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자 어사대에선 또출(又出)이를 심문하려 보명궁 장원을 추국장소(推鞫場所)로 정하고 관련자들을 끌어냈다.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배려한 일이지만 진흥왕은 아직도 태자가 죽은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에 설추경을 크게 흔들었다.

  “판관은 들으라.”

“예에, 마마.”

“이번 사건은 다음 보위를 이을 태자가 살해됐다는 점에 유의해 속전속결로 조사하라. 세종 전군이 근무지에서 저녁 늦게나 도착할 것으로 보아 판관도 마음을 느긋하게 가진 듯 하나 과인이 이번 일에 잠시도 눈을 팔지 않고 있음을 유념하라.”

“예에, 마마.”

“그 동안의 조사로 세종전군에게 혐의점을 찾았는가?”

“아니옵니다, 마마. 소인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전군마마는 ‘댕견’에 대해 아는 바 없으며 월성에 당도한 그날도 태후마마께 인사도 올리지 않고 떠났나이다.”

“부제는 보명궁에 있지 않았는가?”

“미실 낭주가 보명궁에 머무는 걸 부제가 나중에 알았기 때문입니다. 세종 전군께서 보명궁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부제가 보명궁을 찾아갔다가 우연히 미실 낭주와 얘기 중이었다 하옵니다.”

“허면, 그 무렵에 사고가 났다는 것이냐?”

“그러하옵니다. 두 사람이 얘기 중이었기에 태자마마가 담장을 넘은 걸 까맣게 몰랐다 하옵니다.”

“태자가 무슨 일로 담을 넘은 것인가?”

“그 이유도 조사 중에 있나이다. 소인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태자마마는 왕족과 귀부인들에게도 워낙 장난이 심하였고 생각밖의 일을 하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일 또한···.”

“그만 물러가라. 다시 한 번 말하노니 판관은 한 점의 의혹도 없이 명명백백 사실을 밝혀내라. 과인이 입이 닳도록 말하지만 지위고하는 따지지 말지어다.”

설추경은 보명궁을 내려오면서 근심이 깊어졌다. 정황으로 본다면 가장 의심이 가는 인물이 세종 전군이다. 그러나 의심이 갈만한 행동은 전연 하지 않은 채 백제군과 대치한 부임지로 떠나버렸다. 한때는 자신의 아내였던 사람이 대왕의 후궁이 됐다 하여 앙심을 품거나 억화 심정을 가질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럴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학문을 좋아하고 마음이 여린 전군이 흉측한 일을 꾸민다는 건 생각해 볼 수 없었다.

그렇다보니 부제인 설원랑도 마찬가지였다. 풍류주와 함께 월성에 왔다가 보명궁에 잠시 들른 것뿐, 특별한 일을 꾸민 근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서 태자를 죽일만한 증거를 찾는 건 전연 당치않은 일이었다.

‘그렇다면 미실은 어떤가?’

그녀라면 의심이 갈만한 구석은 있다. 내명부에 흘러 다니는 소문엔, 진흥왕이 그녀와 남도에서 연회를 열었을 때 태자가 부자(附子)를 먹었다고 급보를 보낸 건 미실 때문이란 소문이었다. 그런 걸 보면 미실 낭주는 대왕과 살을 섞으면서도 동륜태자와 은밀한 일을 삼각으로 엮을 가능성이 높았다. 대왕이 어느 때 불쑥 보명궁에 찾아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태자가 들이닥친 것은 어느 모로나 미실에게 위태로운 외줄타기였다.

그런 것으로 보면 미실 낭주는 개를 풀어 쫓아버리려는 의도였는데 예기치 않게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일 수도 있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정작 미실 낭주가 태자마마와 그런 사이라면 이것은 역모에 버금가는 사건이니 월성에 피바람이 불 건 당연하다. 부왕의 총애를 받는 계집을 태자가 기웃거렸다면 왕실의 권위는 어디로 떨어지겠는가.’

태자의 허물이든 세종 전군의 과실이든, 아니면 미실의 과용이 저지른 일이건 무엇이건 밝혀지는 그 일은 왕실에 큰 타격이었다. 그렇다고 아예 관련없는 쪽으로 몰아놓고 일을 처리하는 것도 살갑지 않아 설추경은 일단 궁 안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려놓았다.

‘세종 전군이 당도하려면 시간이 있어야 할 것  같으니 우선 댕견의 주인 또출(又出)이에게 으름장을 놓아야겠다.’

어사대 사령에게 분뇨통(糞尿筒)을 준비시키고 두 팔과 다리를 뒤쪽으로 묶은 다음 기다랗게 줄을 늘어뜨려 녀석의 몸을 허공에 대롱거리게 만들었다. 바로 밑에는 엮겨운 오물이 질퍽하게 굳어있는데 그것을 허공에서 내려다보는 또출이는 공포심으로 질려 있었다.

“아이구, 나으리. 소인은 죄가 없습니다요. 소인을 살려 주십시오!”

“나는 너를 죽일 생각이 없다. 모든 걸 사실대로만 말하라. 아직도 너의 뒷배를 감추고 얼렁뚱땅 딴소릴 할 생각이냐? 네가 그럴 의도라면 지금 말하는 게 좋다. 내 너의 뜻을 가상히 여겨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켜 주겠다.”

“아이구, 아닙니다요. 모든 걸 다 말씀드리겠나이다.”

“그렇담, 어디 들어보자. 과연 네가 진실을 말하는지 들어볼 것이다. 그래, 너는 누구의 지시로 월성에 들어왔느냐?”

“말씀드리기 전에 나으리께서 소인께 한 가지만 약조해 주십시오.”

“뭣이냐?”

“우선 주위를 물리시고···.”

“그 것뿐이냐?”

“소인의 목숨을 살려주라는 것입니다.”

“좋다, 약속하마!”

“아이구 감사합니다.”

“어서 말하라!”

“아, 예에 예. 보명궁의 주인이신 미실 낭주께서 제가 기르는 댕견을 사 가신 후 얼마 안 되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이 당시의 추국은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거나 인분을 이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림의 표시는 마고문자입니다. 나중에 신라인들이 어떤 문자를 썼는지 밝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