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화면에서 나문희 회장의 모습이 사라지자 장면은 어느새 진행하는 아나운서와 화사한 옷을 입은 보조사회자가 미소를 띄우고 있는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에, 오늘은 여배우 이은하 씨의 실종을 예언하여 장안에 화제를 일으킨 매란방(梅蘭方) 철학관의 이송자(李松子) 여사께서 나오셨습니다.”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진행을 맡은 정동영 아나운서는 초대 손님으로 나온 사회민주당(社會民主黨) 박인철(朴仁哲) 부총재와 종교문제연구소 채일병(蔡逸丙) 소장을 소개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멘트가 이어졌다.

“점을 보고 굿을 하는 사회는 ‘불안한 사회’라고 합니다. 쫓기는 것 같은 불안 심리 때문에 굿을 하고 점을 치지만, 그것을 믿어야 하는지엔 의문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옛 말에 저 죽을 줄 모르는 게 점쟁이라 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점쟁이의 말에 모든 걸 결정하려는 경향이 팽배해 있습니다.

기독교 신자인 어느 권사님이 점집에 다닌다는 말을 듣고 목사님이 물었답니다.  ‘아니 권사님께서 점을 치는 곳에 다니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나이든 권사님 말씀이 가관이었습니다. ‘내가 본 건 우리 아들 사주라니까요!’ 하더랍니다. 이 점에 대해 한국사회병리학회 간사인 노주현 씨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자, 그림 주십시오!”

대형 멀티 화면에 인터뷰에 응한 노주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이 사회의 현실을 나름대로 분석했다.

“우리 한국인의 의식 속엔 샤머니즘이 자리 잡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는 무기력한 상황이 계속되면 점을 보는 불안한 사회가 됩니다. 왜 점을 볼까요? 그것은 우리 사회의 특수상황 때문입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은 살기 어려운 반면 부동산 투기 등으로 떼돈을 번 사람들은 자신의 운세를 열심히 주물럭거려야 불안감을 해소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겐 무엇이 두려울까요? 불안한 미래겠죠. 그래서 점이란 게 필요합니다.”

화면이 꺼졌다. 이번에는 사회민주당 박인철 부총재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박부총재님께서는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신 분입니다. 사회가 혼란스러운 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정도 안정 기반으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부총재님께서는 점 보는 사회를 불안한 사회로 보십니까?”

이제 쉰일곱인 박인철의 답변엔 여유가 있었다. 그는 목소리의 톤을 조절하며 여유를 부렸다.

“에,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만으로 점 보는 사회를 불안한 사회로 매도할 순 없잖겠어요? 경제가 어려우면 당연히 시민들의 살림살이는 버거울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점 보는 사회는 시민 생활이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돌아오는 정기국회에서 저희 사회민주당은 당론을 걸고 정부 여당의 실정을 따질 것입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사회자는 멀티 화면 쪽으로 다시 손을 펼쳤다.

“점을 보는 게 옳은가, 그른가? 의론이 분분한 가운데 잠시 점복술(占卜術)에 대해 잠시 알아보겠습니다. 자, 그림 주십시오.”

대형 멀티 화면에 점복에 관한 여러 형태의 그림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와 함께 내레이터의 묵직한 목소리가 내리깔렸다.

<점(占)과 복(卜)은 기원만큼이나 다르다. 수천 년 전 중국에선 거북 껍질을 불에 구워 갈라진 모양으로 길흉화복을 예측하였는데 이것을 복이라 한다. 또한 음양오행과 괘효(卦爻)로 미래를 살피는 것을 점(占)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신점(神占)은 어떤 것인가? 이것은 신내림의 경험이 있거나 ‘신을 부를 수 있는’ 점쟁이의 점을 뜻한다. 즉, 무당을 비롯하여 박수 등의 귀신점이다.

<귀신점이라 하여 반드시 무당이나 박수들의 영역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불교와 접목한 법사나 보살 등도 죽은 아이의 영을 불러내는 명두점을 치기 때문이다.>

화면은 여기에서 중단되었다.

“저희 방송국의 ｢저명인사를 모시고｣ 팀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점쟁이 자격을 갖춘 자는 대략 3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점쟁이가 되려면  한국역술인협회에 가입해야 하는데, 그 자격은 역리철학학원의 5개월 내지 6개월 과정을 수료해야 합니다. 이 기간 동안 명리학(사주)을 비롯해 상리학(관상) · 풍수지리학 · 성명학 · 주역 등을 배우게 됩니다.

그동안 방송국에 답지한 많은 물음 가운데 몇 개의 항목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 시간엔 ｢매란방 철학관｣의 이송자 여사님의 답변을 기대합니다. 가능한 짧게 답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송자는 여유 있게 대답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여사님께서는 특별히 공부한 분야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앞서 말한 상리학이나 풍수지리학은 물론 명리학 · 성명학 · 주역에 문외한이라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전 그런 쪽 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요.”

“그렇다면 신내림을 받았습니까? 일종의 무병(巫病)을 앓은 경험이 있습니까?”

“없어요.”

“신내림을 받지도 않았고, 역리철학학원의 6개월 과정도 수료하지 않았는데 세상 사람들이 놀라도록 예언하신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새로운 점법이죠.”

“그게 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글쎄요. 제 말을 듣고 여러분은 이해하기 어려울 거예요. ‘관매점(觀梅占)’이라면 아시겠어요? 매화나무 가지를 잘라 베어진 부분으로 길흉을 헤아리는 점법이죠. 바둑을 두는 사람이 작은 걸 버리고 큰 걸 취하거나 자기 말을 버림으로써 대세를 장악하는 이치와 같다고나 할까요. 적당한 기회에 관매점이 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