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를 걸어 이 방까지 오는 동안 무슨 소릴 못 들었어요?”

“특별한 소린 들은 기억이 없고… 다만, 통로를 걸을 때 삐꺽대는 소릴 들은 것 같습니다만.”

발그레 달아오른 초하의 안면에 미소가 살아 돋았다.

“그건 삐꺽대는 게 아니라 새 소리랍니다.”

“새 소리?”

“일종의 꾀꼬리 울음이에요. 일본의 도꾸가와(德川) 막부의 고택은 마루가 꾀꼬리 울음 구조랍니다. 마룻장이 흔들리거나 어디 빈 곳이 있어 그런 게 아니죠. 그런데도 마루를 걸으면 삐비빼배 하는 식의 울림소리가 나거든요.

거칠게 걸어가면 더 큰 새 울음소리가 나느냐 하면 그도 아니에요. 새 울음소리가 가장 잘 들린 건 빨리 달릴 때죠. 도둑이 들어와 살금살금 걷는다면 소리의 파장도 약하지만 빨리 걸을수록 새 울음소리는 다급해지거든요.”

“도둑을 예방하기 위해 그런 마루를 만들었군요.”

“그렇답니다. 당시엔 여러 사람이 이곳에서 쉬어갔지만, 밤이 깊어지면 함부로 나다니진 않았어요. 아버님께선 그런 계산을 하셨던 것 같애요.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돌아다니는 건 좋지 않은 일을 꾸미는 거라고요.”

문득 고개를 든 초하의 눈빛이 당황스러워졌다. 일우의 얼굴이 벌겋게 익어가며 눈자위가 충혈 된 게 한눈에 들어온 것이다. 차오르는 열기 탓에 일우는 웃옷을 벗어던졌다. 금방이라도 초하의 몸을 덮칠 것 같았지만 아직은 그의 이성이 스스로를 억제시켰다.

술상을 윗목으로 밀고 두 사람은 보료 위로 내려왔다. 황촛불을 끄자 초하는 속곳 바람이 되었다. 사내가 뿜어내는 단숨이 어둠 속에서 날아오자 그녀는 비로소 몸을 뒤척였다.

일반적으로 ‘복수재접법(覆修栽接法)’은 부부가 아니면 펼칠 수 없는 기술이다. 젊은 남녀가 함께 운용했을 때 상대의 기를 완전히 뽑아 되돌리므로 잘못하면 여인을 음녀(淫女)로 만들 위험이 있었다.

남녀가 서로의 몸에 열기를 일으킬 때는 손가락 끝을 매만지는 게 기본으로, 인체의 첨단을 건드렸을 때 열기는 상승무드를 타고 차오른다. 그래서인지 상대에게 손을 맡기며 초하가 속삭였다.

“서두르지 마세요.”

그녀는 사르르 눈을 감았다. 오래 전에 벽암에게 잔 설명을 들었지만 실제로 사용한 적이 없는 수법이라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점쟁이가 풍수지리술을 왜 연구해야 하는지 의문이 많을 것이다. 조상의 묏자리에 이상이 있는 가를 알아보기 위함이라면 결코 흡족한 답안이 아니야. 사람의 몸은 소우주(小宇宙)다. 해와 달이 운행하듯 천지 대자연의 변화 역시 몸 안에서 끝없이 일어났다 스러지고 변화되기 마련이다.”

벽암은 한 가지 예를 들었다. 그것은 사경(四經)과 십이종(十二從)이었다.

“사경은 간장 심장 폐장 신장의 사경맥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시(四時)에 해당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십이종은 사계절이 각각인 탓에 봄에는 인묘진(寅卯辰), 여름에는 기오미(己午未), 가을에는 신유술(申酉戌), 겨울에는 해자축(亥子丑)의 배당이 따른다. 이렇듯 인에서 축까지가 정월에서 12월까지니 이는 손과 발의 삼음삼양(三陰三陽) 열두 경맥에 해당되어 십이종이라 한다.”

맥(脈)에는 여러 가지 뜻으로 음양이 있는 데 병을 다스릴 때는 이런 음양을 숙지한 후 진단을 내려야 한다. 당시 그녀는 가르침에 대한 의문점을 지우지 못했다. 점쟁이가 풍수지리술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하필이면 소우주인 인체에서 찾아야 하는가 싶었다.

얼굴을 구주팔괘(九州八卦)로 관상하는 법을 벽암에게 배운 것은 훨씬 나중이었으니 의문을 제기한 것은 당연했다. 벽암은 무표정한 낯으로 그런 얘기를 했었다.

“우리 몸을 소우주라 했다만, 소우주라면 뭐가 있겠느냐? 하늘과 땅을 잇는 바람과 물이 있고 산과 강도 있다. 태양과 달도, 강과 산도, 흙과 나무 같은 것도 우리 몸에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싫어하는 혈기일(血忌日)을 피하지 않는다면 좋은 방책도 안 쓰느니만 못한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그걸 알아야 ‘복수재접법’을 쓸 수 있다.”

옛사람의 충고처럼 ‘성(性)이 미(迷)인가, 오(悟)인가, 신(神)인가, 마(魔)인가는 바로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방술을 아는 자는 자신의 허약한 부분부터 치료한 후 몸을 쓰는 게 바른 법이다.

다시 말해 ‘혈기일’은 몸에서 피가 나면 안 되는 날이다. 자식을 보기 위해 남녀 간에 방사를 치르는 것도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을 구분하자면, 음력 정월엔 소날(丑), 2월엔 양(未), 3월엔 호랑이(寅), 4월엔 잔나비(申), 5월엔 토끼(卯), 6월엔 닭(酉), 7월엔 용(辰), 8월엔 개(戌), 9월엔 뱀(巳), 10월엔 돼지(亥), 11월엔 말(午), 12월엔 쥐(子)날이다.

기묘한 욕망을 느끼면서도 일우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서두르지 말라는 초하의 속삭임이 잔잔하게 귓가에 내려앉은 상태에서 일단 혈기일을 피한 것을 깨닫자 일우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초하의 하반신을 어루만지며 근원점(根源點)을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