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호공주에게 들었던 대로 보명궁(寶明宮)에서 올라온 소식은 유쾌한 게 아니었다. 동륜태자가 자신의 거처에 머무르지 않고 보명궁에 눌러 산다는 보고는, 단지 그것만 전하는 것이 아니었고 미실(美室) 역시 자신의 숙소를 떠나 태자와 둥지를 틀었다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 따라 붙었다. 젊은 남녀가 함께 밤을 지새면 요란한 소문이 떠돌기 마련이지만 두 사람의 동고동락(同苦同樂)은 내명부를 비롯해 화랑들의 입살까지 무성하게 만들었다. 예전에 사다함 휘하에 있던 사내들은 아예 한 수 더 뜨며 즐거워했다.

“이제야 속이 후련하구먼. 사다함 풍류주께서 말은 안했지만 그 얼마나 원통해 했는가. 사랑하는 님을 세종 전군에게 빼앗기고 가슴을 치며 통곡했었지. 그때 지소태후는 즐거워하며 회심의 미솔 깨물었다지. 무엇이 그리 기쁘고 즐거운 게야. 젊은 사내 마음에 화인(火印)을 떠놓고 무엇이 즐거운 게야. 그게 업보야. 이젠 세종 전군과 지소태후가 그 앙화를 받게 된 게야.”

“아무렴, 이를 말인가. 미실이란 그 계집도 한이 있었을 것이니 아주 금상첨화격이네. 한데, 보명궁에서 새어나온 소문이 요상한 모양이야.”

“뭐가?”

“옥진궁주의 손녀딸 미실 말이야. 어느 관상장이가 눈을 보고 비둘기 눈이라 했다는데, 그건 봉(鳳)을 그렇게 표현했다지 않은가.”

“비둘기나 봉이나 그게 그거지 뭐.”

“아니야, 달라.”

“어떻게?”

“비둘기라면 합안(鴿眼)이고 봉(鳳)이라면 봉안(鳳眼)이 되는 게지. 비둘기는 일정하게 짝을 정해놓고 사랑을 나누는 게 아니라 어느 누구건 마음에 들면 꽁지를 들고 수컷을 부르는 요들빼기야. 겉으로 보면 다정하고 정겹게 보이지만 실제론 얼마나 색정적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게야.”

“그러면 봉(鳳)이 낫겠군.”

“글쎄···, 그것도 환영할만한 일은 아니야.”

“왜?”

“봉(鳳)이라고 했을 땐, 당연히 봉황을 뜻하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을 땐 미묘한 뜻이 있거든. 봉새는 워낙 상서로운 새라서 상대 하는 새 역시 수컷인 황(凰)이지. 그러니까 봉새의 짝은 새들의 군왕(皇)이란 뜻이야. 미실은 자신의 짝이 될 사람을 평범하다고 보지 않았단 말이야.”

“그게 무슨 상관이야?”

“상관있지. 보명궁에서 새어나온 소문에 의하면, 미실이 자신의 존재를 ‘봉(鳳)’이라고 했던 모양이야. 동륜태자는 당연히 자신이 황(凰)이라 했겠지. 그러자 미실은 까르르 웃어대며 빈정거렸다는 게야. 자신의 상대로 황(凰)이 되려면 제왕이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태자마마는 반역할 셈이냐고 한 거지.”

이 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지만 둘 사이의 문제가 원만히 해결돼 동륜태자는 자신에게 성의학을 가르친 염파(炎巴)를 불러들여 대책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미실 낭주께서 스스로를 봉(鳳)이라 한 것은 자신을 낮추신 것입니까, 아니면 높이신 것입니까?”

직설적인 질문에 미실은 웃었다. 단아한 치아가 보일만큼 말갛게 웃었다.

“어찌 답변이 없으십니까?”

“내가 높인 게 아니라면요?”

이번엔 염파(炎巴)가 소리없이 웃었다. 미실의 뜻을 알아 본 것이다. 자신의 신분을 높인 것이라면 당연히 그녀가 상대할 사람은 제왕(皇)이다. 그러나 낮춘 것이라면 범조(凡鳥)다. 그러기에 제왕을 상대하지 않아도 아무 이상이 없다. 염파는 물러나며 대신 초초(屮屮)라는 아이를 불러들였다.

“태자마마를 위하는 이 일엔 당연히 여사(女史)를 불러들여야 옳으나 모두들 태후마마의 부름을 받고 그곳에 갔으니 두어 시각쯤은 사람이 없다. 해서, 초초 네가 여기서 염담(艶談)을 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아, 예에.”

초초는 무심히 대꾸하며 조심조심 태자와 미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는데 그녀는 아찔한 현기증에 비틀거리다 자세를 고쳐 잡았다. 방 안엔 정중앙에 호화롭게 조각된 침상이었다. 비단천이 깔린 침상엔 벌거벗은 남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그녀의 자리는 오른쪽 구석으로 좌우 석 자쯤의 위치에 탁자가 있고 그 위엔 몇 권의 책이 놓여 있었다.

근처에 놓인 의자를 당겨 앉으며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의 염담(艶談)은 결코 간단한 게 아니었다. 분위기로 보아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침상 위의 남녀가 방사를 잘 치르도록 은근하고 끈끈한 책을 읽어주는 일이었다. 그게 남녀의 성적 경험이 없는 경우라면 몰라도 은밀히 경험을 쌓았고 보니 그 일을 치러나갈 일이 걱정이었다. 동륜태자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오늘은 끈끈한 염담을 준비하거라.”

▲합안(鴿眼) ;비둘기의 음탕한 눈

▲봉(鳳)은 높이면 제왕을 상대하지만 낮추면 아무나 관계한다.

▲염담(艶談) ; 방사에 관한 끈끈한 얘기

▲하늘을 나는 봉황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