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 무엇이 달라도 달랐다는 얘긴데···, 그게 뭡니까?”

“몸이 특별했어요. 우리 집 뒷방엔 이십여 년 전 내시부(內侍府)에 몸 담은 내관이 한사람 머물렀는데 그 분은 궁에 들어온 나인들의 걸음을 보고 등급을 매겼습니다. 눈을 감았어도 항아리를 묻은 복도 위를 나무 신(木靴) 신고 또각또각 걷게 하여, 울리는 소리만 듣고서 기집들 품격을 매겼다우. 이렇게 매긴 품격으로 전하를 모실 순번을 정했으니 대단한 청각이지요.

그 내관이 세상을 뜨고 법술을 전수받은 내가 기방을 열어 세상 사내놈들 후려잡을 물건을 찾았을 때, 마침 그 아이가 내 눈에 띈 거지요.”

정문원의 입가에 흐르는 미미한 웃음조각을 모른 척하며 기생어미는 자신의 얘기에 취해갔다.

“묘화는 심폐술(心肺術)을 익히지 않았어도 호흡이 짧지 않았고 몸안 구조 역시 특별했어요. 그 아이에게 이월무(二月舞)를 가르치자 단숨에 깨우쳤지 뭐예요.”

“이월무? 예사로운 춤은 아닌듯 싶네만?”

“방중술이지요. 한때 우리집에서 밥그릇이나 축내던 내관이 가져온 궁중비서에 그런 게 있더라구요. 본시 월(月)이라는 것은 달을 가르키기도 하지만 사람의 몸과 같은 육(肉)을 나타내는 글자라구요. 해서 우리가 찾는 자전(字典)에 고기 육 부를 찾으면 월이 나오는 것은 육(肉) 부의 뜻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월무는 사내와 계집의 두 다리가 교합의 춤을 추는 것이니 방중술이 틀림없다는 것이지요.

이런 것을 가르치지 않아도 내밀한 방법을 아는 것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끼’라는 것이지오. 하지만 이러한 이월무는 아무나 배울 수 있는 건 아니라 발이 작고 가늘어야 배울 수 있어요. 중국인들은 이 춤을 배우려고 어려서부터 전족(纏足)이란 걸 한다는데 조선 여인도 버선을 신고 몸을 움직이니 같은 맥락으로 보아야겠지요. 춤을 익히면 몸이 상중하로 나뉘어 따로따로 움직이니 방사를 치르는 사내의 즐거움이 어떻겠습니까.”

“그런 처자가 이춘구 영감에게 시집을 가게 된 경위를 말해 보게.”

“매파가 왔었지요. 누가 보냈는지 묻지 않는 게 이 바닥 생리니 그 점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습니다.”

“묘화라는 처자, 여기 있을 때 머리를 얹었는가?”

“기생집에 온 계집이니 당연히 머릴 얹었지요. 순검 나으리, 더 이상은 곤란합니다. 더 물으신다 해도 대답해 드릴 말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는 일이네. 사람이 죽었으니 자네도 관아로 나와 조사는 받아야지. 조사하는 사내들은 마음에 들지 않은 답변이 나올 때면 다리 하나 부러져도 사정을 두지 않네. 그걸 알아야 하네.”

“아이구 말씀 드리지요. 참으로 성미 한 번 급하시우. 묘화의 머린 이부자의 조카 이창섭이가 올렸지요. 자세힌 모르지만···, 그 사람이 이곳을 다녀간 후 매파를 보내 청혼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한쪽 손은 여전히 쥐어진 채였는가?”

“손이야 사람이 볼 때 쥐고 있으면 항상 쥐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요. 어차피 입을 열었으니 속 시원히 털어놓겠으니 이 일로 치도곤이나 안기지 마시우. 묘화란 년을 이곳에 데려온 건 이창섭이었는데 무슨 이유로 제가 안은 계집을 숙부의 첩실로 들어가게 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요.”

“가만, 이보시게 기생어미. 그 이창섭이가 이곳에 오면 이상한 짓을 하지 않던가. 보통 사내들과는 다른 행동 말일세?”

“오호호호호, 그 선비 참으로 재미있었어요. 묘화를 만나러 올 때엔 중국에서 만든 황촉을 가져와 불을 켰는데 방사가 어찌 요란한지 얼굴이 화끈거려 근처를 지나갈 수 없었어요.

며칠전 묘화가 이곳에 들러 묘한 얘길 하더라구요. 이창섭이란 사내 때문에 그 집을 나와야겠다구요.”

기생어미는 자신의 느낌을 털어놓았다. 묘화가 그런 말을 한 것은 분명 이창섭이가 좋지 않은 일을 꾸미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확신이었다.

넷째 날 - 한 일(一) 자엔 어떤 비밀이 있는가

급히 경위원으로 돌아온 정문원은 동양역사와 주역, 그리고 마의상법에 조예가 있는 탁일환 순검을 찾았다.

“내 자네에게 물어볼 말이 있네. 정황으로 보면 이창섭이가 별당 아씨를 살해한 게 분명하네. 아마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겠지. 별당 아씨는 이창섭의 계획을 알고 있기에 죽기 전 표식을 남기려 했을 것이고, 그 표식은 다인이 찾아낸 왼손에 쥐고 있던 ‘한 일(一)’자 이네."

“그런데요?”

“내 생각은 그 한 일 자에 비밀이 있다고 보네. 이창섭이가 황촉을 지니고 있다 했는데 거금을 지닌 숙부를 살해할 때가 언제인지 시각을 알아야겠네. 그 자는 숙모인 장씨 부인을 독충(지네)으로 살해한 흉악한 놈이네.”

“예에?”

“내가 조사해보니 여러 마리의 지네를 숙모의 방에 집어넣고 그것을 물리게 했네. 독충이 싫컷 물자 문밖에서 닭고기 삶은 냄새를 풍겼네. 어린애손가락만한 구멍이 뚫려 있으니 냄새를 맡은 지네들이 모두 그 구멍으로 빠져나오자 자리를 떴지. 문 앞에 있는 기름 자국 흔적이 바로 그것이네.”

탁일환은 한동안 머리를 굴리더니 숫자의 비밀을 내놓았다.

“일(一)이란 숫자로 시각을 약속했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쓰는 십이지(十二支)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지요. 여기에서 ‘한 일(一)’이 없는 글자는 오직 묘(卯) 뿐입니다. 만약 어떤 이가 은밀하게 ‘한 일’ 자로 범행을 약속했다면 바로 묘시(卯時;상오 6시경)가 아니겠습니까”

정문원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첫 번째 범행은 막을 수 없는 위치였지만 두 번째 범행은 막고 싶었다. 그는 순검들을 데리고 이부자 댁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제14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