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산(機山)을 찾아서

여의도 공사장에서 보았던 승용차는 육관도사(六觀道士) 송학수(宋鶴壽) 소유로 밝혀졌다. 공기 맑은 사직공원 가까이 자리잡은 그의 점집은, 구(口)자 형 대지(垈地) 중앙에 은행나무를 심은 곤(困)자 형 구조로 풍수학으로 지극히 나쁜 가상(家相)인데도 곤자 형을 강조한 것은 이유가 있다는 풍문이었다.

학이 날개 치며 비상하는 듯한 반월형 처마는 우아한 아취를 풍겨내, 황극경세원(皇極經世院)이란 옥호를 한껏 신비감으로 몰아갔다.

점심이 이른 시각인데도 탁원제의 면담 요청을 송학수는 흔쾌하게 받아들였다. 예순을 세 해 전에 넘겼다고 보지 않을 만큼 얼굴은 어린애처럼 해말갛고, 가을 호수 같은 눈빛은 상대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미묘한 매력을 풍기는 노신사였다.

묘수풀이 도형은 무릎 앞쪽에 놓인 바둑판 위에 버티고 있었다. 방문객을 맞이한 그는 바둑판을 옆으로 밀치며 삼불(三佛)이 그려진 쥘부채로 정겹게 무릎을 내려쳤다.

“카하,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니 이 아니 즐거운가.”

여유 있는 너스레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전화로 듣건대 그놈의 승용차가 말썽을 부렸단 말입니까?”

쥘부채를 소리 나게 접은 송학수는 부채 끝으로 뒤통수를 가만가만 토닥거리며 입술을 빼물었다.

“문밖에 세워둔 그녀석이 얼마 전, 감쪽같이 사라졌었네, 개비한 지 겨우 2년인데 말없이 외출했으니 얼마나 짜증났겠소. 그날은 날씨까지 고약했어요. 나이든 시어머니가 괜히 짜증낼만한 그런 날이다 보니 외출할 일이 없어 신경 끊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질 줄 어찌 알았겠소.”

쏟아지는 웃음을 참느라 탁원제는 한쪽으로 얼굴을 틀었다. 점쟁이 집에서 차를 도난당했다면 길 가던 사람들이 웃을 것이란 생각을 부질없이 해본 것이다.

“기자 양반, 차라는 것이 그래. 길 가다 택시 타면 그런 생각이 들거든. 장거리 갈 때 코스 맞으면 합승하잖아. 택시 잡기 어려운 세상에 합승은 자연스러운 건데, 그걸 가지고 합승입네 뭐네 벌금 매기는 건 가당찮지. 아, 석유 한 방울 안 나오는 나라에서 합승 하는 게 무에 나빠?”

“합승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보다는?”

“과정이 문제죠. 손님을 실은 상황에서 또 다른 손님을 태우려 호객 행위를 하는 게…. 그런 게 나쁜 거죠.”

갑자기 합승문제로 비약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탁원제는 얼른 제자리로 돌렸다.

“그러니까, 송선생님께선 차를 빌려준 적이 없단 말씀이죠.”

“기자 양반이 말한 그 전날 도둑맞았네.”

“그렇다면 이상하군요. 잃어버린 승용차가 창고 옆에 서 있던데요. 끝번호가 6954 맞죠?”

송학수는 이마를 찡그리며 잠깐 생각하더니 입이 찢어져라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 그러던가! 맞아 맞아. 틀림없이 그 번호가 내 차야. 외박 나갔다 돌아온 건가.”

“?….”

“그날이 언제더라…, 아마 일주일이 넘었지? 내 기억으론 금요일이야. 때마침 사회민주당에서 손님이 밀어닥쳐 복잡했었지. 여기저기 심상치 않은 기운이 생겨 무슨 일이 없겠느냐 묻기에 첨자(籤字) 하날 뽑으라 했지. ‘진(軫)’이었네.
진이란 수레턱나무인데 [태허경]엔 구른다는 뜻이 있지. 꼬불꼬불한 길을 가는 수레가 뒹군다, 뭔가 이상하잖아?

그런데 더욱 불길한 것은 ‘진’을 뽑을 때 ‘홍(弘)’ 자가 곁뽑혀 나왔지. 그래서 더욱 좋질 않아. 요즘처럼 어지러운 세태에 근심할 일이 크다는 점괘가 아니겠어? 그게 제일 야당 부총재의 것이라면, 이 나라에 닥칠 환란이 심상치 않다는 게지. 이런 얘긴 기자양반한텐 여담이야.”

“별말씀 다 하십니다.”

“박부총재는 가끔 들려 향후 정치 일정에 대해 물었네. 그 날도 예외는 아니었지. 얼마 전 티브일 보니까 박부총재와 함께 나온 이송자란 여인이 그런 말을 하더구만. 매화나무 가지를 잘라 베어진 부분으로 관매점(觀梅占)을 친다해 깜짝 놀랐지, 그런 점법으로 호구지책을 삼은 사람이 나 외에 또 있으니 말이야.”

“특별한 점법인가요, 관매점은?”

“누구나 익힐 수 있는 건 아니요. 그 여인이 여류기사들을 키우고 있다는 말에 짚이는 바가 있어 고갤 끄덕였지만···.”

“내가 알기론 그 분은 점쟁이거든요. 이곳 역시 점을 치는 곳으로 알고요. 송선생님도 바둑 두는 문하생을 키웁니까?”

“그렇소. 비단 황극경세원에서만 그러는 게 아니고 벽암이 있는 진역관도 마찬가지요.

해방을 전후해 이 땅의 술가(術家 ; 점쟁이)들은 풍수와 바둑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소. 그것은 일본과 이또오 히로부미라는 자가 이 땅에 저지른 술책 때문이오. 그걸 기자 양반한테 얘기한다고 알아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조선의 국모를 살해하고 이 땅에 엄청난 비밀을 숨긴 일본의 만행을 파헤치기 위해선 점법은 물론 풍수와 바둑을 알아야 해요.

그런 연유로 우리 복자(卜者;점쟁이)들은 그들이 이 땅에 무슨 짓을 했고,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를 알아내려 백방으로 애쓰는 것이오. 오래 전에 스승님들이 담합한 내용을 지키려고 모두 촉각을 세운 채 추격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