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질문은 이여사님의 신상에 관한 것입니다. 불편하시면 답변을 피하셔도 됩니다. 이여사님이 ｢매란방｣이라는 단체를 육성하고 있다는 소문이 항간에 떠돌고 있습니다. 목적이 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매란방｣은 특별한 단체가 아닙니다. 뭐랄까, 시중에 있는 역리철학학원 정도의 기능을 가지고 있죠. 여기서 세세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만, 그곳에 있는 처녀들은 장차 점쟁이를 꿈꾸는 예비 역술인으로 알려져 있죠.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그들이 일정한 공부를 마치고 나면 그 동안 비밀리에 바둑 수련을 해왔기에 여류기사로서 활동하게 됩니다. 물론 프로는 아니죠.”

이송자는 생각이 바뀌었는지 ｢매란방｣에 대해 답변을 끌었다.

“사실 저의 꿈은 여류기사 양성에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보면 나름대로 전문성을 띤 학교들이 많아요. 음식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영양소를 따지는 학과가 생겼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쨌던가요. 회의적이었죠. 먹고 살기도 바쁜데 쓸데없는 학과가 생겼다고 이구동성으로 성토했어요. 지금 저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겉으론 점쟁이를 키우는 것 같지만 그건 정해진 코스에 불과합니다.”

이번에는 종교문제연구소 채일병 소장이 답변에 나섰다. 점쟁이에게 과거든 현재든 또는 내일을 의지하려는 게 옳은 가였다. 채소장의 답변은 조심스러웠다.

“역사적으로 보면 점쟁이들이 득세할 때는 경제구조가 어렵게 짜여질 땝니다.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어떤 절대자의 힘을 빌어 풀어나가려는 생각이 지배적이죠. 이런 때엔 사교(邪敎)가 득세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점쟁이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려는 어리석은 사람들과 그것을 이용해 돈을 챙기는 점쟁이들은, 마치 파우스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처럼 위태로운 관계’라는 겁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정동영 아나운서는 마지막 멘트를 붙였다.

“에, 다음 시간에는 궁합에 대해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오늘은 매란방 철학관의 이송자 여사님, 사회민주당의 박인철 부총재님, 그리고 종교문제연구소 채일병 소장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평소에는 온종일 쏘다니다 이렇듯 방안에만 있으니 입맛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점심은 간신히 때웠지만 저녁상은 그대로 물렸다. 윤아는 걱정스러운 낯으로 상을 내가더니 자정이 가까워 전복죽을 쑤어왔다.

“아가씨께서 보냈어요.”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스텐 냄비에 담아온 전복죽을 서너 숟가락 뒤적거리다 윗목에 밀어놓고 자리에 누웠다. 이미 입맛을 잃고 있었다.

잠깐 눕는다는 게 육신이 피곤한 탓인지 어느새 단잠 속으로 미끄러졌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 못할 비몽사몽간이었다. 온몸에 털이 수북한 원숭이가 방으로 들어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름 끼치도록 긴 손가락과 누런 이빨이 날카롭게 삼각형을 이루어 공포감을 일으켰다.

“자, 일어나거라. 이승에서의 죄업이 너무 깊어 더 이상 살려둘 수 없어.”

검고 칙칙한 포승줄로 묶자 벗어나려 몸을 뒤척였다. 원숭이는 흉측하게 웃어대며 비아냥거렸다.

“킥킥킥, 그래도 살고 싶은 게로구만. 그렇듯 이승에 미련이 많은 놈이 어찌 물마시듯 죄를 범하누. 크고 작은 죄가 한두 가지가 아니니 더는 살려둘 수 없지. 어떤가, 초열지옥의 불구덩이에 던져지겠는가, 아니면 뽕가시 덤불에서 살덩이를 찢기며 지내겠는가?”

일우의 눈빛이 불안과 공포로 열렸다. 털북숭이 원숭이가 다시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세. 자네 목숨을 내게 맡기게. 어떤가, 영원히 고통 속에서 지내느니 한순간에 끝내는 게 좋겠어.”

털북숭이 원숭이는 들고 있던 쇠몽둥이로 사정없이 머리를 내려쳤다.

“아악!”

소스라치게 놀라 상체를 일으켰다. 꿈이었다.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눈앞엔 언제 들어왔는지 쥐 한 마리가 쪼르르 냄비 곁으로 다가갔다. 구수한 죽 냄새를 맡은 모양으로 일우의 존재는 아랑곳하지 않고 멈칫멈칫 냄비를 들락거리더니 아예 안으로 들어가 달그락대며 전복죽을 먹어댔다.

‘요런, 맹랑한 것을 봤나.’

슬그머니 목침을 집어 들었다. 나오기만 하면 단번에 박살낼 채비를 차렸다. 한동안 덜컥거리던 쥐는 음식이 바닥났는지 냄비 안에서 훌쩍 뛰어 나왔다. 그 순간 세차게 내려쳤다.

“요놈!”

그러나 쥐새끼는 한 걸음 빨리 손목 안쪽으로 빠져나와 문지방 넘어 대나무 숲으로 달아나버렸다. 주위에는 형편없이 부서진 목침만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아뿔싸.”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쥐가 전복죽이 든 냄비에 들락거린다지만, 그걸 잡겠다고 목침으로 내려친 건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수를 놓은 태극 문양을 걷어내고 깨어진 조각들을  주워 모았다. 단단해 뵈는 것과는 달리 쉽게 부서진 것이 뜻밖이었다. 어찌 보면 이 목침은 만든 지 오래되어 쉬이 부서진 것인지도 몰랐다.

흩어진 조각들을 주워 모을 때였다. 검고 반질거리는 반 뼘 남짓한 조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아래가 긴 십자(†)형의 쇳조각이었다.

‘이게 뭐야?’

일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각에는 뜻밖에도 괴이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陰八月十日 一宇破此枕 (음8월10일 일우파차침)>

음력 팔월 십일에 일우란 이가 이 베개를 깨뜨린다는 내용이다. 조각에 씌어있는 달과 일, 그리고 사람 이름. 목침이 깨어진다는 시각, 모든 게 일치했다. 무엇에 홀린 듯 쇳조각을 내려다보았다.

‘누가 이 목침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이 글은 무슨 이유로 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