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방진 숫자가 쓰인 종이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탁원제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우리 역사의 옛 기록엔 농사짓는 땅이나 거주할 곳을 정할 때엔 정전법(井田法)이란 게 있었거든요. 어떤 지역을 아홉 개로 나누고 각자 한 덩어리씩의 소득을 갖되 그 중 하나만은 세금으로 바쳤어요.

그런가하면 우리나라도 팔도(八道)의 지명을 만들었는데 그 중앙에 해당하는 ‘5’의 숫자가 전라도를 나타낸다고 어떤 분이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시게루(茂) 기자에게 전하는 내용 중 전라도가 ‘5’의 숫자에 해당된다고 유끼꼬 씨가 기록하고 있는 게 특이하잖아요.”

기미꼬가 한참 만에 의혹을 제기한 것은 이러한 방진을 왜 유끼꼬는 시게루(茂) 기자에게 전하라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의문이었다. 그 점에 대해 탁원제의 설명은 좀 더 먼 거리에서부터 더듬었다.

“모든 숫자엔 그 나름의 비밀이 있기 마련이죠. 수의 이치를 논하는 게 수리학(數理學)인 반면, 숫자 하나하나에 숨어 있는 비밀이 수비학(數秘學)이죠. 조르쥬 이프라가 쓴 <신비로운 수의 역사>에 의하면 숫자가 탄생하고 그 이후에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또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됐는지를 일목요원하게 기술하고 있음을 볼 수 있어요.”

우리가 쓰고 있는 숫자 가운데 ‘1’과 ‘2’를 최초로 인식된 숫자로 적고 있는 이유에 대해 조르쥬 이프라의 논점을 탁원제는 이렇게 설명했다.

“1이라는 숫자는 자기 자신이라고 했어요. 삶과 죽음 앞에 직면해 있는 자기 자신만의 고독, 그것은 남근(南根)이며 서 있는 남자의 상징이라는 얘깁니다. 그런가하면 2는 남자와 여자의 2중성이라 했으니 인간신체의 명백한 대칭임을 알 수 있죠.”

인간이 최초로 셈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계산기 같은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몸에 달린 열 개의 손가락이었다. 중국의 수리학자들은 한손으로 10만까지 두 손으로 1백 억까지 계산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다. 그런가하면 조약돌이나 산가지 등의 막대기를 이용하는 방법도 사용해왔다.

“찰스디킨스의 <행정개혁>이란 책에는 계산에 사용된 나무 막대기가 자취를 감춘 것은 1826년 경이라고 적고 있어요.”

그렇다면 반드시 손가락만으로 ‘수’를 나타냈는가. 그건 아니다. 뉴기니아 파프스 족은 오른쪽 눈을 10, 왼쪽 눈은 13, 생식기 부위는 27, 왼쪽 새끼발가락은 41이라는 숫자로 상징시켰다. 왼쪽 눈을 다쳤을 때엔 13이라 표기했는데 왜 그랬는지의 이유에 대해선 밝히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문명이 발달한 로마 시대에는 어떨까? 그때엔 I은 1, V는 5, X는 10, L은 50, C는 100, D는 500, M은 1,000을 나타냈다. 이렇듯 복잡한 기호로 1,234를 나타내려면 MCCⅢⅩⅣ가 된다. 이렇듯 복잡하게 표기된 시대가 사라지게 된 것은 ‘위치의 원리’를 알아내고 0이라는 숫자를 쓰게 되면서였다.

위치의 원리는 13과 1,234에서처럼 1은 위치에 따라 10으로도 쓰이고 1,000으로도 쓰이는 걸 말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간단한 것 같지만 원리를 구성하기까지는 수천 년이 걸린 셈이다.

이러한 수의 원리는 기원전 2세기 초 메소포타미아 학자들이 발견하였는데, 당시의 기수법은 10진법이 아니라 60진법이었다. 6세기 초에 0이라는 숫자를 발견하였으며 이러한 숫자를 유럽으로 옮긴 것은 아라비아 인이었다. 이들은 한때 문자에 수의 값을 정하고 그 수의 값으로 문장을 해석하기도 했다.  이러한 착상은 나중에 번호학이라는 기이한 학문으로 발전하였는데 그것이 수비학(數秘學)이다.

이 부분에 대해 탁원제는 설명했다.

“수비학에 대해 예를 들면 그렇습니다. 아그리피나가 그녀의 아들 네로 황제에게 살해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수에토니우스라는 역사가는 ‘네로라는 이름의 수 값’과 ‘그가 친어머니를 살해했다는 수 값’이 모두 ‘1005’라고 주장했어요. 다시 말해 네로가 그의 어머니를 살해한 죄는 이미 그들의 이름 속에 있다는 얘깁니다.”

이러한 문자의 수 값은 인류의 삶을 변질시켜 왔다고 주장한다. 즉, 이탈리아의 호텔에는 17호실이라든가 17층이 없다. 17을 로마 숫자로 나타내면 ⅩⅦ이다. 다시 수 값이 동일하게 라틴어 표현으로 글자를 바꾸면 ⅥⅪ이 된다. 이것을 문장 표현으로 풀어내면 그 뜻은 ‘나는 다 살았다’ ‘나는 죽는다’는 의미다.

성경에 나오는 말세의 짐승의 표 ‘666’은 케사르 네로를 비롯하여 디오클레스 아우구스티누스, ‘라틴 사람’의 번호이면서 마르틴 루터의 수 값이다.

그런가하면 불교에는 108번뇌가 있다. 그래서 염주알도 108개다. 이러한 108은 근대 이전의 음력에서는 12달, 24절기, 75호(5일 간격, 음력에서 1년은 360일)를 더한 숫자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갖는 모든 고통과 번뇌의 숫자다.

한국인들의 옛 조상들은 여자를 그 외모나 성격으로 나누어 보는 방법을 택했는데 그것이 108여상(百八女相)이다. 흥미로운 것은 폭군 연산군이 전국 각지에 채홍사를 보내 여자를 데려오게 하였을 때 그 기준이 되는 것은 백팔여상이었다.

우리민족은 ‘3’과 ‘7’을 좋아했으며 금기로 여기는 것은 ‘4’였다. 이것은 ‘죽을 사(死)’와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빌딩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4층’이란 글자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3’과 ‘7’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아니 각자가 태어날 때 지니게 되는 생명의 숫자엔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 것일까. 이러한 비밀을 캐기 위해 발달한 게 점법이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게 마방진을 수비학에 응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