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 않은 곳에서 신라금(新羅琴)이 울고 있었다. 애간장을 태우는 선율은 어느 여인의 마음을 나타낸 것인지 깊은 한이 절절이 흘러 닫혔던 정한(情限)이 배어나오는 것 같았다. 아, 그런 말이 있던가. 음(音)을 아느냐는 ‘지음(知音)’이란 말이 있던가. 세상에서는 ‘마음을 아는 절친한 친구’란 뜻이 있던데 과연 그런 것인가.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거문고 달인 유백아(兪佰牙)의 음악을 이해하는 이는 종자기(種子期)였다. 그는 거문고 소리를 좋아한 게 아니고 맹인악사 유백아의 마음이 우는 소리를 좋아했다. 높은 음으로 산울림을 표현하면 그 웅장함이 태산같다 했고, 음의 흐름을 강물로 나타내면 소리의 양양함이 양자강 같다고 격찬했다.

유백아의 거문고 타는 소리는 이 세상에서 단 한사람 종자기만이 알아주는 친구였다고 사람들은 소곤거렸다. 어느 때인가 유백아가 종자기를 찾아갔는데 그는 이미 죽고 없었다. 종자기의 묘 앞에서 한 곡을 뜯고 거문고를 박살내 버렸다. 이제 자신의 음(音)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음악이 뭔가. 마음이다. 아름다운 음악은 마음이 아름답게 채색돼 소리로 비쳐진다. 그러기에 마음에 감동을 주거나 그리움이라는 작은 북을 울린다. 가야금이 그랬다. 신라금이 울리는 한밤중의 정한이 이제 여름으로 들어서는 찌뿌듯한 하늘을 그렇게 적시고 있었다. 지소태후는 신라금의 소리마디에 취해 한동안 할 말을 잃고 있었다. 정신이 든 건 한식경 남짓 지났을 때였다.

“그래, 무어라 했는고? 미실이 어찌 됐다구?"

“미실 낭주께선 대왕마마의 후궁이 되었나이다.”

“무어라, 후궁?”

“그러하옵니다.”

“주상은 어려서부터 남의 것은 욕심 낸 적이 없다. 맛있는 것이나 아름다운 것, 모두가 그렇다. 먹는 것이야 눈으로 보고 혀끝으로 느끼니 그럴법 하다만은 계집은 다르다. 처음 사내를 맞이하는 것도 아니고 어찌 보면 사내의 힘을 여러 차례 경험한 적이 있는 계집이 아니냐. 더구나 그 계집이 세종 전군의 부인이란 사실을 모를 리 없는데 주상이 그토록 무모한 일을 저질렀단 말이냐?”

“이 일은 남당에서 공무를 보시는 대왕을 왕비마마가 부르신 후 일어난 일이랍니다.”

“사도왕후가?”

“예에, 마마.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그 일이 있기 전 왕후마마 처소의 약사가 미실 낭주와 염파(炎巴)의 일을 보고했다 하옵니다. 그 말을 듣고···.”

“보고했다는 건 궁안 일이냐, 아니면 나와 관련있는 일이냐?”

“근자에 염파 선생이 태후마마의 부르심을 자주 받았다는 걸 보고한 줄로 아옵니다. 게다가 공방(工房)의 장인 을패(乙唄)를 가야에서 데려온 일 역시 아뢨사오며 그 자가 만든 흙 인형에 대해서도 말이 있었다 하옵니다. 쇤네가 만호공주 명으로 살펴 본 바에 의하면 왕후마마 처소의 시비들이 몇 개의 흙 인형을 가져온 줄 아옵니다.”

“어떤 것이라 하더냐?”

“그것까진 모르옵니다. 다만···.”

“알았으니 그만 물러가거라. 내가 처리할 것이다.”

시비들이 물러나자 지소태후는 이마를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가까이 있던 염파(炎巴)도 물리친 후라 곁에 아무도 없었기에 여러 모로 생각을 달릴 수 있었다. 요망한 미실을 진흥왕이 잠자리로 불러들인 것은 의외적인 일이나 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신라의 제왕이기 때문이다. 손에 닿는 것은 맘대로 취할 수 있는 게 제왕의 권한이지만 문제가 있었다. 선대왕 법흥왕 때 하마도인(蝦蟆道人)이 부자(附子)를 이용한 죄로 죽임을 당했었다. ‘미각방’ 때문이었다.

그런데 보명궁의 특별한 흙 인형에 부자 성분을 섞어놓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사도왕후가 흙 인형 몇 개를 가져갔다지만 약재를 직접 살핀다는 건 어려운 일이고 아무래도 모양새를 살피다가 전문가를 부를 게 뻔했다. 아차 싶었다. 지소태후가 처음엔 부자(附子) 사용을 금했으나 염파는 당치않은 일이라 하지 않았는가.

“태후마마, 미약 성분이 다량으로 포함된 ‘미각방’은 사내들의 강정비약으로 뛰어난 만큼 위험이 따르는 건 약성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구할 수 있는 약재를 사용하는 건 미약 사용으로 면역력이 강해진 태자마마에겐 별다른 효험이 없을 것입니다. 얼마간 ‘부자’를 사용한 것이 옳은 줄 아나이다.”

동륜태자에 대해선 누구보다 익히 알고 있었기에 염파가 자신있게 말했지만, 그때 다시 한 번 생각했어야 했다고 지소태후는 자책했다. 지금까진 다행히 별일이 없어 소란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만에 하나 부자(附子)의 존재가 드러나면 진흥왕의 특별지시가 떨어질 것이고 그리 되면 어떤 약재가 사용됐는지도 드러날 것이다.

만약 부자가 사용된 내막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어찌 생각하겠는가. 세종 전군의 부인 미실(美室)이 동륜태자에게 안긴 게 미워 극약으로 죽이려 했다지 않겠는가. 미실뿐 아니라 신국(神國)의 태자까지 살해하려 들었다면 월성에서 두 발 딛고 살아갈 명분이 서겠는가. 어려운 일이었다.

진흥왕이 미실을 후궁으로 들였다면 좋지 않은 약재가 발견되기 전에 서둘러 치우는 게 중요했다. 일단 보명궁을 깨끗하게 손질할 명분이 필요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지소태후 얼굴이 밝아졌다. 묘안이 떠오른 것이다.

▲지음(知音)은 유백아와 종자기의 우정이 섞인 얘깁니다.

▲신국(神國) ; 신라

▲신라금은 가야의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