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 훔친 복숭아와 상한 사과

이러한 모든 얘기는 먼 길을 빙빙 우회하여 온 것 같지만 골격을 추스르면 한마디로 계집 사냥이라 부르는 ‘보쌈’이었다. 장안의 행세깨나 하는 사대부 집안 과부들은 남의 눈치 때문에 근질거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해 발정낸 괭이처럼 이앓이를 한다고 혀 끝에 힘을 주었다.

“내가 얘기 주머닐 풀어 은근 짭짤한 사연들을 풀어내면 나의 고객들은 그것만 들어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몸 둘 바를 몰라 하죠. 주위의 여건상 남보란 듯이 팔자를 고칠 수 없는 상황이니 장안 뒷골목에 소문을 뿌리는 소쩍새들이 보쌈해 달라는 은근한 눈빛을 보내는 것 아닙니까. 이걸 훔친 복숭아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상한 사과라 해야 할까요?”

소문의 색깔이 밝혀지다 보니 경위원에는 죽은 자의 신원이 ‘강변칠우(江邊七友)’라는 소쩍새의 한 사람이란 점에 힘을 주며 수사 방향을 그쪽으로 돌렸다. 조사가 시작되면서 그림자처럼 누웠던 부분들이 하나씩 일어났다. 사내들 부모가 한다 하는 집안의 기침깨나 하는 어른이다 보니 비밀리에 수소문한 끝에 의심이 갈만한 인물을 추려낸 것이다.

정문원은 이들 칠공자가 자주 회합을 가졌다는 ‘토정동(土亭洞)’에 자리한, 흙을 짓이겨 움집처럼 쉴 곳을 만든 ‘토정’을 찾아갔다. 지금의 마포구 서울대교 위쪽 한강변으로 ‘토정동’이란 마을이 있는 곳이다.

‘토정동’이란 명칭은 조선의 명종과 선조 때의 문인이자 기인으로 소문 난 토정 이지함(李之函) 선생이 살았던 곳이다. 선생은 지금도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토정비결]을 쓰신 예언자로 임진년 왜란 때 순절한 의병장 조헌(趙憲) 선생과는 긴밀한 사이였다.

잡초처럼 질긴 인생을 살아온 민초들의 얘기에 의하면, 선생은 베옷과 짚신에 삿갓을 쓰고 다녔으며 각종 술법에 통하지 않는 법이 없다고 했다. 한조각 배를 타고 네 귀퉁이에 큰 바가지를 단 채 제주도를 세 번이나 다녀왔는데 풍파에 시달린 흔적이 없었고, 몸소 장사를 하여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을 가르쳤다고 했다.

맨손으로 장사하여 수년 동안 양곡 수만 섬을 모았고, 그것을 모두 가난한 백성에게 나눠준 후 다시 섬으로 들어가 ‘박’을 심어 수만 개의 박을 팔아 양곡 몇 천 섬을 만들었다. 그것을 마포로 운반해 와 강촌 사람들을 모아 흙을 쌓고 백 척이나 되는 토실을 만들어 양곡을 저장시켰다는 기인이었다.

믿음이 덜 가는 얘기였지만, 생전에 그가 만들었다는 ‘토정’이 있는 곳이며 강물을 바라보며 시주풍류를 즐길 자리가 있으니 근처를 지나는 한량들에겐 시회를 즐길 더 없는 장소였다. 그렇다고 그들이 술만 마시는 것은 아니어서 때론 직접 지은 시귀가 토정 벽에 걸리다 보니 근처에 온 사람들은 ‘강변칠우’를 ‘소쩍새’라는 이름 대신 ‘강변만필(江邊漫筆)이란 그럴듯한 명칭으로 부르기에 이르렀다.

정문원이 이곳에 이르렀을 때, 근처에 사는 촌로들이 모여들어 하루 전에 일어난 물속의 사체에 대해 어설픈 추정과 당치않은 우김질이 한창이었다.

‘그러니까···, 그 강변칠우인가 만필인가가 이곳에서 모임을 가진 다음날이 문제구만. 여기에서 아랫길로 갔다면 객주집 방향이고, 그 반대쪽이면 유곽이나 요정으로 향하는 길이란 말이야. 한데, 사체는 왼쪽의 객주집 있는 곳에서 발견됐어. 만약 누군가를 만났는데 상대가 부유한 자가 아니라면 당연히 객주집 방향이겠지. 이것은 장순호가 만난 자가 부유한 자가 아니라는 얘기고···.’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일주일 안팎의 날씨였다. 평범한 날씨가 아니라 일기가 고르지 않고 진눈깨비가 쏟아졌다. 길을 나서면 송충이처럼 진눈개비가 달라붙어 소름섞인 짜증이 일어났다. 그러므로 칠공자들은 대부분 집이나 유곽에 있었다고 그 날을 기억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