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명궁의 소식은 득달같이 사도왕후에게 전해졌다. 대왕의 명으로 보명궁 약사(藥師)로 임명받은 사사는 취조 상황이 곱지 않은 쪽으로 흐르고 있음을 다급하게 고했다.

“태자마마의 죽음을 조사하는 판관의 눈빛은 아무래도 미실 낭주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몇 사람의 취조를 마치고 이젠 미실 낭주에게 그날 밤의 정황을 묻고 있으나 일의 형편이 곱지 않음을 알 수 있나이다.”

“특별한 일이 있다는 얘기냐?”

“예에, 마마. 어사대 판관 설추경이 설화랑의 봇짐에서 특별한 것을 찾아냈습니다.”

“그게 뭣인고?”

“허리띱니다.”

“허리띠?”

“예에, 마마. 그 허리띠는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태자마마가 허리에 두르는 것으로 한 달 전, 미실 낭주에게 선물했던 것이랍니다.”

“그런데 그게 왜?”

“지난밤 세종 전군이 궁을 다녀가고 부제인 설원랑이 보명궁에 들르게 돼 한동안 음률에 관해 얘길 나눴었는데···, 그 즈음에 사고가 난 것으로 보여집니다. 미실 낭주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허리띠를 줬다고 했으나 설화랑은 다른 말을 했다고 합니다.”

“다른 말이라니?”

“허리띠를 받은 건 악기와 음률을 얘기한 후였다고 한 모양입니다. 그렇다 보니 판관의 입장에서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금백(金帛)으로 만든 허리띠를 지니게 됐는지를 추궁한 모양입니다. 그렇게 되어···.”

“그것을 태자가 미실에게 준 게 밝혀진 것이냐?”

“그러하옵니다. 허리띠가 보통의 것이었다면 크게 문제될 게 없으나 금백으로 세공된 것인 데다 나라의 중요행사에 사용되는 것이므로 판관의 시선을 벗어나기 힘들었나이다.”

“미실은 지금 입을 다물고 있느냐?”

“아니옵니다. 자신의 허물을 모두 고하고 보명궁에 칩거한 상탭니다. 판관의 명이 있을 때까지 어느 누구와도 만나선 안 되며 궁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나이다. 왕후마마, 조사를 하던 초창기엔 ‘댕견’으로 인한 사고가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니고 태후전에서 손을 쓴 것이란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 이윤 댕견의 먹이를 주는 또출(又出)이란 자가 태후전의 설약사 부도를 지닌 채 북문을 통해 입궁했기 때문입니다.”

“그 자는 지금 어딨느냐?”

“어사대 지하 감옥에 갇혀 있나이다.”

“허면, 판관은?”

“태자마마의 죽음에 대한 경위서를 작성하고 있는 줄 아옵니다. 내일 아침 조아(朝衙)엔 남당으로 나가 대왕마마를 찾아뵈리라 보옵니다. 하오니, 미실낭주를 구해낼 시간은 지금뿐인 줄 아옵니다.”

“대왕께서 놀라시는 건 차치하고 크게 분개할까 두렵구나.”

“···.”

“사내들은 제가 가지고 있는 걸 누군가가 기웃거리면 분노하지 않더냐. 미실이 어떻게 왕실의 귀물인 허리띠를 지니게 됐으며, 그 일에 태자가 관련돼 있는 것을 알면···. 대왕의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닐 터인데 이 노릇을 어찌 한다. ···이보게, 사사.”

“예에 마마.”

“미실이 모든 걸 자인(自認) 했다던가? 자네 말대로 태후전에서 일을 꾸민 게 분명한데 태자가 개에 물려 죽은 허물을 미실이 책임져야 한다는 게 너무나 허무하네.”

“마마, 우선 미실 낭주를 피하게 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남도의 연회에서 돌아온 뒤 새주(璽主)의 교지를 받은 것과 원화(源花)를 내놓고 자연으로 돌아가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간이 상소를 올리시면 대왕께서 어여삐 여기시리라 봅니다.”

“···.”

“미실 낭주를 구할 길은 그것밖에 없나이다. 하오니···.”

“사사는 지금 곧 미실에게 가서 나의 뜻을 전하라. 내가 미실과 대원신통의 맥을 키우려 했더니 천지신명이 샘을 내 오늘의 처지에 이르렀으니 대왕에게서 받은 교지와 첩지를 모두 내놓고 할머니가 세운 산사(山寺)로 들어가 비구니가 되겠다 대왕께 글을 써라. 당장의 위급을 피할 방법은 그것뿐이니 사사는 서둘러 전하거라. 상소의 글을 마치면 동문으로 나가 왕후인(王后印)을 찍은 부도를 보여주고 미실을 탈출시켜라.”

“예에, 마마.”

사도왕후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그것뿐이었다. 생각같아서는 손안에 금백이라도 듬뿍 쥐어주어 만약의 사태에 어려움이라도 없게 피해나가게 하고 싶었으나 이것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다 보니 급한 대로 마련한 계책이 그것이었다. 부산스러운 보명궁과는 달리 월성은 하룻밤이 조바심치듯 지나갔고 조아가 끝난 남당에서 어사대 판관이 독대(獨對)를 청하자 대왕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맞아들였다.

“그래, 진전이 있었는가?”

“말씀을 드리기 전, 대왕께옵서는 이 물건을 살펴보옵소서!”

판관이 내놓은 물건을 의아스럽게 바라보며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금백(金帛) ; 금을 사용하여 만든 물건

▲조아(朝衙) ; 조회

▲독대(獨對) ; 단 두 사람이 만남

▲금을 사용한 허리띠는 나라에 경사스러운 일에만 사용하는 귀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