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우. 내가 방물을 팔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니 이젠 척 보면 얼굴을 살피는 것으로 반은 길바닥 점쟁이우. 내가 역술이다 뭐다 하며 궁지랄 떠는 대갓집 점쟁이 보단 훨씬 낫수! 사주 육갑 안 짚어도 일 년 열두 달 근방 안 다닌 곳이 없으니 개 벙거지 걸치듯 그런 말을 뒤집어쓰고 다니우.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내가 마흔이 되도록 길바닥에서 품을 팔지 않았수. 그러다보니 이쪽 십여 리 안팎의 집들은 사정을 뻔히 아우. 더구나 이 댁은 한 달이면 두서너 차례 들락거렸으니 사고가 난 분에 대해서는 우리집 숟가락 숫자만큼이나 알고 있다우.”

말은 걸쭉하게 하면서도 방물장수 아낙은 때절은 가재 수건을 눈에 붙이며 찔끔대는 눈물을 닦아냈다. 그것이 남 보란 듯한 허망한 몸놀림이 아니었고, 오로지 인정 많고 정에 겨운 분이라는 사실에 그런 것임을 정문원은 한 걸음 뒤에서 새겨듣고 있었다.

방물장수 아낙은 감회 때문인지 눈시울을 적시며 뒷말을 떨어뜨렸다.

“별당 아씨는 태어날 때부터 배냇병신이란 말을 들었어요. 어찌된 일인지 왼쪽 손을 꼭 쥐고 세상에 나왔다지 않습니까. 얼굴은 천하의 사내들이 침을 흘릴 정도의 가인이었는데 왼쪽 손을 꼭 쥐었으니 부모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컸겠지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별당 아씨가 노래하고 춤추는 게 절창(絶唱)이라지 않습니까. 그래서 별당이 성장할 때는 이 사람 저 사람이 불러 노래시키고 춤추게 하면서 먹을 것과 용돈을 주었답니다. 어느 날 그 마을 뒷산에서 움막을 짓고 산다는 나이든 무당이 마을로 내려왔다가 혀를 차더랍니다.”

곁에 있는 아낙은 궁금증이 동해 바짝 붙었다.

“무당이 왜 혀를 찼다는 거유?”

그제야 방물장수 아낙은 입가에 잔웃음을 띠운 채 방향을 슬쩍 돌려버렸다.

“에이구, 내 정신 좀 봐. 이런 곳에 오면 이 근방에 사는 것처럼 착각을 한다니께. 나는 하찮은 물건을 파는 방물장수 아낙인데···.”

이런 말이 쏟아지면 개중의 한두 아낙은 빗이며 골무, 또는 바늘이나 실꾸러미를 구하겠다는 말을 하여 뒷얘기를 털어놓게 만들었다. 일단 물건을 팔 상대가 확보되면 방물장수 아낙의 얘긴 탄력이 붙는다.

“나도 들은 얘기라 자세히는 모르오. 그러나 이 바닥에서 눈치 하나로 굴러오다 보니 옳고 그름과 길고 짧은 것은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에구 이 사람아. 마을에 내려온 무당이 뭐라고 했는가 그 말이네?”

“얼굴을 쓰윽 보더니 인물 값 하겠더랍디다. 그리고는, 아이 이름을 묘할 묘 자에 꽃 화자를 써 ‘묘화(妙花)’라고 지으랬다지 뭡니까?”

“묘화?”

일행들이 어리둥절해 하자 방물 장수 아낙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라는 듯 넌지시 운을 떼었다.

“나도 들은 얘기라 사실인지 어떤 지는 잘 모르오. 중원에는 도학(道學)이라는 법술이 있는디, 그 사람들은 계집애들을 사내들의 도구로 생각한다지 뭡니까. 그래서 사내와 계집은 남녀칠세부동석에서 한 걸음 더 나가 나이 열넷이면 혼례를 치른다지 않습니까. 여인의 몸으로 보면 아직도 여물 곳이 덜 여물었는데 시집을 가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그 이유가 뭐유?”

“내가 그 이유를 말하기 전에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달팽이 어멈도 그 나이 때 시집 왔고, 종달이 숙모도 그때 왔잖습니까.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때 시집온 것은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내가 들으니 나이 열넷의 그때가 여인네의 몸에 음기가 가장 성하다고 합니다.”

“음기?”

“아, 방사를 치르려면 사내들은 양기가 강해야 해요. 그러는 것처럼 여인네는 음기가 성해야죠. 그 나이가 ‘기러기가 앉았다 날아간다’는 홍상미판(鴻上未判)이라는 열넷의 나이래잖아요. 그러니께···, 별당의 이름을 ‘묘화’라 한 것은 ‘묘(妙)’라는 글자가 열넷이라는 나이를 뜻한다는 거지요.

아주 작은 계집(女+少)을 ‘묘할 묘’라 부르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더구나 그 어린 계집에게 나이든 무당이 뭔가를 가르쳤다지 뭡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