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즈음 지소태후는 왕실에 떠도는 옥구(玉鉤)에 대해 흥미로운 문답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 것이야 전공이었지만 염파(炎巴)는 태후의 궁금증이 뭔지를 알았기에 시치미를 뗀 채 중원 역사를 더듬고 있었다. 신라 조정에 옥구란 말을 있게 한 중원의 역사는 아무래도 한무제 때의 구익부인(鉤弋夫人)이었다.

하북성 하간현(河間縣) 태생인 그녀는 순박하고 낙천적이었다고 사서(史書)에 쓰여 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좋아하였으며 성격이 침착하고 온순했지만 이것은 나중에 사관의 붓끝이 잘못 놀려진 것이고 사실상 그녀의 어린시절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남들처럼 즐겁게 공부도 못했으며 행복했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성격이 침착하고 온순했는지는 몰라도 학문을 좋아했다는 것은 그녀에게 주어진 환경으로 볼 때 신빙성이 없는 말이다. 그의 부친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몰라도 그의 이름은 오래 전에 매장됐으며 중원의 사학자 사마천(司馬遷)처럼 궁형(宮刑)을 당하고 그 후엔 황궁에서 중황문(中黃門) 직에 종사했다.

그의 딸 조구익(趙鉤弋)은 여섯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오른팔이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덜렁거렸고 왼손은 주먹을 쥔 채 펴질 못했다. 아버지는 사내의 상징물을 덜렁 들어내는 궁형을 당하고 딸은 병신이니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사서엔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이 없고 그녀의 고모 조군구(趙君媾)만 얼굴을 내밀고 있으니 아무래도 조구익은 고모 손에서 양육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불행하게만 보인 그녀 일생에 햇살이 비친 것은 하늘의 도우심이었다. 바로 이 부분을 지소태후는 흥미롭게 염파(炎巴)의 소곤거림에 귀를 기울였다.

“조구익은 사람의 혼을 빼앗을 정도로 아름다운 용모와 날씬한 몸매를 지녔으면서도 어느 한 곳 시비를 걸만한 곳을 찾을 수 없는 우물(尤物)이었습니다.”

“우물?”

“예에, 마마. 흠잡을 곳이 한 곳도 없는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한무제가 북부지방을 순찰하던 중 예언자는 하늘에 길조를 알리는 구름이 맴도는 것을 발견하고 기녀(奇女)가 출현할 것을 예언했다. 황제는 기녀를 찾아내라고 명을 내려 비로소 그녀의 존재가 역사의 전면에 나타난 것이다.

당시 한무제는 나이가 들었으면서도 워낙 색을 밝혀 색마(色魔)라고 해야 직성이 풀리는 위인이었다. 그의 눈에 화용월태의 미인을 보는 순간 눈이 뒤집혀 자신이 황제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였지만 애석한 점은 그녀의 팔이 병신이라는 점이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주먹을 쥐고 있었는데 의원이며 도인들이 찾아들어 그 손을 펴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한무제가 그 손을 펴자 거짓말처럼 주먹에 펴지고 덜렁거리던 팔이 제자리를 찾아간 것이다.

놀랍고 신기한 일은 그 다음에 나타났다. 그녀의 손에서 옥구(玉鉤)가 발견된 것이다.

지소태후는 반짝 욕심이 동했다.

“그러니까 옥구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게 아니라 하늘이 내린 신물(神物)이군요. 그걸 우리 같은 사람은 볼 수도 없는 데다 얘기로만 들을 수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옥구를 쥔 조구익은 당연히 황궁에 데려왔겠지요?”

“그렇사옵니다, 마마. 처음엔 황제도 놀랐지만 아무도 펴질 못한 조구익의 손을 자신이 폈다는 도취감에 젖어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기뻐한 건 사실입니다. 그런 이유로 조구익은 즉시 황제의 뒷방 마누라가 되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총애하면서 권부인(拳夫人)이라 불렀습니다.”

한무제는 조구익을 다른 미인보다 총애하여 장안성 남쪽에 거대한 건물을 지어 구익궁(鉤弋弓)이라 칭하고 그녀를 ‘구익부인(鉤弋夫人)’이라 불렀다. 황제의 나이는 쉰셋이었고 조구익은 열일곱 살의 피어나는 꽃이었다.

염파는 뒷부분을 끊은 채 태후의 관심이 기웃거리는 옥구(玉鉤) 쪽으로 넘어갔다.

“옥구를 지니고 태어난 그녀의 운수를 예언가는 기녀(奇女)라  했습니다만 그녀 역시 늙은 황제의 질투를 받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무리 하늘의 운수가 내렸다 해도 제왕의 살수(殺手)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미실이 그렇구만. 미색이 빼어나 천방지축 날뛰더니 이젠 항아리 속에 든 신세가 됐으니 어찌 빠져나오겠소. 고 요망한 것이 몸에 일곱 개의 구슬이 있다고 떠들었는데 선생이 보기엔 어떻소, 그게 옥구와 같은 것이오?”

“하늘이 내렸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 허나 너무 욕심이 많습니다. 옥구는 신물이라 귀하기 그지없는데 일곱 개의 구슬이 몸에 있다는 건 결코 상서로운 일이 아닙니다. 소인의 생각으론 미실에겐 그게 옥구일는지 모르나 시생의 눈엔 일곱 개의 구슬은 사내의 숫자라고 생각되옵니다.”

“사내의 숫자?”

“어쩌면 미실의 몸엔 가르치지 않은 성전(性典)이 펼쳐져 있는지 모르겠나이다. 신라에 널리 퍼진 <현소(玄素)>를 비롯해 동파와 청성파의 여러 비전(秘典)이 숨겨져 있는지 모르겠나이다. 그것들은 하나를 배우는 데도 평생이 걸리는 비인외전(非人外傳)의 비기들인데 일곱 개의 구슬은 사내들을 다스릴 수 있는 그런 비기들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요망한 일이네.”

“눈매가 합안(鴿眼)이니 더욱 그렇다는 확신입니다.”

그때 태후 전각의 시비가 아뢰었다.

“태후마마, 남당의 약사가 보내 온 급한 전갈입니다.”

“무엇인고?”

“대왕마마께서 미실을 후궁으로 거둬들인다는 전교를 내렸다 하옵니다.”

와당탕 문이 열리고 황망히 놀란 지소태후의 눈길이 그곳에 붙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