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왕으로선 처음 듣는 말이었기에 자연 관심이 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지소태후가 아드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한 말이 아니고 남도(南桃)를 송두리째 진흥왕에게 넘겨주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비밀이 숨어있다는 건 어떤 뜻인가?

“주상의 반생은 어미로 인해 망가진 것이나 다름없으니 남도를 주상께 올려 그 기쁨을 함께 하려는 것이오. 남도의 원궁(園宮)은 복숭아나무가 있는 평범한 곳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이곳은 ‘오마사회’를 펼칠 수 있는 신성한 곳입니다.”

진흥왕이 들은 바로는 쉰네 명의 여인이 발가벗은 채 중원에서 유행한 주지육림(酒池肉林) 놀이를 펼쳤다고 알고 있다. 정말 그런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신라 왕실에 알려진 하(夏)왕조의 19대 제왕 사이계(姒履癸)의 주지육림 놀이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고 봤었다. 그러나 그 연못이 50평방 킬로미터에 배까지 띄울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인지에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런 연못에 술을 가득 채우려면 어느 만큼의 양이 필요할까. 제왕이 마시는 술이니 항간의 싸구려 술이 아니다. 복잡한 주정(酒精)을 거친 술이었을 것이다.

술 연못의 술이 많아도 제왕 이외엔 마음대로 마실 수 없었다. 제왕의 명이 떨어져야 한 모금이라도 마실 수 있었다. 일단은 제왕의 명이 떨어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신라 왕실은 중원에서 전해진 얘기에 실소(失笑)를 깨물었다. 제왕의 손짓에 따라 3천명이 넘는 사람이 일제히 연못가로 기어가 머리를 처박고 술 마시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게 당치않은 일이라고 지소태후는 고개를 저었었다. 물론 그런 숫자가 마실 술도 없었지만 분위기도 문제였다.

“주상, 남도(南桃)의 연회는 ‘피의 밀교의식’을 치르는 곳입니다. 그렇다보니 마음에 들지 않은 구석도 있을 것입니다만 이것은 그냥 유희를 즐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하나로 엮어지는 중요한 무희(舞戱)라 볼 수 있어요.”

“···.”

“자세한 것은 약사가 진행할 것이니 무희에 대한 걱정은 아니해도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남도의 연회가 특별한 것이라지만 그것은 특별한 게 아니라 기이한 것이지요. 지금 남도엔 나의 명이 전달됐으니 주상을 맞을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겠지요. 내일 아침 조회를 마치고 출발하면 저녁엔 ‘피의 밀교 의식’을 치를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지소태후는 아드님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을 생각이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피의 밀교의식’인 오마사회의 ‘비밀 대희락(秘密大喜樂)’을 선보일 작정이었다.

‘피의 밀교 의식’은 엄밀히 말해 여성의 ‘구기(九氣)’에 대해 살피는 것이었다. 놀이가 열리는 그 마지막에 남녀의 ‘혼음(混淫)’이 이뤄지는 이 놀이는 여인의 몸에서 아홉 가지 징후가 발견돼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구기(九氣)란 게 뭔가? 그것은 흥겨운 놀이를 통해 여인의 몸에 나타나는 아홉 가지 징후였다. 오마사회는 예순네 명의 여인이 손에 손을 잡고 원무(圓舞)를 추며 돌아가는 놀이다. 놀이가 열리는 과정에서 약사의 지시를 받은 사내들은 여인의 움직임을 눈여겨보며 점점 흥이 무르익기를 기다린다.

여인이 크게 숨을 쉬고 침을 삼키는 건 폐(肺)에 기운이 찼다는 것이며, 소리내어 스스로의 입술을 빠는 것은 심장의 기운이 충만된 징후며, 허리를 들고 배를 내미는 것은 비장에 기운이 차올랐다는 것이며, 아랫도리가 젖기 시작하는 것은 신장의 기운이 차올랐다는 것이며, 무엇이건 질근질근 깨물고 싶은 것은 뼈의 기운(骨氣)이 차오른 것이며, 사내의 심벌을 만지고 싶은 것은 혈기가 돌기 시작한 징후다. 그런가 하면 사내를 마냥 희롱하고픈 마음이 드는 것은 육기(肉氣)가 차오른 것이다.

이런 징조를 대부분 여인들에게서 느낄 수 있어야 ‘비밀대희락’의 잔치를 열 수 있었다. 이것은 모두 <황제내경(黃帝內經)>에 근거를 두었다.

<황제내경>에 의하면, 간(肝)은 눈(目)으로서 구멍을 이루고, 혀(舌)는 심장의 싹(苗)이며 비장은 입을 주관하고, 폐는 콧구멍을 그의 구멍으로 삼으며 심장은 귀(耳)로써 구멍을 삼는다고 하였다. 이것은 종합적으로 심장은 현관과 합(合)되며 폐는 피부와 합되며, 간은 근육과 합되며 비장은 살(肉)과 합되며 신장은 뼈와 합이 되는 것이다.

진흥왕은 태후의 말을 받아들여 다음날 떠나려는 계획을 하루 앞당겨 실행했다. 미실이 동행한 어가(御駕)가 만월성에 도착한 것은 해거름녁이었는데 성안은 곳곳에 불을 밝히고 어둑해진 실내를 밝게 만들었다. 진흥왕이 앉은 어탑(御榻) 앞쪽으로 수많은 남녀가 춤추며 걸음을 느릿하게 내딛었다. 작은 북소리와 함께 약사의 설명이 바람을 탔다.

“이것은 구법(九法)의 첫째인 용번뭅(龍翻舞)니다. 신국(神國)의 대왕마마께서 이 자리에 납시었으니 이 얼마나 상서로운 일입니까. 더구나 이 자리엔 후비 책봉을 받은 미실 낭주가 자리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북이 빠르게 울리자 춤을 추던 남녀들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났다. 여인을 반듯이 눕히고 사내는 그 위에 엎드려 샅이 바닥에 가려지는 모양이었다. 자연스럽게 여인이 사내의 몸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한 것이다.

▲주지(酒池) ; 술 연못은 50평방 킬로미터였으니 3천 명이 마실 수 있는 술이 찰랑거렸다.

▲용번무(龍翻舞) ; 구법의 첫째인 용번(龍翻)을 춤으로 만든 것이다.

▲와당은 기와의 마구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