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를 죽이는 비방.’

미색이 고운 여인을 찾아다니던 태자에겐 인화물질 같은 호기심이었다. 어떤 재주가 있기에 그런 말이 나온 것인가에 궁금증이 일어나더니 이젠 그것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에 안절부절을 못하더니 자신의 거처인 양 언제나 비워두기를 바란 취락정의 죽실(竹室)에서 그녀의 동생 미생을 만나 다시 한 번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이보게, 사다함이 세상을 떴으니 태후마마께선 생각이 많으실 거네. 병부에선 6세 풍월주로 세종 전군을 강력히 내세운 모양이네만 그 사람이 단식으로 태후에게 맞서고 있으니 뒷 일이 어찌 될는지 모르는 일이네. 그래서 자네에게 하는 말이네만 그 비방 말이야.”

“비방이라니오?”

“사내를 죽이는 비방 말이야.”

미생은 잠깐 망설였다. 자신과 같은 사내들의 궁금증은 어떻게든 다른 자보다 파워있는 몸 가꾸기를 꿈꾼다. 여인들이 자신의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기 위해 그렇게 보이도록 하는 약초가 필요했다. 미약(媚藥)이다. 그러나 막상 정면으로 부딪쳤을 때는 용모도 한 부분을 차지하겠지만 특별히 다른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것이 ‘사내를 죽이는 비방’이라고 생각했다. 궁 안을 휘젓고 다니면서 동륜태자는 잡다한 말을 무시로 들었었다. 특히 중원 문화에 대해 남다른 식견을 가지고 있는 미생은 미덥지 않은 중원의 신화를 대수롭지 않게 만지작거렸다.

“황제(黃帝)가 중국 의학의 기초를 세웠다지만 나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어요. 중국 문화에 가장 공이 큰 명신(名神)으로 알려졌지만 그건 나중에 꿰어맞춘 것에 불과합니다. 태자마마, 사실 그렇습니다. 춘추전국시대와 한나라 초기에 황노학(黃老學)이 유행하자 동이(東夷) 사람이 쓴 <황제내경(黃帝內經)>이 그의 이름으로 뒤바뀐 채 유행했으며 그로 인해 황제가 중국 의학의 원조가 됐다고 딴전을 피웁니다.”

물론 이런 얘기를 들을 때엔 ‘오, 그랬나!’ 싶었지만 지금은 아련한 꿈속의 대화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도 미생이 들려준 ‘사내를 죽이는 비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궁금증이 깊이 패어 있었다. 미생은 누이에 대한 얘기를 꺼낼 때엔 필요없는 잔가지를 많이 늘어뜨렸다. 그것이 불필요한 것인지를 알면서도 동륜태자는 ‘혹시 미실에 대한 은밀한 얘기’가 아닐까 싶어 바짝 신경을 곤두세웠다.

“태자마마, 중원은 오래 전부터 <역경(易經)>의 음양설에 물들었나이다. 그러기에 남녀의 색사도 오행설(五行說)을 꾸준히 따랐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중원에서 가져 온 변동현(卞洞玄)이 쓴 <동현자(洞玄子)>에는 남녀의 위치에 대해 다르게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처음으로 남녀가 교접을 나눌 때, 남자는 반드시 여인의 오른편에 있어야 한다고 했으며 체위(體位) 역시 삼십법(三十法)이 연구되었는가 하면, 성행위에 임하는 여인의 자세나 남녀간의 동락, 표준횟수, 사정을 억제하는 호흡법(呼吸法)과 미약(媚藥)까지 모습을 들어내고 있습니다.”

미생이 굳이 중원에서 유행하고 있는 성의학서(性醫學書)를 입에 올린 것은 그것이 ‘사내를 죽이는 비방’과 관련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단도직입적으로 설명하기엔 스스로의 언변(言辯)이 부족했던지 장거리를 뛰는 마라톤선수처럼 자꾸만 우회해 가고 있었다. 다른 일이라면 금방 화를 냈을 것이지만 자신이 궁금해 하던 것을 그나마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동륜태자는 아는 듯 모르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거나 ‘그렇구만’ ‘오, 그래’ 하는 추임새를 놓으며 미생에게서 좀 더 화끈한 단서가 떨어지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사내를 죽이는 비방’은 그런 게 아니었다. 미생의 입장에서는 옥진 할머니가 자나 깨나 누이를 끼고 돌며 색공(色供)의 모든 단계를 가르쳤기에 ‘사내를 죽이는 비방’이 화끈한 체위라고 생각했었으나 그게 아니었다. 이것은 방사의 체위가 아니라 기력이 떨어진 사내의 힘을 살아돋게 하여 방사를 치르게 하는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제인가?

그것은 천하의 명의(名醫) 편작(扁鵲)이 살아와도 사람을 살릴 수 없는 ‘육불치(六不治)에 속하기 때문이다. 육불치란 편작이 살아와도 치료할 수 없는 여섯 가지 증상으로 그 중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음양장기부족(陰陽臟器不足)’이다. 의원의 말을 무시하고 함부로 몸을 써 장기의 진액이 고갈되는 경우다. <황제내경>의 평인기상론편(平人氣象論篇)엔 팽팽한 경고가 담겨 있다.

“지나치게 색을 밝히면 오래된 병이 있는 것처럼 몸이 변하고, 맥(脈)에 위기(胃氣)가 끊어지면 마치 사람이 음식에 의한 영양분이 떨어져 죽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 것처럼 지나치게 색을 밝히면 피로로 인해 땀을 흘리게 되고 그 땀이 마르기 전에 방사를 하면 복부에 열이 차 뜨거워지고 입술이 까칠까칠 마른다. 이런 증세는 사내에게 찾아오는 위험신호다. 이때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따라 병마(病魔)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기로에 선다.

▲변동현(卞洞玄) ; <현녀경>의 작가. 일명 <동현자>라고 불림

▲황제내경(黃帝內經) ; 중국에선 최초의 의서를 쓴 인물이 황제라고 알려졌다.

▲와문뢰 ; 의식(儀式)에 사용하는 기구