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醫)란 글자는 화살(矢)이나 창(殳)을 맞아 상처가 있을 경우 술(酉)을 부어 상처가 덧나지 않게 치료하는 걸 뜻한다. <주례(周禮)>엔 ‘날이 없는 창’(兵器無刃戟)이라고 설명한다. 좀더 가까이 접근하면 이런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의인(醫人)’은 도검류나 활 등으로 상처를 입을 경우 치료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반면에 의인(毉人)은 귀신에 들렸거나 중언부언 헛소리를 하거나 예언을 한다거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일을 맞추는 사람이다. 신령(神靈)이 있기 마련이니 옛날식으로 말한다면 무당이나 품격 높은 도사 등이 이에 포함될 것이다.

염구의 부친이 의인(醫人)이라면 그 아들은 약간 방향이 다른 의인(毉人)이었을 것이다.

그는 가야 땅의 행인의 왕래를 금지시킨 ‘뱀 바위 냇가’의 비밀을 꿰뚫었다. 중국도 그렇지만 삼한(三韓)에서도 특별히 비밀을 감출 필요가 있을 때엔 ‘비인외전(非人外傳)’이란 말을 많이 쓴다. ‘사람이 아니면 전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바른 이치를 몸에 담지 않았다면 세상에 나가 불필요한 일을 만든다는 말이다. ‘비인외전’ 속엔 함부로 전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다르게는 ‘사람 같은 사람에게만 전하라’는 단서가 붙는다. 그러나 예나 제나 권력을 쥔 당사자는 그걸 모른다. 자신만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어리석게 믿기 때문이다.

이곳 ‘뱀 바위 냇가’도 마찬가지다. 마을 이름은 사암곡(蛇岩谷)이지만 마을을 벗어나 산 중으로 향하는 곳에 실개천이 있었다. 사암천(蛇岩川)이다. 이곳이 사람 사는 세상과 금역(禁域)을 설치한 곳과의 경계선이다.

칠사가 이곳에서 지낼 때 그는 자주 병을 앓았다. 자신이 무슨 이유로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몸에 병이 침범하는지를 몰랐다. 그러나 마을의 건강한 사내들이 골골거리다 목숨을 잃는 것을 보며 이상하다는 생각대신 하늘이 노해 병을 얻었다고 무당을 찾아가 푸닥거릴 하기 일쑤였다.

염씨 성을 쓰는 사내가 ‘뱀 바위 냇가’에 들어와 술을 빚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들은 저주를 받듯 흉한 일을 당했다. 염구(炎鳩)란 사내는 여러 이유를 살피던 중 원인을 찾아냈다. 그것은 지형적 영향이었다.

마을 이름과 실개천이 흐르는 냇가를 ‘사암천’이라 부른 건 냇가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중간 어림에 듬직한 바위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 바위로 인해 ‘뱀 바위 마을’과 ‘뱀 바위 냇가’란 이름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뭔가? 왕주(王酒) 빚는 것을 미뤄둔 채 그 원인을 찾아 여러 날을 헤매던 중 비오는 날을 맞이했다.

실비(細雨)가 쏟아지는 날이었는데 멀지않은 곳에서 ‘철썩 철썩’이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어찌 들으면 그 소리는 비오는 냇가에서 빨래방망이를 두드리는 것도 같았고 떡을 빚을 때 떡메를 휘두르는 것도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원인이 밝혀졌다. 그곳엔 수많은 뱀들이 뒤엉켜 바위 위에서 굴러내리며 꼬리로 바위를 치는 소리였다. 산 속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비가 오면 문밖출입을 하지 않는 것은 그 소리가 주는 불길함에 가뜩이나 공포에 질려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이제까지 지내왔다. 자신들이 무슨 병을 앓고 있으며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무당이 벌리는 하늘이 내린 죄의 씻김이라 생각하여 이제껏 ‘씻김굿’을 해 왔는데 염구에 의해 그 원인이 밝혀진 것이다.

“이제까지 사람들이 급살을 당한 건 수독(水毒) 때문이다!”

이런 진단을 내렸을 때 칠사는 어떤 ‘수독’인지 그 이유를 물었다.

“이곳 뱀 바위 냇가엔 벌레가 있는데 그 이름이 단호(短狐)다. 왕실에 기록된 문서를 살피니 어떤 때는 사공(射工)으로도 불렸다. 이 벌레는 눈알이 없으나 귀가 밝아 물 속에서 사람들의 말 소리를 알아 듣고 입으로 독을 쏘는가 하면, 사람 그림자를 보고 독을 쏘기 때문에 사람이 그 독을 맞으면 더웠다 추웠다 한다. 그 전에 죽은 사람들을 보면 몸에 일체의 상처가 없고 반점(斑點)과 울혈(鬱血)이 생기는 것은 단호의 독이 몸에 침범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오랫 동안 방치했기에 죽은 것이다.”

“그러면 저도?”

“넌 아니다.”

“예에?”

“뱀 바위 냇가엔 단호의 독보다 더 무서운 독물이 있다. 그건 사슬(蛇蝨)이다. 이것은 뱀의 비늘 속에 있는 벌레로 여름엔 이 벌레가 뱀의 괴롭히므로 뱀은 개울이나 여울목에 나와 몸뚱이를 부딪쳐 사슬을 털어낸다. 뱀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사슬은 모래 속으로 들어가 숨는데 이곳엔 모래가 없으므로 자갈 속에 숨어 있다 물을 건너는 사람들의 발 속에 스며든다. 사람이 그 독을 받으면 침구멍에 좁쌀같은 것이 생기는데 둘레엔 어느 틈에 다섯 가지 빛깔이 어린다. 이 독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으면서도 원인을 몰라 지금까지 잠잠한 것이다.”

염구는 한 가지 약재를 주어 일시나마 칠사의 병을 치료해주고 꼬리를 달았다.

“지금은 나라가 위험하니 너의 몸을 완치시킬 수는 없다. 그러니 신라 태후의 힘이 넘치는 집에 들어가 그곳에서 검술(劍術)을 익히며 기다리면 어느 땐가 너의 치료약을 든 자가 나타날 것이다. 그리하면 너는 치료약을 받고 그 자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지를 전해주거라.”

이 날 미실이 전해 준 염랑엔 한 움큼의 마늘이 들어 있었다. 사슬(蛇蝨)의 독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건 특효약이 마늘(蒜)이었다.

▲의(醫)와 의(毉)는 같은 글자지만 쓰는 용도에 따라 다르다.

▲마늘(蒜)이 우리나라에서 재배된 것이 아님을 볼 때 사슬(蛇蝨) 독이 스며들면 거의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구명검은 첩보원(細作)들이 사용하던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