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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기객 7회/ 묘수풀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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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기객 7회/ 묘수풀이 (2)
2007-11-26     프린트스크랩
 

“어, 저 자식들이?”


탁원제는 주머니에서 만원권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마담과 단발머리를 뒤로 하고 급히 가게 옆에 세워 둔 지프차에 올랐다. 앞차가 골목길을 빠져나가자 그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뒤를 따랐다.


“틀림없이 박부장님인데 어떻게 된 거야?”


앞서가는 승용차는 거세지는 빗발을 뚫고 여의도 쪽으로 달렸다. 곳곳에 건설경기를 타고 신축 건물이 들어서고 있었다. 이윽고 승용차가 멈춘 곳은 (주)거산의 24층 신축공사장이었다. 이미 터파기 공사가 끝나고 시멘트 레미콘 공사를 하던 중 폭우가 내려 공사가 중단 된 상태였다.

약간 경사가 진 곳에 세워진, 건물의 조감도가 그려진 홍보용 팻말 앞에 멈추었을 때 스포츠머리는 옆구리를 만지작거렸다. 허리에 찬 삐삐에서 연속적으로 ‘0259’라는 숫자가 찍히고 있었다. 그의 이마가 좁혀지며 짜증이 새어나왔다.


“아니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저 자식을 시멘트 공구리 속에 묻으라더니 마음이 바뀐 거야 뭐야. 괜히 나 혼자 보내놓고 삐삐를 치고 난리야.”


스포츠머리는 줄기차게 쏟아지는 빗발 속에 5분이나 걸어 사무실을 갈 생각에 한숨이 푹 쏟아졌다. 더구나 우산도 없었다. 주위를 돌아보아야 어두컴컴한 시멘트 건물들이 유령처럼 서 있을 뿐, 살아있는 물건은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문을 열고 잽싸게 사무실을 향해 달려갔다.

한쪽 구석에 파킹한 탁원제가 승용차로 다가갔다. 차속엔 박일우뿐이었다. 주위의 돌멩이를 집어 손수건으로 싼 다음 유리창을 내려쳤다. 파열음이 둔탁하게 들리며 유리 파편이 주위로 튀었다.
박일우를 뒷좌석에서 꺼내 지프차로 옮긴 후 다시 승용차 쪽으로 돌아와 브레이크를 풀고 아래로 밀어버렸다. 승용차가 밑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느끼며 탁원제는 급히 승용차로 돌아왔다.


비교적 거친 파열음을 냈지만 빗소리 속에 잠긴 탓에 스포츠 머리가 안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그는 세워둔 승용차가 시멘트 콘크리트 속에 점점 묻혀가는 것을 망연히 지켜볼 따름이었다. 그러한 그의 시선에 걸리는 게 있었다. 유리 파편이었다. 누군가 차 유리를 박살내고 그 자식을 꺼내지 않았나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손에 쥔 유리조각을 아래쪽으로 던져버렸다.


스포츠머리가 사라지자 탁원제는 그제야 박일우 쪽에 시선을 돌렸다. 어깨를 움켜잡고 몇 번이나 흔들었을 때에야 의식이 돌아온 듯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부장님, 정신 차리세요.”


“나를 좀···, 데려다···주어. 삼···청···동···에 있는···.”


“삼청동? 삼청동 어디요?”


“진···역···관이라는 곳, 그 집으로 날··· 데려다 주어···.”


“조금만 참으세요.”


탁원제는 핸들을 꺾으며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지프차는 강글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어둠 속을 질주했다.
 

종로구 북악산 자락에 있는 삼청동은 근처에 삼청공원과 약수터가 있어 사람들이 자주 찾았다. 삼청이란 이름은 그 옛날  도교의 경전인 삼청전(三淸殿)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으로, 아무리 추악한 사람이라도 이곳에 들어오면 마음이 맑아진다는 아름다운 얘기가 전한다. 그래서일까. 산도 맑고 물도 맑고 사람의 마음마저 맑아져 삼청이라 불렀다.


북악산 한 자락을 보듬고 있는 진역관(眞易館)은, 하늘의 별자리를 뜻하는 스물여덟 계단(二十八宿)을 오르면 출입문 위에 현판이 걸려 있었다. 그곳 처마 끝에 놓인 십이지(十二支)의 어처구니는 언제 보아도 가지런했다.
이곳에 언제 진역관이 들어섰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누구 입에서 나왔는지 진역관 모습이 어쩌면 운니동에 자리한 운당여관을 닮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떠돌았다.


1970년대 한국에는 두 명의 바둑 고수가 날만 새면 상대를 베기 위해 칼날을 갈았다. 바로 조훈현과 서봉수였다. 그들의 격전은 주로 운당여관에서 이뤄졌다. 세상의 논리로 말한다면 바둑의 최고수를 가리는 시합이었지만 운니동이라는 동네가 준 것은 ‘구름과 진흙’이라는 평범함이었다. 특히 이 지역에 내시가 많이 살았던 것은 구름을 탄 내시들의 행보와는 달리 현실에선 진흙 속을 나뒹구는 그들의 가련한 생이 촘촘히 배었기 때문이었다.

이곳 운니동에 있는 운당여관과는 달리 삼청동에 진역관이란 현관이 붙자 소문 하나가 서울 바닥을 돌아다녔다.


“진역관 벽암선사는 천문지리에 통달해 사람의 운수를 바꿀 수 있다네.”


어느 정도 살점이 붙은 허사(虛辭)다. 그가 제갈량처럼 동남풍을 빌려 쓸 재간은 없었지만 야릇한 소문 하나가 장안을 떠돌았다. 법통(法通) · 도통(道通) · 신통(神通)의 경지를 외동딸 초하(草蝦)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풍월지선생(風月之先生;풍류객)이 되어 삼천리강산을 달빛처럼 유랑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밤이 꽤 깊었는데도 초하는 비스듬히 누워 사색에 잠겨 있었다. 두 이레 전인 지난 초하룻날, 길 떠나기 전 부친이 떨어뜨린 말 때문이었다.


“달은 차면 이지러지고 이지러진 달은 다시 차오르는 게 정한 이치다. 그러고 보면 흥하고 망하는 게 그리 즐겁거나 애통한 게 아니다. 어둑새벽 운수를 풀었더니 불가사리 하나가 내 집으로 들어오는 괘사가 떨어졌다. 쇠똥냄새 나는 그 불가사리를 다스릴 수 있다면 이제껏 안절부절 못하던 근심을 멀리 할 수 있을 것이다 만.”


벽암은 눈자위를 지그시 누르며 한숨을 몰아쉬었다. 설명할 수 없는 곤혹한 빛살이 그의 눈가를 떠돌았다. 나이 일곱 살 때 주역(周易)을 듣고 그 진의를 깨우쳐 벽암을 놀라게 한 초하는 중국의 본점인 복서정종(卜筮正宗)을 가르치지 않았어도 안개처럼 덮인 길흉의 진면목을 찾아냈다. 자신처럼 본색을 숨기고 세상을 풍미할 점쟁이를 만들 것인가로 한동안 고민했지만 결국은 그게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스승이 남긴 유훈대로 바둑도장 ‘진역관(眞易館)’을 만든 것이다.

본래는 ‘벽암 위기교실’이나 ‘벽암수련관’이란 명칭 중에서 하나를 고르려 했으나 예전에 붙인 현판을 명호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 일은 한국기원 관계자들만 알 뿐 세상 사람들은 아직도 그곳을 점 치는 장소로 여겼다.

벽암은 길을 떠나는 날 아침 대문간에서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렸다.


“명당경(明堂經)에 그러 했느니, ‘사람이 천지를 잡고 있다’ 했느니···.”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부친이 그런 말을 하고 떠난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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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네 |  2007-11-26 오후 12:04:2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바둑소설의 원조를 매일 기다리는 즐거움이 정말 큽니다^^  
꾹리가아 |  2008-01-30 오후 12:41:3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나이 일곱 살 - 주역(周易) - 벽암을 놀라게 한 초하 - 점쟁이

결론 - 바둑도장 - 진역관(眞易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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