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태후의 간특한 계책이 펼쳐진 것인지 미실이 황천의 언덕에서 돌아왔을 때 보명궁엔 새로운 물건이 치장돼 있었다. 그것은 흙으로 만든 간단한 소도구였는데 뱀이나 개구리 매미와 올빼미, 또는 원숭이 등의 동물이 대부분이었다. 그것들은 두 발을 딛고 선 형상이었는데 가장 아래쪽엔 바늘로 찌른 듯한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약성이 강한 미약(媚藥)이 담겨 있어 필요에 따라 그것을 맡을 수 있게 만들었다.

지소태후의 명을 받은 염파(炎巴)는 가야에서 데려온 공방(工房)의 책임자 을패(乙唄)를 대령시켰었다.

“너의 솜씨가 뛰어나다기에 내 염파에게 부탁해 너를 불렀다. 듣자하니 네가 진흙을 짓이겨 그릇 등을 만든다 들었다만, 동물 모형은 아니 만드느냐?”

“아니옵니다. 소인이 가야에 있을 때엔 왕족들을 위해 중원에서 가져 온 방술서(房術書) 등을 제작했사오나 나라가 망해 신라에 온 후론 주로 노리개 등속을 만들고 있나이다.”

“흐음, 그래. 허면, 너는 미약(媚藥)을 이용하는 도구를 본 적이 있느냐?”

그 말에 을패는 눈길을 염파에게 던졌다가 나직히 입을 열었다. 그 자신 미약에 대해 본 적은 없으나 들은 적은 있다고 털어놓았다. 지소태후는 의미있는 웃음을 흘리며 뒷말을 이었다.

“사람도 생긴 게 다르고 체형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 그런가하면 좋아하는 음식 역시 사람마다 다른 것은 이미 알고 있으리라 본다. 그렇다 보니 약재도 가벼운 독이 있는가 하면 극독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처럼 네가 만들어야 할 노리개에 성분이 다른 독을 넣어달라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독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것이다.”

“아, 예에.”

“왕실에 금기사항이 있다는 건 들어서 알 것이다. 독성을 지닌 독물이나 부자(附子) 등은 사람을 치명적으로 살상시키는 것이니 결코 써선 안 된다. 네가 만들 노리개를 이용하는 것은 신라를 어깨에 짊어질 태자가 사용할 것이니 그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에.”

“좀 전에도 말했다시피 동물들의 형상은 아무렇게나 모양을 만드는 게 아니고 암수 자웅(雌雄)이 사랑을 나누는 것이어야 한다. 인간의 몸은 본시 우주인 것이니 그 우주가 운행하는 도수(度數)에 따라 변화되는 걸 나타내면 다시없으리라 본다. 알겠느냐?”

“예에.”

“네가 신국(神國)에 오기 전, 가야에서 즐겨 사용한 처방이 있으리라 본다. 그게 무엇이냐?”

“조양불식산(調陽不息散)과 웅아환(雄娥丸)입니다. 태후마마께서도 아시고 계시겠지만 조양불식산은 위(魏)나라의 조조(曹操)가 즐겨 사용한 것으로, 날씨가 흐린 날은 웅아환을 처방해 복용한 것으로 알고 있나이다.”

조양불식산은 조조가 하룻밤에 10여 회나 여인들을 잠자리에 끌어들여 즐겼다는 처방이다. 이것은 약재가 사상자(蛇床子)를 비롯하여 원지(遠志)와 속단(續斷) · 육종용(肉蓗蓉)을 각각 가루로 내어 복용하는데 하루에 세 번 한 숟가락씩 복용하는 게 옳은 복용법이다.

그런가하면 웅아환(雄娥丸)은 아직 교미하지 않은 누에의 숫나방을 사용한다. 한방의 주장에는 사내의 정력을 돕고 원기를 왕성하게 한다는 꼬리표가 붙었는데 본래 이름은 원단웅아(原蛋雄娥)다. 여기에 세신(細辛) · 사상자(蛇床子)를 참새알로 개어 오동나무 열매 크기만큼 만들어 사랑을 나누기 전에 한 알을 복용한다. 약성이 워낙 강해 사내는 이 처방을 사용할 때 자신의 심벌을 몇 번이나 물로 씻어내는 번거로움이 있다.

바로 이 처방 때문에 지소태후의 은밀한 비밀이 소리 소문없이 벗겨지고 있었다. 진흥왕이 어린 상황에서 지소태후는 과감하게 가야 정벌을 논하며 이사부(異斯夫) 장군에게 병력을 주어 공격케했다. 그 당시만 해도 신라가 왜 가야를 공격하는가의 올바른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약간의 시일이 흐르면서 은밀한 비밀이 밝혀진 것이다.

“태후마마가 궁금히 여긴 것은 다름 아닌 웅아환(雄娥丸) 처방이라네. 그 처방을 얻기 위해 병력을 파견한 거라니까.”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해 볼 수 없지만 이사부 장군은 가야왕실의 내명부에서 을패(乙唄)를 붙잡아 신라로 압송해 왔다. 전투가 끝나 이에 대한 소문이 알게 모르게 흘러나갔지만 왕실은 어떤 답변도 내놓지 않았다. 그랬던 것인데 미실이 동륜태자와 사랑에 빠지자 은밀하기 짝이 없는 처방법을 사용하려 진흙으로 노리개를 만든 것이다. 신라 왕실이 흙인형을 사용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보명궁에 들어 온 동륜태자는 미실과 자리를 함께 하자 황천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묻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