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자에겐 남편이 바람을 피워 그런다고 했지만, 이 일은 훨씬 전에 꾸며지고 있었다. 당시로선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었다. 한 달 전부터 아내의 외출 후 전화벨이 울리면 티브이 화면이 흔들리고 수화기를 들 때엔 갑자기 ‘삑!’ 하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이 같은 현상을 얘기했을 때 놀이터 옆 희망 전파사 주인 송씨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하울링 현상입니다.”

“하울링?”

“누군가 도청하고 있다는 거죠.”

“무슨 소립니까?”

“자세힌 모르겠습니다만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상황은 도청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선생이 살고 있는 곳은 저쪽 22동이죠? 거긴 전화 단자함 열기가 쉬워요. 어떻게 할까요, 도청을 방지시켜 드릴까요?”

“할 수 있습니까?”

“두 가지가 있어요. ‘스크램불’과 ‘텔레키퍼’죠. 스크램불은 전화 신호음을 변조시켜 도청하는 사람이 목소리를 알 수 없도록 하는데 잡음이 아주 심해요. 그리고 텔레키퍼는 도청 장치가 설치된 전화 회선의 전압이 떨어지면 경고음을 내거든요. 하시겠습니까?”

“그럽시다.”

송씨가 서랍을 열고 준비하자 문치수는 방향을 틀었다.

“아니 이렇게 합시다. 지금 전화 내용이 도청되고 있는 상태니 이번엔 반대로 도청해 봅시다. 도청긴 구하긴 쉽죠?”

“미국의 알에스에이(RSA)사가 개발한 괜찮은 게 있습니다. 그걸 조금만 손질하면 가지고 다니기에두 편하죠. 도청기나 수신기가 스몰이지만 성능 면에선 파워거든요. 수신기는 작은 만년필 정도니까 다루기가 쉬워요. 금액이 좀 쎈 게 흠이죠.”

문치수는 그걸로 설치했다. 도청기를 설치한 다음날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상대를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구로다 한국 지사의 중견 간부 같았다. 상대방은 일이 차질 없이 되어가는가를 묻고 절대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일방적으로 끊었다.

문제는 전화를 받은 아내의 태도였다. 당장 만나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부산을 떨었다.

문치수는 하나하나 정리해 보았다. 우연처럼 구로다 그룹과 연결되고 주식회사 미로를 설립하고 난 후, 모든 게 기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왜 그때 좀 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는가? 후회막급이었다. 그러면서도 이경실이 자신과의 결혼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인 점에 의혹이 일어났다.

그는 고향 후배가 몸담고 있는 심부름센터에 연락을 취했다. 이번 일의 자초지종을 좀 더 조사해 보기 위해서였다. 상황이 어찌 변할지를 몰라 오늘 저녁엔 21동의 한적한 곳에 대기시킨 상태였다. 무선 통신기가 바람 소리를 내며 후배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선배님이십니까? 이틀 전, 사모님과 퇴계로에 있는 A호텔 720호에 투숙한 사람은 구로다 그룹 한국지사에 근무하는 미야타(宮田) 부장입니다. 그들이 호텔에 들어가는 시각과 나오는 시각을 체킹해 두었거든요.”

잠깐 말이 끊겼다. 그것은 도청하고 있는 방안 사정이 급격히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컥컥대는 이경실의 짜낸 듯한 외마디 비명과, 먼 길을 질주해 온 마라토너 같은 사내의 거친 호흡이 믹서 되어 수신기에 가늘게 흘렀다. 사내의 가라앉은 듯한 신음 소리가 길게 꼬리를 물자 문치수는 바닥에 내려놓은 도청용 만년필을 구둣발로 박살내 버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전히 무선 통신기에선 후배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듣고 있어.”

“원 선배님두. 듣고 계시면 말씀을 하셔야죠.”

“저기 말이야, ···내게 그런 얘길 했었지. 한풀이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구.”

“그런···데요?”

“그 사람들 만날 수 있지?”

“선배님이 왜 그 사람들을 만나요. 무슨 일 있어요?”

“그래.”

“그치만 살인할 정도는 아니잖아요.”

“그 이상이야.”

“예에?”

“넌 연락만 하고 빠져. ···몇 번이야?”

“몰라요. 그 사람들은 전화번호를 남기지 않아요. 제가 지역신문에 광고 치면 연락이 오거든요. 흥신소 전화번호의 끝자리 네 자를 적고, 그 전화가 불통됐으니 연락을 바란다구요.”

“연락해. 두 사람을 처리해 달라구. 연락이 되면 내일 오전 중 급전을 만들 테니까.  일이 끝나면 박박 긁어 더 보낼께. 인적 사항은···, 네 사무실의 팩스로 보내겠지만 혹시 모르니 적어둬. 한 사람은 월간 스캔들 잡지사의 취재부장 박일우, 또 한 사람은….”

“또 한 사람은요?”

“이경실이야.”

“이경실? 사모님이잖아요?”

“그렇게 전해.”

후배의 말이 다급해졌다.

“선배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바람 한 번 피웠다고 죽일 것까진 없잖아요. 그리구요, 말은 해보겠지만 일을 맡고 안 맡고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어요. 그 사람들은 서민들을 울리는 돼먹지 못한 사람만 혼내주는 ‘고양이’들이라니까요!”

“끊는다.”

“아 여보세요! 선배님, 잠깐만요!”

문치수는 더 이상 옥상에 있을 필요가 없어 송신기의 오프(off) 단추를 누르고 계단을 내려갔다. 담배를 피워 문 채 점퍼 깃을 올려 세웠다. 깊게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뱉자, 그것들이 요동하며 찬 공기와 섞이는 것을 잠깐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