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여인은 대대로 한양에 터를 내린 뼈대 있는 집안의 여식이었다. 그녀가 살았던 남산(南山) 아래 동리는 사람들은 가난했으나 마음자리가 후덕(厚德)해 끼리끼리 모여 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대개 우리나라 앞산들은 보통 남산이 자리잡고 있어 안쪽이나 산 아래 마을을 아늑하게 해주는데 한양의 남산은 한강물의 범람을 막고 도성에서 강물이 범람 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옛날에는 남산을 목멱산, 마뫼, 종남산, 인경산, 잠두봉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러왔다.

목멱이란 마뫼에서 비롯된 말로 남산이 주마탈안형(走馬脫鞍形;달리는 말이 안장이 벗겨진 형국)이므로 말뫼(마뫼)라 했다고도 하고, 나무(남=木) 뫼(멱=覓)가 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장여인의 부친 장학수(張鶴壽)는 유학에 뜻을 둔 집안이었으나 어찌된 셈인지 공맹(孔孟)을 따르는 유학의 교전보다는 땅속의 움직임에 민감한 변화를 내보이는 잡학(雜學;점술이나 풍수지리학)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가까운 지인들을 만나면 이런 말을 예사롭게 던졌다.

“우리가 한양에 터를 내리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종남산(終南山)이기 때문이네. 조선 시대에는 모든 봉수가 하늘로 올라와 횃불 통신망이 끝나는 지점이 남산이므로 종남산이라 했네. 한양의 풍수설을 보면, ‘한양을 넘지 않으면 만대에 바람이 일고, 한강 남쪽에 나라를 세우면 나라가 둘로 갈라질 것이’라 하여 이곳이 남하(南下)의 한계라는 의미로 종남산이라 하였다.”

그런가하면 인경산(引慶山)에 대한 의미도 풀어냈다. 인경산을 인경산(引京山)이라 한 것은 도읍지가 개성에서 한양으로 온 것이므로 서울(京)을 이끌어 온(引) 산으로 풀이했다.

또한 잠두봉(蠶頭峰)이란 남산 서쪽의 머리 모양이 강건너 잠실쪽에서 보면 누에의 머리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에는 남산의 풍광(風光)을 ‘경도십영’의 하나인 목멱상화(木覓賞花)라 했다. 그녀의 부친 장학수는 한 번 입이 열리면 십리 쌀(찐쌀)을 먹은 듯 쉼 없이 좔좔거렸다.

“조선시대엔 남산팔영(南山八詠)이 있었다. 그 첫째는 북쪽 궁궐을 가로지른 구름이요, 둘째는 장안을 안고 구비 도는 한강이며, 셋째는 바위 밑에 핀 꽃이요 넷째는 고개마루턱의 늙은 소나무고 다섯째는 이른 봄의 답청(踏靑) 놀이, 여섯째는 9월 9일의 등산놀이며, 일곱째는 4월초파일 장안의 관등놀이 야경이고, 여덟째는 깨끗한 골짜기 물에 갓끈을 씻고 세상 명리를 잊는 걸 말한다.”

훗날의 일이지만, 이곳 남산 꼭대기 동쪽에 국사당이 있어 남산의 산신 목멱대왕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는데, 일제가 이를 철거하고 자기네가 숭상하는 ‘아마테라스 오호미가미(天照大神)’의 일본 신사를 세워 목멱산의 기를 누르려 하였다.

지금은 어떤가. 남산은 뱃속에 터널이 생겨 열십자로 관통하고 꼭대기에는 송신탑과 전망대가 생겼으며 중턱엔 호텔과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이미 풍수지리설은 머리통까지 짓밟힌 지 오래다.

장학수는 한양의 지세를 살펴보면서 그런대로 무병장수 할 곳으로 이춘구(李春九)라는 장삿꾼의 집터를 꼽았다. 그곳에 딸 아이가 터를 내리면 장차 부귀와 영화가 찾아들 것이라 서슴없이 권한 것이다.

과연 그의 부친의 말처럼 남편 이춘구는 천애 고아나 다름없었지만 하는 일마나 운이 따라 큰 재산을 이루었다. 일곱 해 전의 가을에는 곳곳에 농작물이 풍년인 탓에 집안에도 먹을 게 푸짐했다. 그러나 마음자리가 편하지 못한 것은 혼인한 지 십여 년이 다 되도록 일 점 혈육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곱 해 전의 이날, 이춘구의 부인 장씨는 지네(蜈蚣)에 물린 채 목숨을 잃었었다. 사건을 기록한 당시의 시장(屍帳)엔 특별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초검관은 의미있는 사항을 지적해 놓고 있었다.

<···이춘구의 부인 장씨의 몸엔 상처가 있는 곳에 벌레에 물린 듯한 상흔이 있는데, 주위가 파랗게 부어오르고 퍼랗고 누런 물이 흘러나오며 독기가 사지에 흘러들었다. 그리하여 얼굴이 검어지는데 이것은 지네의 독으로 인한 사망이다···.>

시장의 뒷부분엔 흥미로운 초검관의 견해가 적혀 있었다. 그는 사건이 일어난 장여인의 방에 대해,

<···방안은 추석이 멀지 않고 겨울이 가까워진 탓에 벽지를 새로 바르고 창호지를 바르는 등 새로운 단장을 끝낸 뒤였다. 그래서 사건 직후 초검관으로서 현장에 당도했을 때 집안은 윤기가 있는 듯 곳곳이 반들거렸다.

이춘구의 부인 장씨가 잠을 잔 그 방에는 문고리가 겹으로 채워져 있었기에 외부인이 출입한 흔적은 없었다. 그러나 의심난 것은 이춘구의 부인 장씨가 잠을 잔 그 방문엔 손가락 굵기의 구멍이 뚫려 있어 그곳으로 지네와 같은 독물이 출입한 것으로 보이나 문제는 방문 앞쪽 석 자 거리에 뜨거운 기름 음식(고추가루 등의 향신료를 쓰지 않은 음식)을 엎지른 듯한 흔적이 있었다.

이를 이상히 여겨 집안 사람을 추궁하는 데 이춘구의 조카 이창섭(李昌燮;당21세)이 증언하여 말하기를, ‘여기 있는 기름 흔적은 두어 달 전에 있었던 이춘구의 부친 기일이라 음식을 장만한 뒤의 흔적’이라 하였고, 문에 손가락만한 구멍이 뚫린 것은 당시 이집에 온 어떤 어린아이가 손가락을 잘못 놀려 뚫린 것이라고 증언하였다.

초검관은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주위 사람을 불러 확인해 보았는데 창섭이란 젊은이의 말 대로였다.>

집안 사람들이 부인을 발견한 것은 용인에서 온 찬모가 깨운 11시경이었다. 그것은 평소보다 4시간이 지난 후였다. 이 부분에 대해 초검관은,

<···내가 찬모를 불러 왜 평소보다 4시간이나 늦게 깨웠느냐 했더니 장씨가 창섭이 청년에게 그런 말을 전했다는 것이다. 내가 급히 부엌살림에서 마른 명태가 있는지를 살펴보라 했는데, 평소엔 자주 보이던 물건이 이날따라 한 마리도 없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동태는 수정물(水精物)이다. 겨울 태양에 차게 말리므로 낮에는 바짝 마르고 밤에는 차갑게 굳어지니 간유분(肝油粉)이 합성되기 마련이다. 수기와 화기는 수정(水精) · 화신(火神)으로 화하므로 화상을 입거나 동상을 비롯하여 동독(凍毒)과 벌레독 치료에 필수적인 약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