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황천에 보내놓고 나는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네. 그곳도 인간 세상마냥 권모와 술수가 있고 사악한 악령들이 날뛴다고 듣으니 자네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니까. 다행히 취락정에 들려 염파(炎巴)에게 비방을 일러 받을 수 있어 안심할 수 있었네.”
그것은 귀교(鬼交)에 대한 처방이었다. 귀교. 이것은 귀신과의 교접이다. 왕실에 전해오는 역사를 보더라도 귀신과의 교접은 상대가 여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신기(搜神記)>에 전하는 ‘부마(駙馬)’ 역시 신도탁(辛道度)이란 이가 겪은 진민왕(秦閔王)의 딸과 엮어진 혼령과의 사랑 얘기다.
‘부마’는 어떤 뜻일까? 이것은 ‘예비로 준비해 둔 말’이다. 즉, 천자가 타는 예비 수레(副車)에 달린 말로, 그 말을 관리하는 이가 ‘부마도위’다. 진나라 때 간보(干寶)가 지은 <수신기(搜神記)>에는 처녀 몸으로 죽은 진민왕의 딸이 조(趙)나라에 시집을 간 후 죽게 돼 혼귀가 되었다는 것으로 사흘 동안 함께 지내며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아마도 이 사흘은 혼례를 올리면 사흘 동안 함께 지내던 풍속을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여인의 간절한 청을 물리치지 못하고 사흘을 있게 되자 헤어지는 순간에 부장품(副葬品)으로 함께 묻은 황금베개를 정표로 준 것이다. 신도탁이 그곳에서 나와 몇 걸음 내딛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그곳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잡초만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다. 노자를 마련하기 위해 베개를 팔려는 사실이 알려져 신도탁의 자초지종이 알려지게 되었고 황비(皇妃)는 그를 사위로 인정해 ‘부마도위’란 직책을 내렸다.
동륜태자가 그런 얘길 들을 땐 염파(炎巴)가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모르지만 미실이 황천으로 떠난 지 사흘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내심 걱정이 일어난 것이다. 아는지 모르는지 염파는 그런 얘길 들려줬었다.
“태자마마께서도 먼 길을 걸어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길을 가다 보면 어떤 곳은 따뜻하고 또 어떤 곳은 냉랭하기 그지없습니다. 겁이 나고 마음이 다급해지기도 하며 공포나 조바심으로 마음이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그런 곳은 모두 영혼이 숨 쉬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혼은 반드시 좋은 장소나 좋은 곳, 나쁜 장소나 험악한 곳에만 있는 게 아니다. 물에 빠져 죽은 귀신은 늪지대의 음침한 곳에 있지만 사랑이 넘쳐나는 영혼은 큰 길에서 따뜻한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이날 염파(炎巴)는 의미심장한 얘길 넌지시 꺼냈었다.
“태자마마, 영혼이라 하여도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사랑에 원한을 품은 원귀(寃鬼)라 할 수 있습니다.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모습을 드러내 행인들을 홀리는 게 바로 그것이죠. 이것들은 한결같이 사내의 정액을 훔쳐먹는 잡귀들이죠. 이러한 잡귀가 제 모습을 감추고 귀교(鬼交)를 저지릅니다.”
즉, 악령이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여 정을 통하는 것이라고 염파는 말했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러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귀신과 나누었던 교합을 잊지못해 항상 그리워한다. 인간과 교합을 나누는 것보다 귀신과의 교합은 뜨거운 열락을 나누었으니 너무나 황홀한 재미에 매료된 것이다. 이러한 증상이 깊어지면 자신도 모르게 파멸의 늪으로 빠져든다.
“태자마마, 소인이 가야에 있을 때 무장(武將) 한 사람이 귀신과 교접이 가능한 일인가를 시험한 일이 있나이다. 그래서 봄이 한층 무르익을 때 숲에 들어갔는데, 그 무장은 소인의 가르침대로 사흘 밤낮을 합금(合衾)만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몸에 오한이 들고 신열이 나며 가슴이 답답해지고 눈이 캄캄해 지더랍니다. 그러더니 비로서 그 무장에게 여인의 환상이 보이더랍니다.”
“사내에게만 그런 증상이 일어납니까?”
“아닙니다, 남자에겐 여자가 보이고, 여자에겐 남자가 보리지요. 이렇게 되어 한바탕 교전을 치르면 이 세상에서 느낄 수 없는 황홀함을 느끼게 됩니다. 문제는···, 한 차례의 교합이 끝난 훕니다.”
귀신과 정을 통하게 되면 악령은 좋은 기회라 여기고 상대를 점령하기 위해 치료가 어려운 병을 안겨준다. 그렇게 되면 매사에 의욕이 없고 자신의 신세에 대한 비관스런 상상만을 하기 마련이다. 바로 이 시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사기(邪氣)의 영향을 받게 돼 자신을 망치는 것은 물론 그 자손까지도 해를 입는다.
여기까지 듣는 것만으로도 동륜태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렇기에 병마가 더 깊어지기 전에 미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기름종이에 싼 유황(硫黃)을 들고 보명궁을 찾아온 것이다.
“태자마마, 귀교(鬼交)에 대한 한방치료는 몇 가지 있습니다만 손쉬운 치료법은 유황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중원의 도인들은 불로장생의 약재로 유황을 사용합니다만, 귀신을 내쫒고 복을 가져오는 부적으로도 이용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중원에서는 귀교(鬼交)에 대한 한방 치료법으로 주사(朱砂)를 이용했으나 신라 왕실은 소지하는 것을 법을 금했다.
▲귀교(鬼交) ; 귀신과의 교합
▲수신기(搜神記) ; 간보(干寶)가 지었다.
▲음양송(陰陽松) ; 음란한 귀신이 산다는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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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