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주는 이제 죽은 것입니다. 죽었으니 몸엔 정신이 머물 수 없지요. 그대는 나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독에 취했으되 느낄 수 없는 것은 술 속에 숨은 벌레가 몸 안의 어딘가에 터를 내렸기 때문이오. 아직 그대가 믿질 않으니 내가 시범을 보여주겠소.”

염씨 성을 쓰는 사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것은 곧 미실에게 전해졌다. 뜨거움일까. 아니면 따사로움인가. 그녀는 잠깐 동안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몸에 직접 닿는 건 없었지만 그녀는 뜨거움으로 고통을 느끼는 것 같았다.

불화로 속에 들어간 것일까. 두 손을 마구 휘젓고 앞에 있는 무언가를 후후 불어대는가 하면 화로 속의 재가 머리에 내려앉는지 마구 머릿결을 털어댔다. 염선생이 빙긋 웃었다.

“어떻소, 낭주?”

“도무지···, 내 뜻대로 할 수 없어요. 왜 그렇지요? 내가 정신을 빼앗겼나요?”

“아닙니다. 낭주의 정신을 내가 장악했기 때문이오. 술을 마시는 것만으로는 길어야 사흘이지만 정을 나누었을 땐 해독제를 먹지 않는 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이러한 법술은 무당들이 잘 썼기 때문에 ‘고(蠱)’라는 걸 오히려 주술이라고 부를 정도였답니다.”

“그럼 저도 염선생처럼 그런 술법을 쓸 수 있나요.”

“물론이오.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 술법은 자신의 타액(唾液)이 들어있는 병에 왕주(王酒)를 넣어 주문(呪文)을 왼 후 그것을 상대방에게 마시게 하면 됩니다. 겉으로 보면 이상한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냥 술을 한 잔 마셨을 뿐이지요. 그러나 술을 마심으로써 이미 당사자는 상대의 법술에 빠져 노예나 다름없게 변합니다.”

미실로서는 이런 술법이 있는지를 지금에야 알았지만 들을수록 신기한 생각에 호기심이 번들거렸다. 모든 걸 제쳐두고 자신이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염선생이 잠시 자리를 비키자 그녀는 자신의 타액이 든 병에 왕주(王酒)를 채우고 염선생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한참 후 돌아온 그가 말했다.

“서악은 신성한 곳이긴 하나, 길의 곳곳엔 위험한 것들이 도사리고 있어요. 낭주께서 마신 옹달샘에도 칠성사가 죽어 있으니 누군가가 그것을 마셨다간 살아남지 못합니다. 더구나 이곳은 금역(禁域)으로 행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으나 가끔은 낭주처럼 길 잃은 사람들이 찾아들기 마련입니다. 그런 때를 대비해 비방이라는 걸 마련하지만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염선생의 말을 종합하면 그런 것이었다. 산중의 독성이 있는 약초나 독이 있는 짐승들도 무고(巫蠱)의 독을 쓰면 자신이 조정할 수 있다고 했으나 그것만큼은 삼갔다. 지네나 독사 같은 건 미실에겐 진저리치는 것들이었으므로 그것들 가까이는 아예 가지 않았다. 염선생이 말했다.

“스승님이 돌아가신 걸 낭주께서 알고 있으니 말을 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잠깐 말씀드렸듯 스승님이 돌아가신 후 시생은  서악에 갇혀 왕주(王酒)를 제조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왕족의 한 사람이 이곳에서 가야의 술을 제조하라는 명을 내리고 돌아갔으나 내일쯤 이곳에 들러 그것을 확인하리라 생각 되오. 들리는 소문엔 그 자가 제왕이 마실 술을 감시 · 감독한다고 했으니 낭주가 그 자를 수중에 넣는다면 월성으로 돌아가기가 쉬울 것이오.”

타액(唾液)이라 부르는 ‘침’은 특색이 있는 물건이다. 이것은 뇌수(腦髓)의 노화현상이나 성기능과 관계 있다. 동물들은 상처를 입으면 혀를 이용해 상처 부위를 빤다. 날벌레 등의 공격으로 상처를 입을 경우 우리의 할머니 들은 혀로 핥고 침을 바른다. 의학적으로 볼 때 타액은 이하선(耳下腺)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타액선을 통해 입안으로 들어오는 도중 체내로 흡수돼 버린다.

이 호르몬이 파로친(parotin)인데 피부가 노인처럼 쭈글쭈글 해지거나 위축현상이 오거나 색소집착이나 탈모 등이 올 때는 파로친의 분비장애라고 보는 게 옳다. 현대의학에서는 앞서의 증상이 오면 ‘파로친 주사’를 맞아 피부를 싱그럽게 하여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다.

부부간의 성생활 중 키스는 하나의 관문이지만 이때 남녀가 서로의 타액을 교환하여 빨아들이는 것은 중요한 일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게 옳다. 흔히 말하는 <시몬즈> 병에 걸리면 열세 개나 되는 호르몬이 모조리 붕괴돼 버린다. 그러므로 성욕과 식욕은 저하되기 마련으로 종내에는 송장처럼 굳은 채 죽는다. 그만큼 타액은 우리 몸의 중요한 호르몬선이다. 염선생이 말한다.

“중원의 선도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타액은 서로가 나누는 것이지만 ‘무고(巫蠱)’의 비법을 펼쳤다 해도 조심해야 할 것은 호흡입니다. 타액과는 달리 입에서 나오는 호흡은 독가스가 함유된 것이므로 상대가 뿜어내는 호흡은 결코 마셔선 안 됩니다.”

▲고(蠱) ; 중국에서는 저주의 술법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고’를 주술사라고 했다.

▲방울머리검은 전투용 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