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원은 시장을 덮으며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장씨의 주검에도 모호한 미해결점이 있다는 것을 역설했다.

가장 큰 이유가 집안에 겨울이 가까워 오는데 말린 동태 한 마리가 없다는 것과 문지방에 뚫린 어린애 손가락 굵기의 구멍, 그리고 석 자 앞에 쏟아진 기름기가 있는 음식 등을 꼽았다.

그는 사건 현장을 다시 살펴보리라 작심하고 일단 이월루(二月樓)라는 누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셋째 날 - 이월루(二月樓)의 여인

이월루는 북창동에 있었다. 겉으로는 ‘기생 양성소’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새것’과 ‘새맛’에 눈독을 들인 장안 한량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어 뒤꼍의 아담하게 꾸민 방에는 그들의 끈끈한 농담찌꺼기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어느 방에서 흘러나온 얘기인지 사내의 웃음엔 간사한 기름기가 묻어 있었다.

“으흐흐흐흐, 나는 말이시. 고런 기집을 한 번 껴안고 지옥에 간다 해도 여한이 없겠네. 이곳에서 술과 노래와 춤을 팔았다는데 우리가 여길 오면 고런 기집을 숨겨놓고 안 내놓은가 말이야. 이 집에 자주 들른 자네가 얘길 해 봐.”

이번엔 톤이 가는 사내의 목소리가 문지방을 타고 넘었다. 그는 상대의 구미가 어디 있는지를 잘 아는 듯 싶었다.

“우리 조선과는 다르게 중원엔 그런저런 비밀들이 많이 있었다네. 그러니까 이참에 세상을 떠난 그런 물건도 생기는 것 아닌가. 중원에 그런 얘기가 있어. 한(漢;한무제 재위)나라 때 구익 부인이 있었는데 태어날 때에 한쪽 손을 쥐고 있었다지 뭔가. 그런데 황제(한무제)를 만나 하룻밤을 지내고 보니 손가락이 펴지고 안에서 나온 것은 옥구(玉鉤)라는 신물이었다네.”

“옥구? 그게 뭔가?”

“내 생각엔···, 방사에 도움을 주는 물건이었는가 싶네. 전의청 의원들의 말을 빌리면, 미약(媚藥)과 술(정력강정주)과 촉(燭;방사 시간을 임의대로 조정할 수 있는 초)을 합한 것으로, 이러한 신물을 지닌 여인과 방사를 치르면 피곤을 모르고 방사를 치를수록 젊어진다는 귀띔이 있었네. 특히 ‘명림(鳴琳)’이란 물건은 사내의 몸이 어떤가에 따라 작용을 하므로 이 역시 미약과 같은 기능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네.”

정문원이 그곳에서 앞으로 돌아나오자 기생어미 봉화댁이 설익은 반가움으로 호들갑을 떨며 맞아들였다.

“아이구 순검 나으리께서 여긴 웬일이시우? 약주 생각이시라면 이쪽으로 올라오시우. 그렇잖아도 요즘엔 그 아이가 세상을 버린 후 마음이 싱숭생숭 하다우.”

기생어미는 심부름하는 아이에게 턱짓으로 술상을 준비시키고 정문원이 자리를 잡자 건너편에 좌정했다.

“내가 어찌 왔는가 자네가 잘 알 것이네. 듣기론 ‘묘화’라는 처자를 어느 무당이 데리고 있었다는 데···, 그게 사실인가?”

“맞습니다요, 맞아요. 사당동에 산다는 큰무당이 몹시 욕심을 냈습니다만, 묘화가 신기는 있는데 받아들이려고 하질 않자 이곳에 데려와 그런 말을 했어요. 묘화를 젊은 사내에게 시집 보내면 아이의 몸에 깃든 살기가 몸을 상하게 할 것이니 반드시 나이든 사람을 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해서, 이춘구라는 영감님에게 재취로 보낸 것입니다만···.”

“이춘구 영감이 이런 곳에 손을 써 계집의 몸을 탐할 위인이 못 되네. 누군가 그 양반에게 알린 것으로 보네만, 그 자가 누군가?”

“이보세요, 순검 나리. 그건 이곳에 있는 우리 아이들의 비밀이에요. 내 밥줄이나 다름없는 얘길 다 말해 버리면···.”

그때 조촐한 술상이 들여오자 기생어미는 정문원의 잔에 술 한 잔 치고 나서 엉덩이를 뒤로 뺐다. 정문원은 앞에 놓인 잔 술을 단숨에 비우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싫다면야, 할 수 없지. 허나 이건 알아두게. 유곽이나 기생 양성소나 구린내나는 부분이 있고, 순검들은 그런 곳 찾는 사냥개들이네. 내 다시 옴세. 자세한 건 그때 듣겠네.”

기생어미의 기색이 이내 풀어지며 흥그러진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오호호호, 참으로 성미 한 번 급하우. 죄 지은 놈은 말 한 번 못 붙이고 떡이 되겠수. 자, 자. 우리집에 왔으니 우선 목이나 축이시우. 내 모두 말해 드리리다.

이곳에 기집애들이 오면 그 아이의 하는 양을 보고 이름을 내린다오. 내가 그 아이와 사흘을 함께 지내고 격에 맞는 이름을 지었어요. 꽃은 나름대로 독특한 향기가 있기 마련으로, 모란이 화사하나 향기가 없으니 격이 떨어진 환자(宦者;내시)같은 꽃이 아니우. 그런데도 자신이 최고라고 으시대는 걸 보면 카르르 실소(失笑)가 터져나오길 여러 번입니다.

나는 처음에 ‘두 발로 선 꽃’이라고 병화(竝花)라는 이름자를 내리려 했어요. 그러나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무슨 이름이 좋을까 궁리를 하다 아이를 이곳에 데려온 큰 무당을 찾아갔지 뭡니까. 그 무당이 하는 말이 자신의 얘길 따라야 이름을 지어준다는 말에 그러겠노라 했더니 글씨 그런 이름을 내려줬지 뭡니까. ‘묘화’, 묘화(妙花)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