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의 역사학자였던 신지(神智)가 어떻게 우주자연의 변화를 다룬 그런 책을 쓸 수 있는가 아연했었다. 특히 그의 글에, ‘체일용삼(體一用三)이요 삼신일체(三神一體)요 회삼귀일(會三歸一)'이란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몸은 하나인데 활동이 셋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 부분을 생각하며 탁원제는 ‘영(靈)'이란 글자를 떠올렸다.

<설문해자>에 의하면 영(靈)은 윗부분이 비 우(雨)와 입 구(口)가 셋이다. 허신은 이 글자를 ‘맑고 차갑다'는 것으로 풀이했다. 그리고 가장 아래 신의 계시를 뜻하는 무당(巫)을 붙이고 ‘신령 령'이라 한 것이다. 당시 탁원제는 이상한 회의에 사로잡혔다. 어떻게 비 우(雨)와 세 개의 입 구(口)를 차갑다고 해석할 수 있는가였다. 그는 영 자의 뜻을 성경에서 찾아낸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을 운행하시니라(창:1-2)>

창세기 1장 2절의 내용이 ‘신령 령(靈)'자이다. 물(水)을 뜻하는 비 우(雨) 자에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입 구(口)자 세 개,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示=巫)다. 중국어 성경의 ‘상제적영 운행재수면상(上帝的靈 運行在水面上)'이란 것이 ‘신령 령'의 기원과 일치했다.
그렇게 볼 때 하나님을 가리키는 글자에 대적하는 글자가 ‘물벌레 고(蠱)'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성부 · 성자 · 성령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신성함에, 파괴와 거짓과 분노를 상징하는 게 루시퍼를 가리키는 ‘물벌레 고'란 생각을 해 본 것이다.

평소 탁원제는 우리가 고대인들의 무덤이라고 믿는 ‘고인돌'을 하나님께 제사 지내는 제단으로 생각했었다. 그것을 한문으로 나타내면 시(示)라는 관점이었다. 제사를 지내면 하나님이 나타난다는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기미꼬가 불쑥 입을 열었다.

“나는 유끼꼬가 왜 이런 사진들을 기보 용지로 쌌을까를 생각했거든요. 여섯 장의 사진은 산을 비롯하여 어떤 묘비나 특정 장소를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을 왜 굳이 기보 용지로 쌌을까요?”

“글쎄요. 제 생각엔 시게루(茂) 기자와 어떤 묵계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도 그 점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기미꼬 씨는 기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그녀는 곧장 책장 아래쪽에 놓인 바둑판을 가져와 유끼꼬가 남긴 도형을 펼쳐놓았다. 손놀림이 익숙한 것으로 보아 그녀 역시 상당한 실력자임을 느낄 수 있었다.

<문제도>를 보면 백 여섯 점이 흑에게 잡혀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바깥쪽 석 점과 연결된 수단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 형태다. 당연히 백 선수로 생각할 수밖에 없어 기미꼬는 순식간에 모양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