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원제가 넌지시 물었다.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건 사적인 얘깁니다만, 혹시 아끼꼬라는 처녀를 아십니까.”

“아끼꼬?”

“<한국의 무속학>에 관심이 많은 일본 여성이죠. 대단한 석학이었는데 갑작스런 죽음을 당했거든요.”

“아끼꼬라···. 글쎄요.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제가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외부인과 교제를 해온 폭이 좁아서···.”

“그렇겠군요. 그 아가씨가 갑자기 목숨을 잃었는데 국과수(國科搜)에선 사인을 ‘쇼크사’로 보거든요. 일종의 심장마비 말입니다. 젊고 건강한 여성이 심장마비로 횡사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그래서 신문에 말들이 많습니다.”

“혹시 동문께선···. 제가 쓴 <고(蠱)>와 관련 있다 보십니까? 그래서 찾아온 겁니까?”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런 질문을 던진 건 아끼꼬란 아가씨의 전화기에 이쪽 전화번호가 메모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인가 싶어 물은 겁니다. 하긴 그렇죠. 다이얼을 돌리다보면 엉뚱한 곳이 나오는 게 비일비재하죠. 잘못 걸린 전화겠죠. 어쨌든 감사합니다, 교수님.”

두 사람이 웃는 얼굴로 인사하며 물러나왔으나 윤일경은 처음과는 달리 머쓱한 낯으로 탁원제를 배웅하며 오른손을 흔들었다. 그들이 차에 올랐을 때 이달호로부터 호출을 알리는 삐삐가 울었다. 아예 <연예정보신문>이 있는 충무로에 도착해 전화를 걸자 그는 근처 술집에서 만나자며 통화를 끊었다. 일행들이 뭉치자 탁원제의 얘길 한동안 귀담아 듣더니 고개를 저었다.

“윤교수 그 친구, 수박 겉껍질만 보여줬구만. 그런 말은 일반상식이지. 문제는 <고(蠱)>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이 안돼. 그 친구는 막연히 고대사회의 구마 의식이나 종교의식 수준에서 마침표를 찍지만 내 생각은 달라. <고>는 일종의 흑주술 같은 거니까!”

그의 주장에 의하면 주술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백주술(白呪術)로 개인이나 사회를 이롭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사회적인 흑주술(黑呪術)이다. 이들은 사람의 죽음에 대해 자연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원인을 찾아보면 반드시 주살(呪殺)되는 게 대부분이라는 것인데 미개한 민족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말이 나왔으니 좀 더 하지. 내가 기억하는 주술은 두 가지 형태로 분류되거든. 하나는 모방 주술이야. 어떤 행위를 모방할 때 그것이 이루어지는 경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 기우제 같은 게 거기 속할 거야. 비를 내리게 하는 의식을 치르면 비가 오는 게 그런 쪽이지.”

그런가하면 감염주술은 어떤 부분에 대한 작용이 전체에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저주하는 상대의 의복이나 머리카락, 또는 짚으로 사람 형태를 만들어 바늘로 찌르며 저주하는 것 등이다.

“···감염주술은 우리가 연속극 등에서 많이 보아왔지. 그런 맥락에서 <고>를 선한 쪽으로 보면 이태백이 주장하는 술 벌레 같은 것이고, 나쁜 쪽으론 상대를 저주하는 흑마술이나 감염주술 정도일 거야.

근데 말이야. 국과수(國科搜)의 닥터 최가 인도 당국 초청으로 거길 다녀온 적이 있거든. 그때 윤일경 교수를 보았다는 거야. 이 친구 심각한 표정으로 그 말만하고 더 이상의 얘긴 피하더라니까. 그래서 내가 술 한잔 하지 그랬느냐고 했더니 이 친구 대답이 엉뚱해. 먼발치로만 봤다는 거야. 이상하잖아?”

“근데, 닥터 최가 인도엔 왜 갔답니까?”

“인도 의학 때문이라나.”

“인도 의학?”

“나도 그 말 듣고 공부 좀 했지, 인도 의학에 대해. ···인도 의학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기원이 오래 됐으니까. 그들이 만든 경전이라는 것도 주술적 색채가 강해. <아유르베다>라 불리는 장수의 책에는 독물학(毒物學)이나 악마학(惡魔學)이 포함되어 있는 게 눈에 띄거든. 석가모니가 나타난 그 시대에는 유명한 기바(耆婆)가 ‘타키시라’라는 곳에 유학을 가서 의학을 배우고 돌아와 이름을 떨친 기록이 있고···.”

그는 잠깐 말을 끊었다가 마른침을 삼키고 나서 덧붙였다.

“인도엔 말이야. 2대 의학서가 있어. 2세기경 나타난 것으로 보이는 <차카라본집>과 <수슈르타본집>인데 앞의 것은 내과에 뛰어나고 나중 게 일반의학으로 외과에 뛰어나지. 그 후 6세기경에 바그바타라는 이가 의학의 여덟 가지 부분에 대해 글을 썼는데 이게 <팔지강요(八支綱要)>와 <팔지심수본집(八支心髓本集)>이야. 그러나 약물에 관해서는 6, 7세기경에 가서야 활발해졌지.”

약간 더듬거리는 어투였지만 그의 눈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것은 탁원제가 궁금히 여기는 부분이 이것 아니냐는 무언의 물음이었다. 인도 의학은 화학에서 나와 연금술로 발전했으며 나중에 힌두교와 더불어 ‘수은파’를 탄생시켰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