 실정이다. 이때야말로 그들을 겨냥한 문화정책을 과감히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총령들 앞에 놓인 프린트 물에는 종교지도자들의 이름이 씌어 있었다. 1930년대 전후에 생겨난 것으로 조선총독부의 서슬이 시퍼랬던 시기였다.

1905년에 창립한 천도교(天道敎)에서부터,

1920년에 남정(南正)이 창립한 청림교(靑林敎),

1922년에 윤경중(尹敬重)이 세운 대화교(大華敎),

1923년 차병간(車秉幹)이 세운 백백교(白白敎),

1924년에 우종일(禹宗一)이 세운 요명교(夭命敎) 등등, 뒤를 이어 흠치교(吽哆敎)와 태을교(太乙敎) · 보천교(普天敎)의 창립연대 등도 씌어 있었다.

이들 종교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은 특별한 이유였다. 정교(正敎)와 사교(邪敎)의 장단점을 추려내 분리 경영하는 걸 최선이라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특색 하나가 신도교의 직제로, 이것은 보천교의 직제뿐 아니라 건물 구조 양식까지 그대로 복제한 것이다.

보천교의 직제인 60방주를 비롯해 호법(護法) · 교령(敎領) · 임(壬) 등등이 그것으로, 중앙부처를 전(田) 자의 중앙으로 삼아 건물을 지은 정화당(井華堂)이나 영생문(永生門) · 대화문(大和門) 등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러한 직제나 건물 양식은 총령들이 관할하는 각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전라도 지역을 관장한 다께다(竹田)가 의견을 내놓았다.

“사람들은 신토불이라고 합니다. 제가 태어난 곳에서 땅을 사고 집 짓고 생활하는 것을 최상의 낙으로 보니까요. 그래서 한국 속담에 ‘땅땅거리며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망치로 내려치듯 자신을 과신하는 의성어이기도 하지만, 땅이라는 한국인 특유의 관념 때문입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전라도 지역을 근간으로 교세 확장에 나섰습니다. 한이 깊은 실정자들을 위로하고 그들과 함께 아픔을 같이 하면서 교세는 갈수록 확장 일로에 있습니다.”

미우라가 가만히 손을 뻗었다. 그것은 상대의 말을 차단하려는 동작이었다.

“각 지역 교도들이 자연스럽게 중앙 본부에 합류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교명고천제(敎名告天祭)’를 지낸 다음이라야 하네. 무엇이건 서둘러 결정하는 건 오히려 실기(失機)를 범할 수 있으니까. 여타 종교지도자들과 끊임없는 교류를 가지면서 헌금과 구제에 앞장서야 뒤탈이 없어.”

성과급을 인정한 미우라는 지원금 천만 엔을 책정해 주었다. 다께다가 황송해하는 몸짓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문득 이시가와(石川)가 한국 부동산 컨설팅의 장민호 회장 문제를 안건으로 내놓았다.

“여러 총령께서도 알겠지만 우리와 우호관계를 맺어 온 장민호 회장의 비서실장 정공칠(丁功七)이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첫째는 삼남에 있는 땅을 현시가의 3백 배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흥정해 왔다는 점입니다. 2개월 전 주식회사 미로의 문치수가 그 자에게 급전을 빌릴 때 삼남에 있는 땅을 담보로 넣은 상태였습니다. 모든 재산이 이경실에게 넘어갔지만 대수롭게 생각지 않는 분위기예요. 물론 이경실이가 나타나면 자세한 이윤 금명간 밝혀지겠지요.”

미우라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툭 던졌다.

“그 자가 뭘 믿고 간 큰 짓을 하는가. 장회장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가?”

“아직 모르는 것 같습니다. 땅 문제만큼은 단독행동으로 보입니다. 그 자는 언론계 출신으로···, 중앙지가 아닌 3류 잡지 출신입니다. 장회장의 눈에 든 것은 타고난 사기성 때문으로 보입니다. 나이 서른다섯에 비서실장이라면 머리 회전이 보통은 아니라고 봐야거든요. 이 자의 잔재간은 능구렁이 장회장이 인정해주고 있으니까요.”

“땅 문제뿐인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태호(胎壺)에 관한 건입니다. 이 도자기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태실(胎室)에 봉안된 것으로 서삼릉(西三陵)에 집단적으로 태실을 조성할 때 발굴했던···, 거의 국보급입니다. 이 도자기의 밀반출을 정실장은 책임져 달라는 겁니다. 이 문제는 민감한 사안이므로 여차 실수하는 날엔 외교 마찰을 불러올 수 있어 아직껏 보류해 왔습니다.”

서울 지역의 총령 김시우(金豺雨)는 일이 확대되는 것이 마뜩찮은 모양이었다. 눈치 빠른 미우라가 그냥 지나갈 리 없다. 그는 재일교포 2세인 김시우의 일본 이름을 불렀다. 본명이 쓰노다 기꾸오(角田喜久雄)였다. 8대 총령 중 가장 연하인 스물여덟이었지만 폭발적인 잠재력이 있었다.

“쓰노다, 바람을 쓸어 담을 계책이 있는가?”

“도자기 밀반출은 크게 문제될 게 없다고 봅니다. 우선은 한국에 있는 도자기 회사와 수입 계약을 맺고 그중 일부만 바꿔치기 하면 됩니다.”

“바꿔치길 어떻게?”

“수입할 물목을 바꾸는 겁니다. 도자기는 변용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싸구려로 탈바꿈 시킬 수 있습니다. 유액을 덧칠하는 것만으로 탈바꿈이 가능합니다. 태호(胎壺)를 원상 그대로 빼내갈 수 있으니 별문제는 아닙니다.”

“흐음, 그런 방법이 있었구만. 아직은 여주 쪽에 보관이 완벽하니 지금 건드릴 이유가 없겠어. 아카타 컬렉션에 내놓은 월산대군의 태호에 대해 말들이 많아, 태호를 노출시키는 건 문제가 있어. 우선은 그 자를 제거하는 문제에 있어 우리 쪽에서 나선다면 여론의 화살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인데…. 남자든 여자든 누가 나선대도 일본인이란 사실이 드러나면 문제될 것 아닌가.”

“그건 문제될 게 없다고 봅니다.”

“어째서 그런가, 쓰노다!”

“한국에 공이오구(0259) 팀들이 들어올 때 모든 검사를 통과했습니다. 지금은 10개월이 지났습니다. 만약 몸에 이상이 생겼다면 그것은 한국에 온 이후의 문젭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공이오구 팀을 움직이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이곳에 계신 총령들 의견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나머지 일곱 명의 총령은 모두 가하다는 표시(Ｏ)였다. 지금이라도 공이오구(0259)를 이용하는 게 타당하다고 보았다.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전국에 흩어진 점쟁이들의 교화 및 포섭이었다. 5가작통제니 뭐니 떠들어대다 총령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기로 하고 폐회를 선언했다.

이날 저녁, 아따미 음식점 별채에 마련된 밀실엔 두 처녀가 중년 여인 앞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었다. 모두가 화복(和服)으로 갈아입은 산뜻한 차림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