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 손에 쥔 ‘한 일(一) 자

금역을 설치한 지역 가까이 사람들이 밀려들자 신참 순검들은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구경꾼들 사이를 누비며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정문원과는 달리 다인(多仁)은 입마개를 하고 검험에 들어가 시형도(屍形圖)를 작성했다.

이것은 시신이 나자빠진 모양과 시체 주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간단히 약술하고, 인체 구조의 각 부분에 일어난 상처 등을 표기해 초검관(初檢官)이 결론을 내리기 쉽게 하기 위한 예비 조서였다.

상대가 여인의 몸인지라 안에는 다인 홀로 들어간 채였고, 발을 친 문밖에서 등을 돌린 장율하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옛 서적에 이르는 말이 있다. 권축(拳縮)이다. 이 말의 뜻을 아느냐?”

평소 이 부분에 대해 연구가 있었던지 다인의 대꾸가 곧바로 날아왔다.

“불에 타 죽으면 몸이 오그라드는 것이 ‘권축’입니다.”

“사고가 일어난 곳에 불기가 있었으니 화기로 인해 주검은 물기를 빼앗겼을 터. 먼저 입안을 살펴라!”

“그을음이 없습니다.”

“하면?”

“이미 기식(氣息;호흡)이 끊어져 닫힌 입안에 연기가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별당이 살아 있었다면 뜨거운 불길을 피하려 움직였을 것이고, 따라서 입은 열린 채 허우적거려 기맥(氣脈)은 왕래했을 것이다. 이것은 입안에 그을음이 차게 된다. 코도 마찬가지다. 뉘어진 주검의 등 쪽만 탄 것으로 보면, 이것은 사후(死後)에 불을 지른 흔적이다.

다시 장율하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주검은 어떤 모습인가. 정좌인가 옆으로 누운 자세인가?”

대개 불에 타 죽었을 때엔, 옆으로 누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손과 발, 머리나 얼굴 · 가슴 등에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대체로 끓는 물이나 불 속에 들어가면 양 오금과 둔부, 그리고 넓적다리 뒤쪽에 상처가 생긴다. 만약 데워서 부풀어 오른 부위라면 그 증세가 다른 곳과는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강제로 목이 졸려 살해된 후 시체를 몰래 불 속에 집어넣은 경우 머리털은 누렇게 타고 얼굴에서 전신에 이르기까지 위 아래가 검게 탄다. 피부는 쪼그라들어 쭈글쭈글 해지고 진물이나 피부가 벗겨진 데 없이 목 아래 졸린 흔적이 나타난다. 이것은 사후 불에 던져진 경우다.

“방안의 재를 쓸고 영초에 절인 종이를 깔아라.”

한 시각이 지나자 이곳저곳의 종이에 붉은 기운이 일어났다. 피였다. 주검은 불에 태워지기 전 누군가의 칼에 찔려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상한 것은 죽은 자의 왼손이었다. 너무 꼭 쥐고 있어 그것을 펼치는 데 상당한 시각이 지났는데 안에서 나온 것은 ‘한 일(一)’ 자가 쓰인 종이였다.

검안(檢案)의 기본 원칙은, 기와집이나 띠로 얹은 집에서 불에 타면 시체가 지금처럼 기와나 띠 밑에 있게 된다. 혹 다른 사람과 원수가 되어 그 사람이 기회를 틈타 불에 밀어넣어 타 죽게 했다면, 시체는 기와나 띠 위에 있게 된다. 이런 때는 머리와 발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지도 아울러 조사하게 된다.

불에 전소되었다고는 하나, 지금처럼 윗지붕의 구조물이 무너져 내려 주검을 덮은 경우 시체는 온전해지기 마련이다. 그때까지 살아 있어 죽음을 피해 도망쳤다면 당연히 입안엔 그을음의 흔적이 남는다. 입과 코 안에 검은 재와 그을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 흔적이 남았다면 생전에 죽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사후의 죽음이다.

일단 경위원 사체보관실로 주검을 옮기고 시장(屍帳)을 작성했다.

“별당에 불이 난 것은 도검에 의한 상흔을 감추기 위한 것으로 다행히 천장이 쏟아진 바람에 상흔이 나타난 것을 똑똑히 볼 수 있다. 상흔은 양혈분골(養血盆骨;젖 위의 우묵하게 꺼진 곳)로 폭이 좁고 깊다. 이로보아 우발적으로 일어난 게 아니라 계획된 살인이다.

사후 날붙이에 치상이 있었다면 응고된 피의 흔적을 주위에서 발견할 수 없었을 터! 고초(강한 식초)를 뿌리자 흔적이 즉시 나타났으니 이것이 치명타일 것이다. 그런 다음 방 안에 불을 놓아 태운 것인데···, 황촉이 넘어져 불이 난 것으로 보기 쉽다.

해서 문제는 왜 별당의 손에 ‘한 일(一)’자가 쥐어져 있는질 규명해야 할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처음부터 수사를 맡았던 정문원이 의견을 내놓았다.

“불이 난 이부자 집, 그러니까 이춘구(李春九) 영감은 오래 전에 장삿길로 나섰다가 큰 돈을 모았답니다. 들리는 소문엔 곳곳에 땅을 사놓아 그것이 조금만 지나면 큰 돈으로 바뀔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이춘구 영감은 쉰다섯에 부인을 사고로 잃고 일곱 해 가까이 홀로 산 모양입니다. 그런 이부자가 지금의 부인을 맞아들인 것은 장안에 떠다니는 소문 때문으로 늘그막이 자신의 건강이 나빠지자 별당을 후취로 맞아들여 두 가지 토끼를 잡으려 들었습니다. 늙음과 함께 찾아오는 고적한 외로움과, 아직은 사내로서의 충만한 기력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별당을 맞아들인 그날 밤 하늘이 내린다는 ‘명림’이란 신물이 나왔으니 이부자로서는 꿩도 잡고 알까지 줍는 효과를 본 게 아닙니까? 그런데 그게···, 별당에게는 죽음에 이르는 첫 번째 계단이었어요.”

정문원은 곧 일곱 해 전에 일어난 이부자 댁의 살인사건을 들추었다. 언제 시장(屍帳)을 검사했는지 그의 곁에는 한아름이나 되는 이부자의 부인 장용자(張瑢子) 여인의 기록이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